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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상 또 다른 세상을 만나다
  • 입상자명 : 김 혜 빈 전남 여수 부영여고 2학년
  • 입상회차 : 7회
  • 소속 : 청소년부
  • 장르 : 청소년부 글쓰기

토요 휴무일 11:00
다른 날 같았으면 집에서 공부한다고 책상에 앉아 꾸벅꾸벅 졸거나 텔레비전 앞에 앉아 있을 시간이다. 하지만 오늘 나는 2시간 동안 달리는 버스 안 맨 뒷 좌석에서 가방 하나를 들고 앉아있다. 이 버스는 할아버지께서 계시는 시골마을로 들어가고 있는 중이다. 기사아저씨와 나뿐이다. 점점 도시와는 멀어지고 가을이라 나무들이 바람의 인사에 자신들도 답례한다며 몸에 붙어 있는 잎들을 떨어뜨리고 있다. 밖의 풍경은 건물이 빽빽이 있고 회색빛이었던 구름에서 점점 회색 물감에 흰색을 입히는 것과 같이 맑아지고 곳곳에 있던 건물들이 하나 둘 없어지는 모습들이 보였다. 다른 세상으로 들어가는 기분이었다.
이 버스를 타게 된 것은 가족들이 내가 고등학교에 들어와 얼굴이 많이 수척해지고 생기를 잃었다고 하면서 시원한 공기 좀 마시고 오라는 성화와 등 떠밀림 때문이긴 했지만, 고등학교 올라가서 사람이라는 것이 여러 사람하고 있어도 외로운 것이라는 것을 느끼게 되어 부쩍 외로워지고 무언가를 경험해 보고 싶은 모험심이 내 마음속에 생겨서 타게 되었다.
2시간 30분 정도 지나니 80년대에서나 볼 수 있었던 시골마을이 내 눈 앞에 펼쳐졌다. 공허한 것이 동네 전체가 폐허의 느낌이 났다. 버스에서 내리자마자 나를 반겨준 것은 소의 구린내 나는 똥냄새였다. 도시에서는 이런 냄새를 맡을 수 없었기 때문에 역겨운 냄새라 생각하고는 코를 막고 엄마께서 정성스럽게 적어주신 약도를 주머니에서 꺼내 그것을 보면서 할아버지집을 찾아갔다. ‘파란 대문… ’ ‘복숭아나무…’ 뭔가 단서가 될 만한 것을 떠올리고 외우면서 더듬거리며 찾으려 애썼다. 어렸을 때 할아버지댁에는 몇 번 오곤 했는데 여기 온 지 참 오래되었다는 느낌이 들었다. 생각해보니 거의 10년 만이었다. 계속 두리번두리번거리는 도중 바로 앞에 보이는 산 하나가 눈에 들어왔다. 어딘가 어색한 느낌이었다. 도시에서는 이렇게 푸른 나무들이 많이 있는 산은 눈 씻고 찾아보아도 볼 수 없다. 하지만 여기에는 그런 것이 있다. 나는 그야말로 웅장함에 입을 벌린 채 말을 못하고 손 하나 꼼짝할 수 없었다. ‘매일 보던 나무라곤 도로가에 잎이 다 말라죽고 썩어버린 가로수뿐인데….’하는 생각이 저절로 났다.
집을 찾는 일이 이렇게 어려운지 처음 알게 되었다. 어디가 어딘지 헷갈렸다. 하지만 그곳은 변한 것이 없어서 좀 신경 썼더니 길이 눈에 선했다. ‘파란 대문’에 드디어 도착했다. “할아버지, 안녕하세요?” 삐걱거리는 파란 나무 대문 사이로 얼굴을 내밀며 조그마한 소리로 인사를 했다. 그랬더니 집안에 계시던 할아버지께서 “아가 왔나? 오느라 힘들었지? 할아버지랑 갈 곳이 있는데 지금 가자!” 단호한 할아버지의 말씀에 나는 가방을 문 앞에 놓아둔 채 할아버지를 따라갔다.
뒤를 졸졸 따라간 곳은 내가 이곳에 와서 처음 봤던 산이었다. 한참 걸으며 나무가 울창한 숲속으로 들어갔다. “여기다” 하시는 할아버지의 손가락이 가리키는 것은 큰 키의 잣나무였다. ‘할아버지가 이거 보여 주려고 데리고 왔나? 시시하네!’ 나는 별 것 아니라는 생각에 대충 보고는 핸드폰을 만지작거렸다. 그러고 있는 동안 할아버지는 잣나무 위로 올라가셨다. 나는 그 장면을 보고 펄쩍펄쩍 뛰면서 내려오시라고 소리를 쳤다. “할아버지, 위험해요! 얼른 내려오세요!” 할아버지께서 나무 타시는 것은 어렸을 때도 한두 번 봤었다. 기억은 가물가물하지만 말이다. 70세가 넘어선 늙은 할아버지가 아무런 장비 없이 올라가시는 것은 위험해 보였다.
