홈으로
  • 프린트하기
대상 아름다운 청춘, 아름다운 숲
  • 입상자명 : 장 수 성 대전 대전외고 2-2
  • 입상회차 : 5회
  • 소속 : 청소년부
  • 장르 : 청소년부 글쓰기

중학교 때 배운 청춘예찬이란 글이 생각난다. 청춘! 그것은 듣기만 해도 가슴이 설레는 말이다. 청춘의 피는 끓어 넘쳐서 거선의 기관처럼 추진력이 있고, 높은 이상을 갖춘 청춘은 이 세상 그 무엇보다 순수하고 아름다운 것이라 했다. 모든 사람들이 부러워하고 찬양하는 청춘! 그랬다. 우리들은 남들이 그렇게도 부러워하는 열여덟 청춘들이다. 하지만 현실의 모습은 그렇지 못했다. 아침 여섯시에 일어나 아침을 먹는 둥 마는 둥 학교로 달려가고, 한밤중이 되어서야 집으로 돌아오는 일상은 그런 찬사를 받기엔 너무나 어두운 색깔이다. 그 중에서 특히 우리 반은 더 심했다. 2학년 들어와 우리가 겪은 그 충격을 어떻게 말로 다 할 수 있을까! 너무나 갑작스레 친구와 영원한 이별을, 그것도 두 번이아 연거푸 당한 우리들은 청춘이란 단어를 의심했다. ‘도대체 청춘이 뭐란 말인가! 아니야. 이건 청춘이 아니야, 이건 그냥 서러운 시기일 뿐이야.’ 그렇게 나는 한동안 깊은 슬픔 뒤에 오는 무력감에 빠져 있었다. 그것은 우리 반 아이들도 마찬가지였다. 적어도 지난 8월 17일 ‘장태산 휴양림’을 다녀오기 전 우리 반 분위기는 그랬다.

이런 우리를 안타깝게 여긴 부모님들이 숲속 여행을 제안하셨다. 푸른 숲속에 가서 마음껏 살아있는 공기를 마시고 오면 좋겠다고 했다. 그래서 보충수업이 끝나는 날, 우리 반 아이들은 1박 2일 캠프를 떠나게 되었다. 처음엔, 솔직히 몇 명은 빠질 줄 알았다. 힘든 상황이란 것도 개별적인 데가 있었고, 저마다 개인적인 일도 있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이번 행사는 학교 전체에서 실시하는 게 아니고, 우리 반만 자치적으로 만든 행사였다. 그런데 친구들은 기다렸다는 듯이 모여들었다. 준비물 가방을 등에 메고 학교에 모인 아이들의 얼굴에 오랜만에 살며시 미소가 번졌다. 시원한 바람이 불어오는 시골길을 달리는 동안 아이들은 천천히 가슴을 열기 시작했다.

대전 시내를 벗어나 흑석리 방향으로 약 이십분 쯤 달려가자 장태산 휴양림 팻말이 나왔다. 그곳은 우리나라 최초의 사유 자연휴양림이다. 산을 사랑하고 나무를 좋아하는 어떤 분이 20년 전에 만든 곳이다. 언젠가 나는 가족들과 함께 그곳에 놀러갔었다. 짙푸른 녹색 숲길을 그냥 걷기만 해도 몸에 좋은 피톤치드가 나온다는 말에 마냥 걸었던 기억이 있다. 그러다가 만난 다람쥐, 청솔모 그리고 이름 모를 새들과 만남은 지금 생각해도 즐겁기만 하다.

구불구불한 산길을 얼마쯤 갔을까. 왼쪽에 용태울 저수지가 나왔다. 산을 감싸고 너그럽게 출렁이는 물결에 산 그림자가 비쳤다. 저수지 건너편으로 장태산의 멋진 모습이 보였다. 벌써 코 끝에 스치는 냄새가 달랐다. 박하사탕처럼 상쾌하고 시원한 향기가 온몸을 파고든다. 아이들은 들떠서 창밖을 내다보느라 야단이다. 여기저기서 수다를 떠는 아이들, 이제야 우리의 진짜모습이 나오는 것 같다. 장태산 휴양림에 들어서자 키다리 메타세콰이어가 줄을 지어 환영한다. 장태산에 유난히 많은 그 나무는 이름은 이국적이지만 생김새는 낯설지 않다. 흔히 볼 수 있는 소나무나 가문비나무의 친척 같다. 둥치가 쭉 뻗은 게 믿음직스럽고 하늘로 거침없이 팔을 펼친 게 당당하고 의젓하다.

멋진 통나무 집 앞에서 차가 멈췄다. 잿빛과 황금빛 나무로 지어진 민박집은 멋진 별장처럼 아름다웠다. 여학생은 2층에, 남학생들은 아래층에 방을 정했다. 그런데 우리 숙소인 2층 방이 어찌나 큰지 2학년 영어과 학생 전체가 다 와도 될 것 같았다. 자연의 아름다움을 고스란히 보여주는 큼지막한 창문, 그리고 높은 천장. 이곳은 모두가 여유로운 것 같다. 날마다 나무와 꽃과 풀과 새들의 노래를 들어서인지 인심도 후하다. 짐을 풀어놓고 밖으로 나왔다. 뉘엿뉘엿 서쪽으로 넘어가는 석양이 아름답게 산마루에 걸쳐 있었다. 산은 오늘도 말없이 우리를 반겨준다. 그 속에 어마어마한 보물을 숨겨 놓았으면서도 늘 겸손하고 포근하다. 그래서 어쩌다 소나기가 후두둑 한바탕 투정을 부리고 가도 그냥 너털웃음으로 보낸다. 사람들이 도로를 내느라 허리를 뚝 잘라도 그 고통을 참아내고, 안테나를 세운다고 머리에 돌기둥을 박아도 묵묵하다. 다만 산의 고통이 곧이어 사람들의 고통이 된다는 사실에 가슴 아파한다. 그렇게 산은 인간을 사랑하고 인간을 마냥 보듬어준다. 인간만이 그 사실을 모를 뿐이다.

