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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선 팔공산에서 다시 한 번 울다
  • 입상자명 : 이승용
  • 입상회차 : 10회
  • 소속 : 일반부
  • 장르 : 일반부 시·수필

나는 평생을 대구 그것도 팔공산 아래에서 살아왔다. 어릴 때부터 소풍이다 야유회다 친구들과의 1박2일 짧은 여행은 죄다 팔공산이 차지하는 영광을 누려 왔기에 팔공산에 대해 특별함이나 새로움은 더더욱 나에게 없었다. 또한 등산을 좋아하지 않는다. 갓바위를 가끔 오르지만 즐기는 편은 아니다. 팔공산은 이렇듯 나에게 그냥 언제나 뒤에 있는 우리 동네 산이었다.
이렇게 팔공산을 뒤에 두고 어릴 때부터 나에게 그냥 언제나 뒤에 있는 우리 동네 산이었다.
이렇게 팔공산을 뒤에 두고 어릴 때부터 큰 병 치레 없이 자란 나는 군 전역 후 22살의 나이에 장사를 하겠다며 친구들 다가는 대학을 자퇴하고 장사를 시작했다. 자식이라곤 형과 나 둘이지만 형은 지체장애 2급을 가진 장애우다.
그래서 둘째이자 막내인 나에게 거는 기대는 클 수밖에 없었고 그 기대의 크기만큼이나 반대 또한 클 수밖에 없었다. 경상도 남자는 원래 아버지와 대화가 거의 없다. 일단 우리 집안은 그렇다. 거기에 내가 장사를 한다고 아버지와 싸우는 통에 우리 부자는 더욱더 멀어질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나의 철없는 장사는 시작되고 철없이 흐르는 시간에도 항상 아버지는 반대하셨다.
그러던 어느 날 어머니로부터 전화가 왔다. 선뜻 말을 꺼내시지 못하는 어머니의 전화기 넘어 흐느끼는 목소리에서 나는 무언가 잘못되엇다는 것을 직감할 수 있었다. 아버지는 급성심근경색으로 쓰러지셨다.
달렸다. 어머니는 우시고 아버지는 수술실에 들어가셨다. 수술 동의서를 설명하는 의사의 말이 하나도 들리지 않았다. '하늘이 노랗다는 게 이런 거구나' 생각했다. 수술 동의서에 사인 하는 손이 떨렸다. 다행이 수술이 잘돼 금방 깨어 나셨다.
나를 본 아버지의 첫마디를 아직도 잊을 수 없다. "나는 니 대학 가는 것도 못 보고 죽는 줄 알았다." 이 말에 눈물이 말없이 뺨을 흘러내려 갔다. 그리고 모든 것을 정리하고 27살이란 늦은나이에 2010학년도 새내기 신입생이 되었다.
늦은 나이었기에 모든 걸 걸고 싶었다. 잠자는 시간 외에는 도서관에 있었다. 그렇게 늙은 신입생의 하루하루가 지나가고 있었다. 그런데 군대를 포병으로 다녀와서 일 년에 꼭 몇번은 허리가 아파서 병원에 갔었는데 갑자기 도서관에 앉아 있을 수조차 없는 통증으로 다리까지 절룩거리는 것이었다.
나는 으레 있는 일이라 생각하고 한의원에 다니며 '또 이런다.'는 생각으로 일주일을 보냈다. 하지만 이번엔 달랐다. 다리가 악화되었고 결국 MRI를 직어 보니 4,5번 디스크가 흘러 다리 신경을 눌러 다리를 절룩거린다며 수술 후에도 다리를 계속 절 수도 있다는 것이었다. 어머니는 눈물을 흘리시며 한탄하셨지만 아버지는 아무렇지 않은 듯이 그냥 그렇게 거기에 서 계셨다.
