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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상 숲과의 교감 그리고 우리의 삶
  • 입상자명 : 이 은 경 서울 중화고 1학년
  • 입상회차 : 7회
  • 소속 : 청소년부
  • 장르 : 청소년부 글쓰기

우리집에는 에어컨이 없다. 에어컨이 없는 이유가 부담스러운 가격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가장 큰 이유는 우리 아버지 때문이다. 아버지의 취미는 마라톤이다. 아버지는 자연과 교감할 수 있는 산에서 달리는 것을 좋아하신다. 자연의 아름다움을 사랑하시는 아버지는 에어컨 사용에 반대하는 입장이시다. 에어컨에서 나온 온실가스가 자연을 보존하는데 해를 끼치기 때문이다. 아버지의 마라톤 사랑은 땅을 밟고 공기를 호흡하며 달리는 일에서 자연 사랑으로 이어졌다. 이런 아버지가 빼놓지 않고 참여하시는 대회가 있다. 거북이 마라톤 대회이다.
이 마라톤 대회는 다른 대회와 다른 점이 크게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달리는 것이 아니라 주위 사람들과 대화를 나누며 걷는다는 점이다. 또 하나는 평지가 아닌 남산을 오르내린다는 점이다. 사람들은 이 대회에 욕심 없이 참가한다. 일등을 하겠다는 욕심도 없고, 남보다 더 빨리 도착하겠다는 욕심도 없다. 그저 산 속을 걸으며 자연과 교감하고, 대화를 한다.
어느 날 아버지께서는 혼자만의 즐거움 속에 나를 초대하셨다. 그래서 나도 아버지와 함께 거북이 마라톤 대회에 참가하게 되었다. 일요일 아침 일찍 일어나 남산으로 갔다. 겨울이라 굉장히 추웠다. 괜히 온 것 같다는 생각을 하는데 아버지께서 빨리 출발하자 하셨다. 출발 신호와 함께 남산을 오르기 시작했다. 막상 아버지와 둘이서 걷자 할말이 없어 어색했다. 아버지와 둘이서만 이야기를 나누어 본 것이 얼마 만인지. 아주 꼬마였을 때는 아버지 팔에 매달려 회사에 가지 말라고 졸랐던 적도 있었는데…. 말없이 산을 오르는데 푸른 이끼가 길 한 쪽을 가득 메우고 있었다. 그 모습이 너무 신기해 아버지께 이끼를 보시라고 말했다. 그러자 아버지께서 말씀하셨다.
“일상생활에서는 볼 수 없는 것들을 산에 오면 볼 수 있지. 내가 이 마라톤 대회에 참여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단다.”
이끼이야기로 시작하여 나는 그날 아버지와 많은 대화를 나누었다. 이야기는 남산의 볼거리에서 남산 주변으로 옮겼다가 아버지 이야기로 돌아왔다. 아버지는 지난 12월 명퇴하셨다. 추운 겨울 날씨만큼이나 아버지의 퇴사소식은 우리 가족 모두에게 너무나도 차갑게 느껴졌다. 그동안 많은 시간 얼굴을 마주할 기회가 없었던 아버지가 하루 종일 집에 계시자 식구들의 분위기는 가라앉았다. 더 많은 시간을 아버지와 함께 보내게 되어 나눌 이야기가 많을 것 같았는데, 우리는 전보다 더 말을 아꼈다. 아버지는 그 후 마라톤을 시작하셨다. 마라톤 대회는 힘들어하고 계시던 아버지에게 힘을 불어넣는 매개체가 되었다. 아버지는 마라톤을 시작하시고 훨씬 밝아지셨다. 그리고 거북이 마라톤대회에서 함께 산을 걸으며 아버지께서는 처음으로 속에 담아 두셨던 이야기를 꺼내셨다. 18년이 넘도록 다닌 회사를 그만두게 된 것에 대해 실망감과 안타까움을 감출 수가 없다고 하셨다. 창문이 꽉꽉 막힌 집에서 들었으면 슬프기만 했을 이야기가 산 속을 걸으며 들으니 슬프거나 힘겹게 들리지만은 않았다. 아버지의 목소리와 함께 쏟아져 나온 하얀 김이 오히려 가슴 시원한 느낌을 갖게 했다.
남산을 걷는 내내 나무들이 보였다. 식물에 대해 잘 모르는 내 눈에는 모든 나무가 똑같이 생긴 듯 해 보였다. 하지만 아버지께서는 남산에 200여 종의 수목이 있다고 하셨다. 200여 종의 수목이라는 이야기를 들으니 새삼스레 남산이 거대하게 느껴졌다. 이 거대한 남산은 그 크기만큼이나 그 산길을 걷는 사람의 마음도 크게 만들어 주었다. 도심 한가운데서 빽빽이 들어선 고층 건물 사이사이를 지나다니며 좁아질 대로 좁아진 내 마음, 그리고 우리 가족의 마음을 풀어주었다. 비좁고 쾨쾨하기만 하던 나의 일상에서 오랜만에 느끼는 자유로움 그리고 상쾌함. 이를 멀지 않은 남산에서 느낄 수 있다는 점에서 남산이 커다란 의미를 지니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버지 옆에서 산길을 걷던 그날, 나는 한 뼘쯤 큰 것 같다고 생각했다. 이 답답한 서울에 산이 있어서 다행이다. 국민의 1/4이 모여 산다 할 만큼 복잡한 서울. 사람도 동물인 만큼 숨을 쉬고 자연을 누비고 산다. 그러나 도시의 삶이 거듭될수록 사람들은 삭막한 자연만큼 삭막하게 살게 되는 것 같다. 이런 도시인들에게 산은 산소통만큼 귀한 존재가 아닐까? 누구나 숨을 쉬어야 살지 않는가. 이제 도심의 산은 인간의 기본권을 보장해 주는 존재이다.
아직 어린 나이인 나도 이 세상을 살아가며 꽤 많은 것들과 부딪혔고, 타협을 하였다. 그 충돌과 협상은 모두 편하고자 한 일이었다. 편하기 위해 내 양심을 버려본 적도 있고, 나에게 올 이득을 계산해본 적도 있다. 하지만 이로 인해 온 이득은 얼마 되지 않은 것 같다. 아무리 타협하고 대화하여도 나는 그대로였다. 오히려 내 마음속이 바늘구멍만해지는 것을 느꼈다. 그러나 신기하게도 그 좁디좁은 마음과 함께 산을 오르며 자연과 교감하다 보면 어느 새 내 마음은 제법 관대해져 있다. 이런 과정이 자주 이루어진다면 내 마음속도 언젠가는 조금 커지지 않을까 싶다.
산에 오르는 것. 그것은 단순히 오르는 것이 아니라 자연과 교감하며 내 마음을 넓히는 일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그 마음을 넓히는 과정 속에서 자연을 사랑할 수 있는 방법을 배우고, 그 배움이 곧 우리들을 좀더 윤택하게 만드리라 생각이 든다. 사람도 결국 자연의 일부이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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