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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선 월미산에 오르며
  • 입상자명 : 박 정 순
  • 입상회차 : 6회
  • 소속 : 일반부
  • 장르 : 일반부 시·수필

한국전쟁 이후 군사시설보호구역으로 일반인의 출입이 엄격하게 통제됐던 월미산이 2001년 10월부터 개방되었다.

인천과 수도권을 비롯해 전국에서도 이름난 관광명소인 월미도의 주산이지만 사철 매력을 풍기는 모습을 멀리서 바라만 볼 뿐 그동안은 ‘접근불가’지대였었다.

육지와 좀 떨어져 있다하여 명색이 섬 취급 받으면서 근대에 들어와서는 숱한 외세의 침략에 시달린 역사적 현장 월미도.

이젠 본디 섬이었다는 흔적조차 남아있지 않은 그 산이 개방된 이후 자주 찾아가게 되고나서 난 그 숲에 수많은 생물들이 터 잡아 산다는 걸 알게 되었다. ‘반달 꼬리’란 낭만적인 이름의 산이 한때 대疸?遠막?불릴 만큼 황폐해졌고 6.25 전쟁을 겪으며 집중포화를 받아 더욱 민둥산이 되었지만 누가 돌보지 않았어도 놀라운 자연의 복원력으로 지금의 숲을 이룬 것이다.

오랜 세월동안 인간으로부터 아무런 간섭도 받지 않으며 마음껏 자란 아름드리나무와 여러 식물들의 상생, 나무뿐만 아니라 숲에 의지하여 다양한 동물이 살아가고 있는데 역설적이게도 사람 손길이 가지 않음으로서 천연상태인 채로 잘 보존되었다고나 할까.

그러나 자연생태계 측면에서는 보호를 받아온 셈이지만 다른 말로 하면 지난 수십 년 동안 그 숲이 방치돼 있었다는 뜻일 수도 있다.

가을이 익어가는 산. 물푸레나무는 이름대로 아직 푸른 청춘이지만 햇살 무게에 흐너하게 늘어진 잎사귀 갈피갈피마다 가을빛을 숨겨놓았고, 내년 봄이면 화사한 꽃으로 산을 온통 뒤덮을 토종 벚나무들도 느긋이 해풍욕을 즐긴다.

어느 해보다 더위 모질던 지난여름을 잘 견뎌낸 홍단풍이 거세지 않은 바람결마저도 힘겨운지 포물선을 그으며 내려앉는다. 떨어져 내리는 순간에도 아름다워 보이는 건 단풍뿐이라는 걸 과시하려는 것처럼.

다람쥐, 청설모의 겨울 양식을 마련해주는 굴참나무와 산밤나무 숲 아래에선 노루오줌, 매발톱꽃, 고마리와 둥굴레가 자라고 담쟁이덩굴이 담장 대신 나무를 감아 오르고 있다.

골고루 햇빛 좀 들게 머리를 비켜달라고 키 작은 나무들로부터 숱한 항의를 받았을 키다리 곰솔이며, 나도 여기 있소! 고개를 기웃 내미는 산뽕나무가 혹독한 자연재해 앞에선 서로의 슬기로 뭉쳐 극복해냈으리라.

은둔의 계곡, 백년 고목 자궁 속에 둥지를 틀고 새끼를 낳아 기르는 딱따구리 부부와, 그와는 원수지간인 황조롱이가 각자에게 주어진 삶을 이어가고 있다. 제 영역을 주장하는 끝물 풀매미들의 합창은 도시의 가로수에 달라붙어 악만 남은 듯 울부짖는 말매미소리와 또 다른 느낌을 준다.

웬만한 풀조차도 제 뿌리를 건사하지 못하는 산 정상께엔 오랜 세월동안 거친 갯바람을 견디고 모진 굴곡을 견뎌내느라 온몸 뒤틀린 벽오동들이 꿋꿋이 섰다.

