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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선 무제
  • 입상자명 : 양수정
  • 입상회차 : 11회
  • 소속 : 청소년부
  • 장르 : 청소년부 글쓰기

매 주 주말이면 아빠는 홀연히 집에서 사라지곤 한다. 어딜 그렇게 가는 건지 궁금해 하던 찰나에 아침 일찍 일어난 어느 주말에서야 나는 궁금증을 해소할 수 있었다. 아빠는 산행을 가셨던 것이다. 내가 이렇게 아빠한테 무심한 딸이었나? 곰곰이 생각해 보던 찰나에 몇 년전 우리 나라의 명산(名山)으로 손꼽히는 ‘나의 지리산 등반기’가 스치듯 떠올랐다. 아무것도 모르고 낯익은 지리산 이란 글자에 방방 뛰며 아빠를 뒤따라 갔다가 일년 치 고생을 몰아서 하고 왔던 그 때가.
초등학교 다닐 때 십분 거리에 있는 우면산 몇 번 억지로 갔던 걸 제외하면 등산 초보자 급에도 껴줄까 말까인 저질 체력이었던 나는 아빠와 외삼촌, 그리고 사촌들과 함께 지리산 등반을 떠났었다. 좀 평탄한 산을 오르는 것도 아니고, 지리산 제일 높은 봉우리 천왕봉을 목표로 떠난 일행은 나를 포함한 (외삼촌이 표현 하시기를) 똥강아지 무리 덕분에 등산 시작부터 마치기까지, 1박 2일이란 시간동안 다사다난한 일들이 생겼었다.
등산 시작 1시간도 채 안돼서 다리가 아프기 시작한 나와 사촌언니는 자꾸 뒤처졌고 그제서야 후회하던 나는 짜증이 머리 끝까지 차올라 훌쩍이며 칭얼대기 시작했다. 따라서 언니도 같이 훌쩍였지만 아무도 쉬어 가자 말도 안 하고 묵묵히 산을 올라가는 것이었다. 섭섭함에 우는 소리도 크게 내봤지만 우리 아빠인지 친척인지도 모를 정도로 무시하고 산행을 이어가는 모습에 섭섭했지만 이내 체념하고 돌계단을 올랐다.
산행하는 것보다도 우는 게 더 체력 소모가 컸던 건지 아니면 점심때가 돼서 그런지 몰라도 배에서 꼬르륵- 소리가 났다. 아빠가 가방에서 꺼내준 초코파이도 먹은 건지 기별도 안가고 애ㅤㄲㅜㅊ은 배만 퉁퉁 두드리다 보니 대피소에 도착했다. 그곳에는 이미 꽤 많은 사람들이 와 있었고 그제서야 표지판에 쓰여 있는 글자를 보고 왜 보고프다고 노래를 부를 때는 밥을 차려 먹지 못했는지 깨달았다. 지정된 장소에서만 취사가 가능했던 것이다.
점심 식사는 그야 말로 꿀맛이었다. 자주 끓여 먹던 라면이 그렇게 맛있을 수가 없었다. 특별한 재료를 넣은 것도 아닌데 먹고 나서도 아쉬울 정도로 맛있게 먹었다. 설익어 입안에서 제멋대로 굴러다니는 밥알 조차도 재미날 정도로 유쾌한 점심 식사 였다.
그렇게 익숙해져 다리 아픈 줄도 모르고 몇 시간을 걸어 오르니 또 하나의 대피소가 나왔다. 그곳에는 점심때 들렸던 대피소보다 훨씬 많은 사람들이 모여 있었다. 어두 컴컴한 저녁에서야 도착한 우리 일행은 그곳에서 숙박 문제를 먼저 해결하고 저녁을 먹기로 했다. 사람이 너무 많아 일행 모두는 커녕 여자들도 밖에서 텐트를 치고 자야 할지도 모른다는 대피소 직원의 말에 온몸에 힘이 쭉 빠져 버렸다. 그리고 그제서야 이상하게 발가락이 걸을 때마다 너무 아프기 시작했다. 아빠한테 발가락이 너무 아프다고 말하자 옆에 있던 의자에 나를 앉히고 신발을 벗겼다. 엄지 발가락과 검지 발가락 사이에 물집이 잡혀있었다. 그러게 아빠가 튼튼한 신발 신고 남자들 신는 스포츠 양말 신고 오랬더니 청개구리 같이 말도 안들었다고 호되게 혼난 뒤에 아빠가 급한 대로 응급 처치만 해주고 어쩔 수 없으니 좀 참으라고 했다.
