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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선 편백나무 할아버지 이야기
  • 입상자명 : 이 신 창
  • 입상회차 : 7회
  • 소속 : 일반부
  • 장르 : 일반부 시·수필

정말로 막막했었다. 절망이란 이런 경우를 두고 하는 말일까 싶었다. 도무지 돌파구가 보이질 않았다. 아들녀석이 퇴근 후 뺑소니 차에 치어 목뼈를 크게 다쳤었다. 그런 아들녀석은 벌써 두 번째 수술을 준비하고 있고, 병원 원무과에서 일주일 단위로 날라오는 병원비 납부통지서는 정말 숨이 막힐 지경이었다.
그러니까, 아들이 경추손상으로 목의 한쪽을 몇 센티미터나 째고 수술했는데, 이번엔 반대쪽 목을 크게 째고, 엉덩이 옆 뼈를 잘라내, 손상돼 내려앉은 경추뼈 두 개에 덧붙여 보강시켜 주는 큰 수술이 기다리고 있었다. 그런데도 수술비마저 없으니 정말, 캄캄한 동굴 속의 벽을 더듬는 심정이랄까, 그런 기분이었다. 얼마 전 산재보험을 신청해 봤으나, 일과 후에 일어난 사고라며 부정적인 답변만 돌아왔었다. 산재마저 안된다니, 그 많은 병원비며, 퇴원 후 요양비를 어떻게 조달할 것인가를 생각하니 정말 막막할 뿐이었다.
아니, 그런 막막함 속에서 허우적거리고 있는데, 갑작스레 무슨 개발이라는 회사에서 전화가 걸려왔다.
아직까지도 고향땅에 할아버지 이름으로 남아 있는 선산이나 다름없는 산지인 임야를 처분하라는 것이었다. 바로 그곳에 골프장을 만들기 위해 이미 근처 산지는 매수가 완료되었고, 마지막으로 우리 땅을 포함한 몇몇 지번만 남아 있어서 종손인 나에게 일차로 연락했다며, 산지 값은 물론, 혹시 그곳에 선조들의 묘가 있다면 파묘에 따른 이장비도 넉넉히 보상해 주겠다는 솔깃한 제안이었다.
그 말을 듣는 순간, 나는 길을 잃은 컴컴한 동굴 속에서, 갑작스레 환한 불빛이라도 만난 듯 눈앞이 번쩍하며 밝아지는 기분이었다. 그렇잖아도, 병원비 때문에 밤을 꼬박 지새며, 궁리 끝에 지금도 할아버지 이름으로 남아 있는 그 산지도 생각해 보았었다. 할아버지가 살아 생전 손수 묘목을 키워 가꾼 지금은 소나무며 자작나무 속에 편백나무도 빽빽이 들어차 있는 산이었다. 혹시, 그런 나무를 저당 잡혀서라도 병원비를 융통할 수 없을까? 하고 몇 군데 알아봤으나 아직까지 꿩 구워 먹은 듯 감감무소식이었다.
나의 어린시절, 객지에 나가 자동차를 운전하던 아버지가 큰 사고를 내는 바람에 할아버지는 그만 합의금을 마련하기 위해 그 산을 내놓은 적이 있었으나, 그때도 산지가 맹지나 다름없는데다가 나무들도 이제 갓 자란 묘목 수준이라며 거들떠 보지도 않았었다. 그때 할어버지께서 사는 집이며 가재도구까지 팔아 아버지의 차 사고를 수습하며 아버지에게 한 말을 지금도 잊지 못한다.
“나무를 보고 배워라! 누운 나무는 열매를 맺지 못한다. 그러니 부지런히 일을 해 집을 다시 세워라!”
그런 생각을 하는 순간 살아생전 그 산 속에 움막까지 지어놓고 편백나무를 가꾸던 모습이 떠오른다. 가뭄 때는 손수 물지게를 지고 비탈길을 오르며 물을 주던 모습이 지금도 눈에 선하다. 마치 그 모습이 내가 보아도 산짐승같이 보여 허리가 꾸부정한 할아버지를 놀린 적도 있었다.
“할아버지는 산짐승 같아요”
내가 그렇게 놀리자 할아버지가 대꾸했었다.
“난 짐승이 아니고 나무인기라! 허리가 굽은 나무인기라! 두 발은 뿌리인기고 두 팔은 나뭇가지인기라!”
그 말을 듣는 순간 할아버지가 정말 한 그루 나무 같다는 생각을 했었다.
그때, 할아버지가 피곤한 듯 나무에 기대어 눈을 감고 있었다.
“할아버지! 왜 서서 주무세요?”
내가 할아버지를 흔들어 깨우며 말했었다.
“난 나무라서 서서 자는기라. 하늘을 바라보며 서서 살고 싶고 자고 싶은기라.”
그때 그 말을 듣는 순간, 할아버지가 정말 한 그루 나무 같다는 생각을 했었다. 그 시절 할아버지를 만나러 그 숲 속에 들어가면 마치 찬바람이 이는 듯 찬기가 느껴졌다. 그럴 때면 할아버지는 편백나무가 내뿜는 피톤치드라는 향기가 코를 찌른다며, 윗옷을 벗고 산림욕을 하라고 다그쳤었다.