나는 처음에 할아버지가 핸드폰만 만지는 손녀에게 실망하셔서 그러시는 줄 알았다. 하지만 나중에 알고 보니 손녀에게 잣을 먹여주고 싶어서 정성껏 키우셨던 잣나무열매를 따러 올라가신 거였다.
“괜찮아. 괜찮아.” 태양에 가려 할아버지의 얼굴은 보이지 않았지만 즐거워하시는 목소리가 들려왔고 호탕한 웃음소리가 숲 전체를 울렸다. ‘뭐가 그렇게 좋으신지 무섭지도 않으신가?’ “괜찮아… 밑에서 잣이나 주워.” 얼굴도 보이지 않는 저 높은 곳에서 신이 말하는 듯한 울림소리가 끝나자마자 잣 열매가 우두두 떨어지기 시작했다. “할아버지, 천천히 하세요.” 그 소리와 함께 내 머리에 잣 열매가 콩하고 떨어졌다. “아야!”
잣이 떨어지고 그 사이 숲 사이를 떠돌던 바람이 확하고 불어왔다. 그 탓인지 잣 냄새가 더욱 진해져 코를 자극해 왔고 하늘에 닿을 만큼 키가 크고 얇은 잣나무 하나가 바람에 휘청휘청 흔들렸다. 잣나무 숲은 도시와는 다르게 그 나름의 향기가 다른 세계처럼 짙게 풍겨왔다.
그날 저녁 잣을 한 바구니 따서 할아버지와 나는 대청마루에 앉아 잣을 띄운 수정과 한잔씩을 마시며, 시원한 가을바람을 맞으며 이야기를 나누었다. 할아버지께서는 자연이 주는 것은 다 좋은 것이 라며 자연예찬을 2시간 동안 하셨다. 밝은 달도 보고 숲 저 끝에서 간헐적으로 들리는 부엉이 소리도 들으면서 말이다. 할아버지는 도시에서 힘들게 공부하는 내가 안쓰러워 보이셨는지 자꾸 얼굴을 어루만져 주셨다.
밤이 되어서도 나는 잠을 이룰 수 없었다. 내가 살던 곳과 너무 다른 이곳이 낯설기도 해서 그렇지만 밤에 이렇게 조용한 곳이 있나? 하는 의문이 들기도 했기 때문이다. 나는 골똘히 생각하다 잠이 들었다. 그날 꿈속에서 나는 나무들과 이야기하며 즐겁게 지내는 하루를 꿈꾸었다. 도시에서는 쫓기는 꿈만 꾸던 나에게는 편안한 밤이었다.
마당에 있는 닭소리에 아침 일찍부터 일어나 집에 갈 차비를 했다. 할아버지께서는 서운한 기색을 내비치시면서 “다음에도 또 와라.”라는 한마디 말을 하셨고 간식을 한보따리 주셨다.
다시 나는 집으로 가는 버스에 올라탔다. 손에는 집에서 가져왔던 가방 가득 할아버지께서 가면서 먹으라는 고구마와 감자, 그리고 어제 땄던 잣이 들렸다. 올 때보다 몸과 마음이 가벼워졌고 가슴속에 무언가를 담아가는 뿌듯함이 있었다. 긴 시간 동안 버스를 타고 오는 동안 처음 버스에서 내려 맡았던 소똥 냄새가 그리웠고 부엉이 소리, 맑은 공기 등 그곳에 있던 것들이 그리워지기 시작했다. 학교에서 들었을 때는 귀찮은 존재일 뿐이었던 새소리도 아름다운 노랫소리로 들리기 시작했다.
집에 도착한 나는 “다녀왔습니다.” 한마디 말만 하고 방에 들어가 제일 먼저 잣나무 잎과 잣을 보석함에 넣었다. 그리움이 이루 말할 수 없었고 도시와는 딴 세상이었던 그곳에서의 추억이 마음 한구석에 자리 잡았다. 그날 저녁 할아버지가 늘어 놓으셨던 자연예찬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되었다.
내 몸에 아직 남아 있는 풀냄새와 자연의 냄새를 크게 숨을 들이쉬며 맡았다. 도시에서 맛볼 수 없는 이 냄새를 잊지 않기 위해서….
나는 내가 사는 곳이 아닌 또 다른 세상을 만났다. 마음이 시원해지고 순수해지는 그곳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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