밥 먹고 나서 혹시나 하는 마음에 숙박 할 수 있는 빈 자리가 났는지 아빠가 알아보러 갔다가 나와 사촌언니가 잘 수 있는 자리만 힘겹게 얻어 와 겨우겨우 편히 잠에 들 수 있었다. 눕자마자 잤는지도 모르게 자고 일어나 일출을 보러 바삐 걸음을 옮기는 사람들 사이에 껴서 가고 있는데 벌써 해가 떴다며 웅성이는 소리가 들렸다.
진짜 해가 떴을까? 운 좋게 일출 볼 수 있지 않을까? 그래도 이왕 올라왔는데.. 보고싶다는 생각에 발 걸음이 빨라졌다. 그건 사촌언니도, 외삼촌도, 아빠도 모두 마찬 가지 였나 보다. 우여곡절 끝에 천왕봉에 도착해 보니 이미 하늘이 붉게 물들고 있었다. 어제 같이 밤을 지낸 사람들이 다 올라왔는지 사람들이 참 많았다. 벌써 해가 다 떴나 보다고 아빠한테 말하던 찰나에 갑자기 주위가 발갛게 물들더니 누군가 소리쳤다. 해 뜬다고! 그 소리에 그 많은 사람들이 하나같이 고개를 돌렸다.
참 신기했다. 해를 뜨는 걸 보는 것도 처음이고 게다가 하늘과 맞닿아 있는 건 아닐까 싶을 정도로 높은 위치에서 일출을 보는 것이었기 때문에 나는 한동안 입을 다물지 못하고 멍하니 해가 완전히 뜨기까지 바라만 보고 있었다. 소원을 빌라는 아빠의 목소리에 빨리 집 가서 맛있는 밥 많이 많이 먹게 해주세요 하고 마음 속으로 비나이다 비나이다 말했다.
기념 사진도 찍고 가벼운 발걸음으로 내려와 아침도 먹고, 신나게 하산하던 나는 등산할 때 와는 달리 일행의 선두로 다람쥐처럼 재빠르게 콩콩 뛰며 내려 갔다. 조심하라는 아빠의 경고도 무시한 채 뛰어 내려오다 돌부리에 걸려 그만 구르고 말았다. 가뜩이나 목소리도 큰데 다쳐서 너무너무 아픈 고통의 호소는 얼마나 쩌렁쩌렁 했을까, 아빠는 서둘러 뒤따라 내려와 나를 부축하셨다. 똥강아지가 결국 일을 쳤다며 혀를 끌끌 차는 외삼촌의 목소리도 소리가 커지는데 한 몫을 했고.
빨리 내려가야지 하는 급한 마음도 사라지고 천천히 하산하다 보니 그제서야 나무를 타고 내려오는 청설모, 하얀 털을 가진 토끼, 형형색색의 야생화들이 눈에 들어왔다. 이건 무슨 꽃이고, 저건 뭐야? 물음표가 꼬리에 꼬리를 물고 늘어졌다. 나의 질문과 아빠의 답변이 얼마나 오고 갔을까, 처음 올라올 때 봤었던 음식점들이 주욱 늘어진 채 나를 반기고 있었다. 그렇게 다 내려와서 산을 올려다 보니 참 허무하더라. 산등성이가 구름 사이에 가려 보이질 않았다. 저렇게 높은 곳을 내가 올라 갔었다는게 믿겨지질 않았다. 이틀 간 총 걸은 거리를 합해 보니 거의 20Km 정도에 다다랐다. 할머니 집으로 돌아가는 차 안에서도 그 이틀 간의 등반기가 한 여름 밤의 꿈을 꾼 것 같이 얼떨떨했다.
나는 이제 못할 게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 한계를 딛고 그것이 자의 든 타의에 의한 것이였던 간에 전진해 목표를 당당히 이루어 냈다는 것이 너무나 뿌듯했고 처음이 어렵지 두 번은 쉬운 것처럼 목표를 꼭 이룰 수 있을 것이라는 확신을 내 마음에 든든히 아로 새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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