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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상 나를 품는 산
  • 입상자명 : 김민서
  • 입상회차 : 12회
  • 소속 : 청소년부
  • 장르 : 청소년부 글쓰기

서울에서 태어나고 자란 나는 한 번도 서울을 벗어나 살아본 적이 없다. 하지만 나는 산에서 나고 자란 아이들보다도 더 산을 아끼고 사랑한다. 산이 내게 준 향긋한 어린 시절은 또래들이 쉽게 겪어보지 못한 값진 선물이며, 지금의 나를 만든 힘이자 바탕이기 때문이다. 푸른 삼각산은, 개구쟁이 꼬마를 설레는 꿈을 가진 소녀로 키워냈다.
처음 진관동 삼각산 밑으로 이사 온 것은 7살 때였다. 어릴 때 나는 매일 들로 산으로 뛰어다녔는데, 산에는 놀 거리가 너무 많아 하루가 짧을 지경이었다. 봄에는 하얀 목련꽃을 따다가 소꿉장난을 했고, 여름이면 산에 보글보글 핀 아카시아 꽃을 우물거리며 달콤한 꿀을 맛봤다. 몇 안 되는 마을 아이들과 내가 가장 잘하는 것은 산골짜기와 숲을 탐험하는 것이었다. 탐험할 때는 적군인 고양이나 청설모에게 들키지 않도록 밤을 줍거나 계곡물을 담아오는 것이 임무였다.
하지만 내가 11살 때, 진관동에 뉴타운이 생기면서 사랑하는 마을을 떠나게 됐다. 가끔 찾아와서 그때의 바람과 흐르는 물소리, 아련한 풀냄새를 더듬고는 했지만, 그리운 옛 기억은 아련한 추억으로 남아 있을 뿐이었다. 마을을 떠나온 이후로 한 번도 그곳을 잊은 적 없었고, 추억 속 삼각산을 애타게 그리워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산을 추억하는 방법도 조금 달라졌다.
나는 서울 은평구 하나고등학교에 진학했다. 학교의 자리는 오직 나만을 위한 듯 아주 훌륭했다. 10년 전 내가 살던 집터가 학교에서 바로 바라다 보이는 것이다. 물론 개발 탓에 숲과 이웃집 대신 휑한 벌판만이 있지만 쓰라린 벌판 위로 나는 놀라운 광경을 보았다. 어릴 적에는 미처 몰랐던 삼각산의 위용이 벌판너머로 웅장하게 드러나는 것이었다. 그럴 때면, 나는 온 가슴을 가득 채워오는 산의 기운에 놀라곤 했다. 매일 보는 산인데도 볼 때마다 새로웠다. 기쁨인지 슬픔인지 알 수 없는 감정이 폭풍처럼 나를 뒤흔들었다.
그런데 문제는 삼각산을 볼 때마다 느껴지는 감정을 도무지 모르겠다는 것이었다. 처음에는 아름다운 경치에서 오는 행복감, 경탄이라 여겼다. 하지만 감정은 일주일, 한 달, 1년이 지나도 폭풍처럼 나의 온몸을 흔들었고, 멈추지 않는 감정의 홍수 속에서 그것이 단순한 행복감이 아님을 나는 깨달았다. 그리고 그 순간, 감정은 폭풍보다 더 강한 슬픔이, 눈물이 되어버렸다.
사실 산에 대한 감정변화가 단순한 느낌의 변화만은 아니었다. 고등학교의 치열한 학업 경쟁과 스트레스, 열등감 등이 나를 괴롭혔던 것이다. 중학교 때 공부를 잘했던 나는 학교를 우수한 성적으로 졸업했다. 나는 배우려는 열정으로 가득 차 하나고등학교에 진학했고 갓 입학한 새내기는 매일 아침 삼각산을 보며 포부를 다잡았다. 하지만 학교에는 나보다 뛰어난 아이들이 너무나 많았고, 마음만큼 나오지 않는 성적도 나를 절망의 심연으로 빠뜨렸다.
나는 이렇게 매일이 괴로운데도 산은 아무렇지도 않은 듯 담담하게 제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그런 산이 나는 너무나 부러웠다. 산은 스스로를 누구와 비교하지 않았다. 에베레스트산이 삼각산보다 더 높지만 그들은 각자의 모습을 가진 산일 뿐 서로 경쟁할 대상이 아니었다. 산은 안개 끼는 아침이면 제 모습을 감춘 채 속세의 소음을 담담히 듣고 있었고, 구름 한 점 없는 오후에는 위용 넘치는 자태로 우리를 내려다보았다. 제아무리 사람들이 웃고 울어도 동요하지 않고 제 자리를 지키며, 자연의 이치에 몸을 맡기고 세상을 내려다보았다. 산은 내가 가장 못하는 것을 가장 잘하고 있었다.
산을 향한 이 부러움은 곧 동경이 되었다 .마치 연인을 품에 안지 못하는 사람처럼 애타는 사랑이 되었고, 품으려 해도 품을 수 없는 산은 좌절과 슬픔이 되었다. 폭풍보다 더 쓰라리게 할퀴는 이 슬픔에서 헤어 나오는 데에는 꽤 긴 시간이 걸렸다.
그동안 나는 스스로를 믿고 사랑하는 법을 익혔다. 내게도 나만의 장점이 있으리라 믿고 오로지 나 자신과 싸우며 성장하기 위해 노력했다. 그 노력에는 산이 큰 힘이 되었다. 마음이 흔들릴 때면 삼각산을 올려보며 약해진 나를 다잡았다. 그러면서 산의 담담함과 강한 모습을 닮게 되었고, 폭풍우 같던 감정들도 하나씩 가닥을 잡아나갔다.
매주 주말 아침 나는 잠시 학교를 나와 삼각산에 오른다. 한 발 한 발 내딛을 때마다 들려오는 계곡물 소리, 흙냄새, 겁 없이 뛰어다니는 다람쥐와 청솔모들……. 등산길에 나무껍질도 만져보고 바위에 앉아 한 숨 돌리기도 하며 나는 참된 인생을 배운다. 빨리 정상에 오르고 싶어 뛰다시피 하면 얼마 못 가 지쳐버린다. 하지만 나를 제치고 오르는 사람들을 그저 욕심 없이 인정하고, 나는 내 갈 길대로 걷다보면 어느새 보이는 것은 발아래 언덕들이고, 불어오는 것은 정상의 신선한 바람이다. 매번 산에 오를 때마다 똑같이 첫 발걸음이 있었고, 그때마다 가파른 산을 어찌 오르나 하고 걱정이 밀려왔다. 하지만 겁내지 않고 용기 내어 내딛는 순간 나는 이미 산의 웅장하고 듬직한 얼굴을 닮아 있었다.
나는 매일 아침 일어나면 기도한다. 부디 산과 같은 사람이 되게 해달라고……. 어떤 일에도 흔들리지 않는, 그래서 나같이 아파하던 사람이 의지할 수 있는 산과 같은 사람이 되게 해달라고 말이다.
산은 힘들었던 시간을 딛고 보다 성숙한 내가 될 수 있도록 도와주었고 담담한 눈으로 나와 세상을 지켜보는 힘을 가르쳐주었다. 겁 많고 여리던 어린 꼬마를 이만큼 키워준 산. 산은 나에게 삶, 인생의 목표 그 자체이다. 나는 산과 같은 모습으로 나처럼 힘들어했던 사람들을 품고 도우며 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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