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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선 산?
  • 입상자명 : 김가윤
  • 입상회차 : 11회
  • 소속 : 청소년부
  • 장르 : 청소년부 글쓰기

매년 가을이 되면 우리 집은 아빠, 엄마와 딸들이 모여 밤을 깐다. 며칠을 까도 줄어들지 않는 어마어마한 양의 밤으로 우리 가족은 가을은 물론 겨울도 배부르게 보낸다. 이 밤은 산 것이 아니라 아빠가 아빠의 회사가 있는 뒷산에서 떨어진 밤을 주워 온 것이다. 퇴근길에 한주먹씩, 맘먹고 가져오신 날은 한 봉지도 된다. 시장에서 파는 크고 윤이 나는 밤은 아니다. 하지만 흙도 묻어 있고 작기도 작은 밤을 까는 재미도 쏠쏠하고 토종밤이라 맛은 얼마나 달디단지 “밤맛은 이맛이야”라고 엄마께선 애기하신다. 사람으로 따지면 인간미가 철철 넘친달까. 크기는 작아서 밤 껍질을 많이 떼어내면 먹을 게 남아있을지 걱정이 되고, 가끔 밤 속에 자리 잡은 벌레를 만나기도 한다. 벌레는 맛있는 밤에만 있다던데 아빠가 가져오신 밤의 품질은 보증된 셈이다. 엄마는 이 밤으로 간식으로 먹을 찐 밤부터 밤밥, 밤 조림, 갈비찜의 재료 등 수많은 요리를 선보이신다. 그 맛은 단연 일품이다.
어릴 적엔 아빠와 같이 산에 가서 가시 주머니 속의 밤을 꺼내보기도 했다. 발로 가시 주머니를 양쪽으로 벌리면 안에서 밤이 톡 하고 튀어나온다. 잘못하면 신발이 가시에 박히는 경우도 있고 썩은 밤들이 들어있어 허탕을 칠 때도 있다. 마지막으로 밤을 딴 적이 4~5년 정도 되었다. 비탈진 산등성이에서 한번은 미끄러져 팔과 다리가 가시투성이가 되어 고생한 적도 있는데 이젠 아빠와 한가롭게 산에 갈 여유가 생기지 않아 나는 언니, 동생과 함께 밤 까기 담당이다.
우리 가족이 산으로부터 얻는 것은 밤뿐이 아니다. 우거진 나무들과 작은 생명들이 숨 쉬고 있고, 어릴 적 산에 갔을 때 도토리를 좋아하는 다람쥐도 만나고 벌레들과 갖가지 나무랑 꽃들을 많이 볼 수 있었던 산이 묵묵히 그 자리에 있으면서 맑은 공기를 주고 멋진 경관을 보여 주는 것은 물론이고 산을 등산하지 않고도 운동을 할 수 있다. 산 초입에 운동 시설이 잘 갖추어져 있어 날이 어두워져 산을 못 탈 때에도 부담 없이 건강을 챙길 수 있다. 낮엔 시간이 없는 나는 밤밖에 시간이 나지 않아 등산 대신 이 기구들을 애용한다. 차가 쌩쌩 달리는 도로와 길 건너 네온사인 간판들을 아에 두고 운동을 하면 어지러운 삶에서 벗어나 한가로이 운동을 한다는 일종의 우월감 마저 느껴진다.
그 옆에는 약수터가 있는데, 아빠는 산에 와서 약수를 마시고 가지 않는 것은 산에 대한 예의가 아니라고 하시며 약수를 권하신다. 운동 후 맛보는 시원한 약수는 정말 꿀맛이다. 추운 겨울이 아니면 가볍게 산 초입까지 걸어와 운동을 하고 안전검사를 마쳤다는 약수를 몇 통씩 담아 집으로 가져간다. 아빠와 같이 운동한 후 좋아진 부녀사이는 커다란 덤이다. 저녁을 먹고 아빠와 산에 가면 아빠와의 시간도 가지고, 소화도 시키고, 맛 좋은 물도 떠올 수 있으니 일석 삼조다.
나는 고층 건물이 밀집되어 있고 자동차 지나는 도로변에 있는 화려한 건물의 직장보다 우리 아빠 회사가 더욱 좋다고 생각한다. 아빠는 힘드실지 모르겠지만 탁한 매연 가득한 도로변에서 벗어나 거의 매일 산을 오르시는 운동을 하시는 게 건강에도 도움이 될 것이다. 산의 밤 뿐 아니라 은행, 대추와 같은 각종 산에서 나는 음식을 드시고 맑은 공기를 들이마시고 푸른 나무들과 작은 생물들을 감상하시는 아빠는 정년을 바라보고 계신데도 흰머리 하나 없이 건강하시다. 봄이나 가을이 되면 회사앞마당에 은행잎이 노랗게 물들었고 뒷산은 알록달록 단풍물이 들었다고 자랑하시며 사진을 찍어 오셔서 보여주기도 하신다. 계절의 변화를 실감나게 느끼며 마음을 추스르기도 한다.
가끔 아빠를 만나러 갈 일이 있으면 버스를 타고 지하철을 타는 보통 아들, 딸과는 다르게 우리 집 딸들은 산을 탄다. 그럴 때면 산골이 배경인 소설의 산골소녀 주인공이 된 것만 같다. 아빠를 만나겠다고 산을 타며 작은 동물들과 인사도 하고 새들의 노래에 장단을 맞추며 보고 싶은 아빠를 찾으러 가는 순수한 이야기가 줄거리일 것이다. 도시에 사는 내 또래 중 이런 경험을 가진 사람이 몇이나 될까 생각하며 뿌듯해 하기도 한다.
얼마 있지 않아 하늘이 높아지고 말이 살찌는 계절이 오면 우리 집은 고소한 밤 향기로 가득 찰 것이다. 손에는 영광의 상처가 남겠지만 온 가족이 모여 오순도순 이야기꽃을 피울 것이다. 올해는 비가 많이 온데다가 추석이 빨리 찾아와 송편 속에 넣을 밤은 없지만 다디단 밤을 먹을 수 있는 시간이 기다려진다. 올 여름 폭우로 인해 산이 많이 소실되면서 각종 나무들도, 등산로도 흔적들이 없어 많이 안타깝다. 산사태가 난 곳을 엄마랑 함께 봉사를 갔더니 가까이 사는 분들의 피해도 어마어마하고 무서웠다. 그러나 산의 모습 또한 많이 변하여 어떻게 이럴 수가 있나 싶기도 했다. 등산로 옆으로 몇 배나 넓은 길이 생기고 나무들도 떠내려가 산의 아픔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다.
묵묵히 말이 없는 산을 어른들은 개발이다 하여 공사를 많이 하여 그 아픔을 우리에게 돌려주었나 싶어 마음이 숙연해지며 빨리 회복이 되어 예전의 모습으로 돌아갈 수 있으면 하고 기도를 하기도 한다.
그러나 도시에서 이런 소박한 즐거움을 느낄 수 있다는 사실에 감사하다. 그리고 이 즐거움이 앞으로도 계속될 수 있도록, 많은 사람들이 이 즐거움을 맛볼 수 있도록 밤나무 가득한 산을 다람쥐가 마음껏 뛰어놀 수 있는 산을 함께 가꾸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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