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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선 백덕산이 있어 행복합니다
  • 입상자명 : 이 효 자
  • 입상회차 : 6회
  • 소속 : 일반부
  • 장르 : 일반부 시·수필

원목적은 벌초하는데 있지만 휴가를 떠나는 기분으로 山을 오릅니다. 지난 여름 태풍 ‘에위니아’가 물러가고 바로 장마철 폭우가 강원도 일대를 덮쳤지만 풀 한포기 흐트러지지 않고 무사한 오솔길을 만나니 안도의 한숨이 절로 터져 나옵니다. 날씨도 기분만큼이나 쨍하게 좋습니다. 홀가분해진 머릿속으로 휴식을 뜻하는 한자 휴(休)자를 뜯어보니 사람(人)과 나무(木)가 하나로 묶여 있습니다. 여름 내내 밭이랑에서 흙먼지만 뒤집어쓰던 제가 오늘은 나무곁에 서서 휴식을 취하는 날입니다.

“우리가 물이라면 새암이 있고 우리가 나무라면 뿌리가 있다.”

물과 나무가 시작되는 汰?곧 山이지요. 제 나이 서른 다섯이 되던 해부터 山과의 인연이 시작되었지요. 네 개의 봄을 누워서 보낸 아버님이 운명을 달리하신 후부터 백덕산과 친해지기 시작했지요.

백덕산은 제가 사는 강원도 횡성군과 평창군의 경계가 되는 문재터널에서부터 시작이 되지요. 횡성, 평창, 영월 3개 군에 걸쳐 있는 백덕산을 예전에는 사재산(四財山)이라고도 했답니다. 예로부터 (동쪽의 동칠 - 옻나무), (서쪽의 서삼 - 산삼), (남쪽의 남밀 - 꿀), (북쪽의 북토 - 흉년에 먹는다는 흙). 이 네 가지의 보물을 가지고 있다고 하여 四財山이라고도 불리는데 지도에는 백덕산으로 표기 되어 있습니다.

백 가지 약초가 자생하고 백 가지 덕을 품었다는 백덕산은 멀리서 보면 하늘과 맞닿아 아득해 보이지만 가까이 다가서면 마음이 활짝 열리는 곳이랍니다. 차령산맥의 한줄기인 백덕산은 유구한 역사와 아름다운 문화가 공존하는 곳이기도 합니다.

겉보기엔 山이 잠자는 듯 고요하지만 그 속내를 들여다보면 세상사 같은 아기자기한 이야기들이 골골이 들어차 山에 있는 동안만큼은 시간 가는 줄 모른답니다. 비, 바람 이기고 고고히 살아가는 나무, 누구나 다 아는 흔한 이름을 가진 나무, 수령이 오래된 나무, 혼자 일어서지 못하고 키 큰 나무에 기대어 꽃을 피우고 열매까지 맺는 넝쿨들의 모습이 우리네 삶과 일치하고 있습니다.

산노루 겅중겅중 뛰어간 발자국을 따라 산문 안에 들어서면 골짝을 타고 흐르는 불경소리 나지막이 들립니다. 새들의 연주로 하늘 문이 활짝 열린 백덕산에는 사계절 꽃 축제가 벌어지고 있답니다. 눈꽃이 지고 나면 김소월님의 진달래로 시작을 하여 철쭉, 얼레지꽃, 싸리꽃, 원추리꽃에 이어 지금은 보랏빛 향기를 머금은 칡꽃이 온 산하에 향기를 풀어놓았습니다. 은은하면서도 가볍지 않은 그윽한 향기 그 향기에 한번 취하고 나면 몸속의 무거운 노폐물이 싹 씻기는 듯 합니다. 코가 맹맹한 사람도 칡꽃향기에 한 번 휘감기고 나면 그 아찔함을 두고두고 잊지 못합니다.

금잔디로 지은 집에 깊은 잠 취하신 아버님은 해마다 벌초하는 우리 가족들에게 칡꽃향기를 선물하십니다. 가끔씩은 땀 뻘뻘 흘리는 자손들에게 얼얼하게 아픈 벌침 한 대 씩 놓아 주시기도 하고요. 예고 없이 기습적인 벌침 한, 두 대씩 맞은 사람들은 정신이 번쩍 들어 삶에 가속도가 붙는다고 합니다.