새로 지은 전망대에서 사방을 내려다본다. 모듬발로 훌쩍 건너뛸 수 있을 듯 만만한 거리의 영종도 국제공항이 한눈에 들어온다.

드문드문 흩어진 조각 섬, 바다를 누비는 어선과 유람선.

반대쪽으로 눈을 돌리니 활력 넘치는 인천항이다. 화물선에서 내려져 곧 야적장으로 옮겨질 원목들이 산처럼 쌓여있다. 어느 낯선 원시림에서 이곳까지 오게 되었을까.

오랜 은둔에서 깨어나 새로운 명소로 자리 잡은 월미산은 지금 공원조성 공사가 한창이다.

생태 숲으로서의 기능을 담당하는 자연보존구역과 인공조림구역을 구분하여 나무 심고 가꾸느라 부산하다.

공원 풍경도 사람세상과 다를 게 없어서 솜씨 좋은 정형외과 의사가 공들여 매만져놓은 듯 아담하게 생긴 나무들이 눈에 잘 띄는 앞쪽을 차지한 반면, 그 뒤로 거기 구색 맞추어둔 나무들이 차지하고, 잡목 취급 당하는 보통의 나무들이야 으슥한 기슭으로 밀려나 있다.

나무들을 저런 외형 위주로 줄 세워 버린 것은 사람일 것이다. 아니, 사람들의 머릿속 생각이다. 나무 특성이나 생장(生長)여건이 문제가 아니라 보기 좋은 것을 앞에 세워놔야 그들 사고에 맞는다.

산을 놔두고 사람 곁으로 내려온 나무들은 사람을 닮아야 한다는 듯이.

아니나 다르랴. 이 산을 두고 벌써부터 여러 기관과 단체들의 주장이 봇물처럼 쏟아지고 있는 모양이다.

각종 편의 시설은 물론, 여러 사람들의 이해관계에 따라 온갖 상징기념물이나 공공시설이 산에 들어설 예정이라는데 벌써 곳곳을 파헤치며 공사가 진행되고 있다. 무슨 공사인가 한답시고 땅을 건드려 놓아서 지난여름 수해에 산사태가 난 계곡이 흉물스러워 보이기까지 하다.

이러다가는 오히려 통제하던 시절보다 더 볼썽사나운 누더기 산이 될지도 모를 일.

숲을 보호하는 것이 사람이고 죽이는 것도 사람이다.

산이, 숲이 더 이상 죽어 가면 안 된다. 우리에게 주어진 태초의 푸른 미래가 갉아 먹히면 안 된다. 인간의 생각 짧은 이기심 때문에 마구 베어낸 그 자리에 다시 나무를 심는 외국의 사례를 눈여겨보아야 한다.

콘크리트와 아스팔트와 유리벽에 갇혀 도시형 로봇이 되다시피 한 내 육신을 잠시나마 자연의 일부로 돌려놓는 이 시간, 산에 들면 마음이 편하다. 마음만 아니라 몸에 찌든 일상의 이끼들이 말끔히 씻기어지는 느낌이다.

산에선 산의 향기, 숲의 냄새가 난다.

사람들이여, 숲에 오려거든 인공의 화장기를 모두 지우고 올라가자. 그것은 대자연과 다른 사람들에 대한 예의다. 그들이 주인이면 우리는 손님으로서의 도리를 다해야 한다.

아파트단지 안에 뿌리 옮겨 심어진 소나무보다 이곳 소나무를 대하는 느낌이 다른 건 제자리를 지키고 있는 것에 대한 정겨움에서가 아니겠는가.

월미산 공원.

도심 가까이에서 이만큼 다양하고 자연스럽게 형성된 생태환경 모습을 갖춘 곳도 그리 흔치는 않을 것이다. 그것들과의 교감을 마음껏 누릴 수 있다는 건 도시민으로서 큰 행복이다.부디 인천시민은 물론, 수도권과 모든 국민들로부터 사랑받는 친근한 휴식공간이 되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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