수술은 잘 되었다. 하지만 역시나 걸음이 시원찮았다. 수술 후 한 달 뒤 퇴원하고 재활센터로 통원치료를 다니게 되었다. 물론 공부를 할 수 없는 상황이라 재활센터 다년온 후에는 집에서 책을 읽거나 누워 있는 일이 전부였다.
그날도 어김없이 재활센터를 다녀와서 집에서 책을 읽고 있었다. 아버지가 오시더니 먼저 말을 꺼내셨다. "운동삼아가 팔공산에 한 번 가까? 내가 기억하는 한은 평생 처음 나가는 부자만의 나섬이다. 나는 괜히 짧게 "네."라고 대답했다.
다리 근력을 키우는 것이 좋다고 해서인지 좋아하시지도 않는 산을 가자는 모도 성치 않은 아버지 말씀에 괜히 가슴이 뭉클해져 왔다. 오랜만에 외출이라 그런지 나도 모르게 설레어 왔다.
버스를 타고 산으로 향하는기분이 마치 어린 시절 놀이를 가던 기분이었다. 팔공산 동봉을 오르기로 하고 아버지와 산행을 시작했다 시작부터 수태골의 계곡에서 흘러나오는 맑은 계곡물 소리에 귀가 시원했다.
오랜만에 온 팔공산이지만 푸르름은 그대로였다. 파아란 숲 향기가 코 끝을 스쳐 거친 숨을 달래고는 머리 위에 앉는다. 기분이 좋았다.
산에 가자는 말 이후 처음로 다시 말을 꺼내신다.
"다리는 괜찮나?"
또 다시 짧게 대답한다.
"네."
이번엔 조금 머뭇거리시더니 다시 말을 꺼내신다.
"나는 니가 다리 전다 캤을 때 혼자 여기 왔었다."
산을 좋아하시지 않는 분이신데 '왜'라는 생각이 머리를 지나갔다. 이어서 나온 아버지에 말에 가슴엥서 울컥한 그놈이 눈으로 뿜어져 나왔다.
"여와서 혼자 마이 울었다. 장사하고 싶다 카는데 괜히 내가 공부 시키가 이래 됐는거 아인가 싶더라. 큰놈도 그런데 작은놈까지 내가 망쳤나 싶더라. 빨리 운동해가 나아가 뛰다니라.
다 나으면 공부 안 해도 된다. 건강하게 니 하고 싶은 거해라."
기세 좋게 뿜어져 나오는 그 놈을 짓누르며 말했다.
"아버지 죄송해요. 아버지 잘못 아닙니다."
더 이상 말을 잇지 못하고 아버지 품에 안겨 버렸다. 아버지도 또 한번 내 어깨를 적시는게 느껴졌다. 내가 기억하는 한 부자의 첫 포옹이고 아버지의 첫 눈물이었다.
처음 느끼는 아버지 품이 따뜻해서인지 파아란 숲 향기에 취해서인지 그 품이 너무 편안했다. 동봉에 올라 겹겹이 쌓인 거대한 산들을 보아서인지 한바탕 울어서인지 시원하게 부는 맑은 바람이 가슴에 쌓인 아버지와 나의 묵은 감정을 훑어가는 듯했다. 그리고 또 한번 이제야 죄송하다고 이야기하고 이제야 안아드린 못난 아들의 후회의 눈물을 가슴으로 흘렸다.
내려오는 길에 예전과 변함없이 말없이 아버지가 먼저 내려가신다. 그 뒷모습을 바라본다.
뒷모습은 산이다. 언제나 내 등 뒤에서 지켜주는 거대하고 따뜻한 산이다. 나는 그 산을 사랑한다. 언제나 내 뒤에서 맑고 푸른 거대하고 든든한 팔공산처럼, 아버지 건강하세요. 사랑합니다. 팔공산이 고맙다. 하지만 이제는 울 일은 없을 꺼다. 아버지와 다시 찾는 산행은 언제나 웃음과 산과 인사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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