여자아이들 몇이 근처 개울로 내려갔다. 넓은 활엽수 나무가 커튼처럼 드리워진 시냇물은 깊은 산속에 있는 계곡물이라기보다 집 앞에 흐르는 시냇물 같다. 바닥에 동글동글한 조약돌과 모래가 있어 바닥이 노랗게 보인다. 아이들은 발을 담그고 얼굴을 씻었다. 산에서 만난 물은 우리가 항상 쓰는 수돗물과 차이가 났다. 우선 물이 깨끗하고 매끄럽다. 그만큼 수질이 좋다는 것이다. 물에 손과 발을 담그고 있던 여자아이들이 갑자기 날아오는 물줄기에 비명을 질렀다. 남자아이들이 물장난을 친 것이다. 여자아이들도 질세라 물을 움켜쥐고 공격을 했다. 하얀 물보라가 공중을 날아다닌다. 언덕 위에 있던 남자아이들과 담임선생님이 들어오자, 물놀이는 더욱 흥미진진해 진다. 결국에는 모두가 물에 빠진 생쥐가 됐다. 시원한 물줄기에 그동안 가라앉았던 기분이 되살아났는지 여기저기서 깔깔깔 웃음꽃이 한창이다. 누군가 찰칵 사진을 찍었다. 아이들은 손가락으로 V자를 만든다. 모든 것을 털어버리고 자신을 극복하겠다는 표시인지도 모른다.

한바탕 물장난을 쳐서 그런지 저녁밥이 꿀맛이다. 민박집에서 마련해준 불판에 가지고 온 돼지고기를 지글지글 구워 먹었다. 상추쌈에 싸 먹는 그 맛은 도시 콘크리트 건물에서 먹는 밥맛과 비교가 안된다. 선생님도 너무 맛있다고 하신다. 우리처럼 똑같이 개구쟁이가 되어 밥을 먹는 선생님이 그냥 큰오빠처럼 느껴진다. 이 날은 우리 반 모두가 한 식구가 된 기분이다. 친구가 이렇게 가깝게 느껴진 것은 처음이다. 산은, 자연은, 이렇게 우리 마음을 진정시켜주고 하나로 묶어주었다. 이 순간만은 경쟁도, 입시도, 서러움도 싹 사라진다. 그냥 서로를 안아주고 이해하고 싶은 눈빛만 오고간다.

그날 밤 우리들의 이야기는 끝이 없었다. 같은 반에 있었지만 서먹서먹했던 친구들이 마음의 벽을 깨기 시작했다. 그동안 마음에 품고 있던 고민들이 쏟아져 나왔다. 짐작하는 고민도 있었지만 전혀 뜻밖의 고민을 안고 있는 친구도 있었다. 자존심 따위는 없었다. 고민을 듣자마자 다른 아이가 맞장구를 쳤다. 자기도 똑같은 고민을 갖고 있다고. 울먹이며 자신의 콤플렉스를 얘기하던 친구가 활짝 웃었다. 이제는 혼자가 아니라는 것을 확인하고 위안을 받은 것이다. 그래그래! 맞아맞아! 아이들은 맞장구를 칠 뿐 아니라 적절한 대안도 제시해준다. 저만큼 떨어진 곳에서 선생님이 웃고 계셨다. ‘자식들! 저희끼리 북치고 장구치고 다 잘하는데…’ 그런 표정이었다. 우리는 알고 있었다. 선생님의 마음은 우리보다 열배나 아니 천배나 더 아팠을 거라고.

밤이 깊어 가는데 이상하게 우리들의 동공은 더욱 맑고 커졌다. 친구들과 나란히 누워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어서 그런지 하나도 피곤하지 않다. 숲의 요정들이 우리 몸에 좋은 향기를 솔솔 불어주고 있나보다. 가끔 곤충의 연주와 나뭇가지의 노래가 들려왔다. 숲은 바다나 그밖의 다른 휴양지에서 느낄 수 없는 신비로움을 준다. 숲에는 나무만 있는 것도 아니고 풀만 있는 게 아니다. 온 우주의 숨결이 만들어지고 생명이 탄생하는 곳이다. 그래서 우리는 숲에서 그렇게 많은 것을 얻을 수 있는 것이다.

숲속 여행을 다녀온 뒤 우리 반 아이들은 확 달라졌다. 밝은 웃음으로 자신감을 되찾았고 활발한 대화로 더 이상 외로워하지 않았다. 수업에 들어오시는 선생님들이 깜짝 놀랄 정도다. 그만큼 우리 반 분위기는 확 달라졌다. 단 한 번의 숲속 여행! 그것은 우리들의 나약한 청춘을 충분히 자극해 주었다. 숲에 다녀온 뒤 나와 우리 반 아이들은 휴양림 안에 있는 ‘은혜의 집’에 정기적으로 봉사를 가고 있다. 치매에 걸려 어린아이가 돼버린 할머니, 할아버지를 돌보면서 우리들은 숲속의 나무를 바라본다. 언제나 아낌없이 주는 나무! 그 나무의 심성을 닮아가는 것은 바로 우리의 청춘을 더욱 더 빛나게 하는 일일 것이다.

만족도조사
열람하신 정보에 대해 만족하셨습니까?
만족도조사선택

COPYRIGHTⒸ 산림청 SINCE1967.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