할아버지는 잎이 황갈색인 편백나무엔 해충은 물론 개미조차 꼬이지 않는다며, 자랑이 끝이 없었다. 그때 효험을 보았는지 나는 성인이 될 때까지 아토피나 알레르기 한 번 모르고 자랐었다. 그랬던 산이었는데…. 어느 해인가 늦추위가 극성을 부려 몇 십 년 만에 철 늦은 혹한이 찾아온 적이 있었다. 그 때 할아버지가 짚으로 이엉을 엮어 편백나무 기둥에 감싸며 보온작업을 하다가 그만 그 자리에서 쓰러지고 말았다. 동네 사람들이 뒤늦게 발견해 급히 병원으로 싣고 갔으나 그만 운명하고 말았었다. 그런데 그때 동네 사람들이 나서며 구정 보름 안에 사람이 죽으면 땅을 파서는 안된다며, 날장을 하라고 주장을 펴는 바람에 아버지는 부득이 산 입구에 할아버지의 시신을 날장을 하고 나중에 택일해서 편백나무 곁에 정식으로 모실 요량이었다.
그런데 그해 여름, 갑작스런 폭우로 그만 계곡물이 범람하는 바람에 할아버지의 가묘마저 흔적조차 없이 쓸려가버린 것이었다. 그때, 아버지가 넋을 잃고 맨손으로 땅을 뒤지며 할아버지의 뼈 한 조각이라도 찾겠다고 안간힘을 다했으나 허사였다. 그때 아버지는 끝내 할아버지의 시신을 못 찾고 그 자리에 주저앉아 통곡하며 말했었다.
“니 할아버지는 편백나무가 됐을끼다!” 아버지는 어린 편백나무를 어루만지며 그렇게 말했었다.
그런 산인데…,
내가 그 산을 팔아버린다면…?
그런 나무들을 다 베어버리고 그곳에 골프장이…?
나는 번쩍 정신이 드는 것 같아 급히 차를 타고 개발회사로 달려가서 소리쳤다.
“그 산은 할아버지나 다름없는 산이니 안 팔 겁니다!”
그러자 개발회사 측은 가소롭다는 듯 내 앞에 서류를 내밀며 퉁명스럽게 말했다.
“자, 사전 환경성 검토서를 보세요! 녹지 자연도도 겨우 7등급이고, 겨우 소나무, 자작나무, 편백나무 몇 그루 가지고… 군락지도 못 된 걸 가지고 그러슈!”
“할아버지가 손수 심은 편백나무들은 어떡하구요?”
내가 의아해하자, 그들은 다시 서류를 내밀며 짜증스럽다는 듯 눈을 흘긴다.
“보라구요! 여기 있는 산지전용 입목축적 표준지 조사 총괄표에도 활잡목만 있다는데 무슨?”
“그 많은 편백나무들은 모두 어디 갔어요? 모두가 엉터리에욧!”
나는 문을 박차고 나와 차를 타고 고향의 편백나무숲 속으로 향했다.
편백나무숲은 예나 지금이나 나직한 하늘을 배경으로 서 있었다. 나는 잎을 떨군 가지들이 바람에 흔들리는 것이 마치 할아버지가 나를 보고 반기는 것만 같아 그 나무 곁에 앉아 귀를 쫑긋해 보았다.
“내가 나무를 보살피듯, 자식도 정성들여 키우면 이 나무들처럼 아름드리 나무로 보답할끼다.”
마치 편백나무가 우수수 몸을 떨며 할아버지처럼 나에게 말하는 것만 같다. 그 순간 갑작스레 편백나무 향기가 코를 찌른다. 머릿속이 박하사탕처럼 싸해지며 맑아진다.
그 순간 전화가 걸려왔다.
“키가 20m나 되고, 수령 사십 년이 넘은 편백나무들이 훌륭하더군요. 그 편백나무를 담보로 해서 필요한 자금만큼 융자해 줄테니 만나서 서류를 꾸밉시다.”
언젠가 수소문해 보았던 금융권에서 그 동안 산지에 나가 직접 나무를 확인했다며, 선박 건조용으로도 수요가 많다고 한다.
그 순간 언젠가 할아버지가 한 말이 다시 떠올랐다.
“나무는 거짓말을 안하는기라!”
정말, 할아버지의 말씀대로 편백나무는 그 동안 햇빛이 들면 즐거워하고, 흐릴 때는 얼굴을 찡그리면서도 사람을 배반하지 않고 잘도 컸다. 분명, 편백나무는 땅에 두 발을 뻗고, 하늘을 향해 두 팔을 벌리며 할아버지의 정성을 배반하지 않고 큰 수목이 되어 할아버지의 증손자 병간호에 대신 나서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우두커니 나무처럼 서서 나무들을 바라보았다.
“편백나무 할아버지가 증손자를 살렸어요!”
마음 속으로 외치는 나의 모습도 나무 같았다. 그런 나무들에게 더 이상 대화가 필요없듯이 나무들도 나에게 빈 가지만 흔들면서 마음 속 대화만을 나누자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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