말벌과 땡삐에게도 여러 번 쏘여보고, 칡꽃향기의 깊은 맛도 잘 아는 남편은 이다음에 목숨이 다하면 수목장으로 묻혀 나무로 환생하고 싶다고 합니다. 남편은 독야청청 푸른 소나무를 아주 좋아합니다. 그리고 山자 붙은 山도라지, 山나물, 山버섯 같은 것을 아주 특별하게 여깁니다. 아버님을 말할 때도 돌아가셨다는 말을 쓰지 않습니다. 山에 계신다고 합니다.

저도 남편을 따라 山에 자주 가다보니 山의 주인이 되어갑니다. 바람에 풀어진 ‘산불조심’ 현수막 끈을 단단히 동여매 주기도 하고, 소나무 재선충은 없는지 관심을 갖고 백덕산을 왕래합니다.

산의 건재함을 비는 우리 부부는 山을 통해 신과 소통합니다. 낙엽 속에 꼭꼭 숨어있던 귀한 버섯을 발견해도 산신님과 아버님이 주신 선물이라고 생각합니다. 또 山은 참깨보다 더 고소한 깨금, 각각 종류가 다른 딸기맛과 다섯 가지 맛을 내는 오미자 맛도 보여 줍니다. 도토리 풍년이 들면 제가 여름 내내 땀 흘려 농사지은 것보다 더 푸짐합니다. 山은 山의 식구들만 먹여 살리는 것이 아닙니다. 도시 사람들에게도 맑은 계곡물 한 잔씩 권하고 싶어 합니다. 필요한 사람들이 산 쑥 한 배낭 뜯어내고 햇살에 반작이는 나물 몇 줌 뜯어낸다고 하여 백덕산이 꿈쩍인들 하겠어요? 사람이 다녀갈수록 지반이 더 단단해지고 수려해지는 백덕산은 모든 사람들의 휴식처가 되어 주기도 합니다. 山은 사람들의 영혼을 씻어주는 종교적인 영험한 공간으로도 존재합니다. 따라서 산행은 수행의 과정이기도 합니다.

5년전 IMF로 기업이 도산하여 실직되었던 우리집 남편도 山에 가서 한(恨)을 삭였습니다. 평생을 외발로 서서 살지만 비, 바람 묵묵히 이겨내는 나무를 보며 아픔을 이겨 냈다고 합니다. 쉬지 않고 변화하는 山의 모습을 보면서 마음을 다잡아 다시 사회에 복귀할 수 있었습니다.

山은 골골이 깊으나 빠져들지 않고, 높으나 오를 수 있지요. 山은 그 넓이를 짐작할 수 없이 무한하지만 세상일이 힘들 때 바라보면 손 내미는 자연입니다. 계절 따라 순환하며 옷을 갈아입을 줄도 아는 山! 山은 모든 사람들의 안식처도 되어주고 정신적인 풍요로움 주는 지상낙원이 아닐런지요.

찌든 일상에서 입은 해독을 산바람에 말끔히 풀어내고 돌아오는 길은 발걸음도 한결 가볍습니다. 벌초하고 내려오는 길에 쓰레기 몇 조각도 배낭 속에 거두어 넣습니다. 한반도의 허파역할을 하면서 사람과 상생의 관계를 맺고 있는 백덕산이 깨끗해야 우리 사람도 건강하고 상쾌할 테니까요. 천혜의 자연 자원이 들어 있는 백덕산이 건강해야 물도 마음 놓고 마실 수 있고 바위틈에 떨어진 山다래도 맨손으로 주워 먹을 수 있겠지요.

백덕산에는 있는 것도 많지만 없는 것도 있습니다. 백덕산에는 휴일이 없습니다. 울타리가 없습니다. 차별이 없습니다. 누구에게나 평등합니다. 언제든지 찾아가 기댈 수 있는 만인의 고향입니다. 백덕산은 언제든지 드나들 수 있는 저의 별장이기도 합니다. 가까운 거리에 늘 푸른 별장이 있어 제 삶이 더 풍요롭고 행복합니다. 마음 다하여 백덕산을 기립니다. 조상님이 계시는 백덕산을 숭배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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