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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선 수목장-그 여백의 미
  • 입상자명 : 이 용 호
  • 입상회차 : 7회
  • 소속 : 일반부
  • 장르 : 일반부 시·수필

‘수목장(樹木葬), 그것은 살아 숨쉬는 수묵화요!’
올 초, 환경운동가인 어느 후배가 술자리에서 자기 무릎을 치며 한 말이다.
그 사람의 말에 의하면, 수목장은 여백의 미를 살린 동양화라는 것이다. ‘김장수 할아버지의 나무’라는 이름표를 걸고 있는 굴참나무 옆에는 바람이 지나가고 새의 노랫소리도 들리는데, 정작 주인공은 보이지 않는다는 것. 그 풍경화 속에는 사람, 즉 이 세상의 주인공이 직접 나타나 있지 않고 여백으로 처리되어 있다는 것이다. 완벽한 여백의 미야, 순수 예술의 극치야. 침까지 튀겨가며 열변을 토하는 후배는 모처럼 희색만면이었다.
“형님, 저는 3년 전에 수목장을 이미 유언으로 남겼네요. 형님도….”
그 순간, 내 가슴 속에선 회오리바람 하나가 일었다. 나도 나름대로는 이 시대의 담론인 지구환경문제에 신경을 쓰며 살았다고 생각했는데…. 막걸리 한잔을 단숨에 들이켰다. 그 회오리 바람은 술기운에서 에너지를 얻어 더욱 세찬 소용돌이를 만들고 있었다. 혈관을 타고 온몸을 휩쓸고 다니던 그 회오리 바람은 아픈 곳을 쿡, 찌르더니 금세 사라졌다.
지구환경, 그것은 이제 우리 시대의 담론이 되었다. 하나밖에 없는 우리 삶의 터전인 지구가 몸살을 앓고 있다. 지구의 허파 역할을 하고 있는 아마존 밀림이 점차 사라지고 있다. 지구가 더워지고 있고 기상이변이 속출하고 있다. 지구의 몸살기를 이 시점에서 치료하지 않으면 암과 같은 치명적인 질병으로 전이될 수 있다는 것이 환경 전문가들의 진단이다.
가슴에 쌓인 것이 넘칠 기미가 보이면 나는 서둘러 모악산을 찾는다. 가까운 곳에 있으면서, 늘 처음처럼 늘 푸른 초심으로 나를 맞아주는 어머니의 품 속 같은 산. 서남쪽 자궁자리쯤에 고찰 금산사를 자식처럼 품고 있는 산. 그 모악산 등산은 내게 몸과 마음의 구조조정 과정이다. 얽히고 설킨 세상살이에서 돋아난 상념들 중 성숙되지 못하고 떫게 응어리진 것들을 하나하나 산길에 내려놓으며 내 가슴 속에 여백을 만들어 가는.
약 10년 전, 나는 다니던 직장에서 구조조정을 당했다. 명분은 있었지만 너무 앞서 간 것이었다. 준비도 없이 너무 높은 산의 정상을 탐낸 결과였다. 욕심에 숨고르기도 잊은 채 오르느라 길 옆에 ‘참나무’가 서 있는 줄도 몰랐다. 나만 옳다고 생각했다. 돌부리에 걸려 넘어져 무릎이 깨지면서도 바로 앞에 ‘너도밤나무’가 지켜보고 있다는 것도 깨닫지 못했고, 결국 짙푸른 낭떠러지로 떨어지고 말았다.
‘마음의 병에는 등산만한 약이 아마 없지…?’
멀리서 안타깝게 지켜보던 어느 선배의 지나가는 말이었다. 직장에서 쫓겨난 나는 갖은 방황 끝자락 어느 날 모악산을 찾았다. 고등학교 시절에 몇 번 가본 후 직장생활 때문에 좀처럼 찾지 못한 산이었다. 그날 나의 모악산 오르기는 생의 한 전환점이 되었다. 몸과 마음의 구조조정을 할 수 있는 계기가 되어주었다. 학교에서 왕따를 당한 아이가 엄마의 품 속에 뛰어들어 화풀이를 하듯, 그날 나는 세상에서 소외된 감정을 오악산 품 속에 뛰어들어 풀려고 했던 것 같다. 등산화와 등산복도 제대로 갖추지 못한 채, 씩씩거리며 뛰듯 올랐다. 좀더 빨리 산 정상에 올라 세상을 내려다보며, 세상에게 하고 싶은 말을 모두 쏟아 놓을 심사였다.
그날 나는 정상에 오르지 못했다. 칠부능선쯤, 수왕사 바로 앞 어느 키 큰 나무 밑에 주저앉고 말았다. 오버페이스였다. 수왕사에서 들려오는 잔잔한 법문소리를 들으며 그곳에 주저앉아 많은 생각을 했다. 발 앞에 몇 장의 나뭇잎이 떨어져 있었다. 또 한 장의 나뭇잎이 내 무릎 위에 떨어졌다. 무심코 주워 보았다. 물들기 시작한 그 나뭇잎은 다섯 갈래로 마치 사람 손가락 모양이었다. 그 나뭇잎으로 흐르는 땀을 훔쳤다. 정상으로 오르는 사람들을 보지 않으려고 눈을 감아버렸다. 법문소리는 그칠 줄 모르고 계속되고 있었다. 땀이 식어 한기를 느낄 때쯤 내 가슴 속에는 붉은 나이테 하나가 환하게 그어지고 있었다.
모악산 칠부능선에서 주저앉던 날, 긴 방황을 끝냈다. 빨리걷기와 조깅으로 몸과 마음의 구조조정을 단행했다. 5년 이상이 걸린 내 생의 대 프로젝트였다. 그 결과 42.195km 마라톤 풀코스를 두 번 완주했으며, 793m의 모악산을 자연스럽게 오를 수 있게 되었다. 한 번도 쉬지 않고 오르는 것이 나의 모악산 등산 원칙이지만 내가 잠시 머무르는 곳이 있다. 사철 칠부능선쯤에 서서 나를 기다기고 있는 고로쇠나무 앞이다. 그 옛날 생의 무게를 감당하지 못해 그만 주저앉았던 바로 그 자리.
‘인간에게 헌혈을 하고 있는 고로쇠나무!’
사진과 함께 실린 어느 기사의 제목이다. 그 기사는 인간의 무분별한 산림훼손을 지적함과 동시에 점차 각박해지는 헌혈 인심을 꼬집고 있었다. 직장에서 반 강제적으로 했던 한두 번 외엔 헌혈의 기억이 없는 나. 인간에게 자기의 피를 나누어주는 어머니 같은 고로쇠나무, 그녀가 궁금해졌다. 식물도감에서 그녀를 찾았다. 단풍나뭇과로 잎은 마주나고 둥글며 대부분 사람의 손바닥처럼 다섯 갈래로 갈라지며…. 비로소 나는 그 옛날 웃자란 마음으로 모악산에 올랐다가 도중에 그만 주저앉고 말았던 수왕사 앞 그곳이 바로 고로쇠나무 밑이라는 것을 알았다.
올 봄부터 내 가슴 속의 담론은 수목장이다. 내가 미래세대를 위해 할 수 있는 가장 소중한 일. 수목장, 그 세 글자가 내 가슴에 녹색 글씨로 새겨지는 순간, 내 가슴 속에는 고로쇠나무 한 그루가 뿌리를 내리고 있었다.
수목장, 그것은 나의 새로운 꿈이 되었다. 요즘 나의 모악산 등산은 하나의 설렘이다. 모악산 칠부능선쯤에서 변함없이 나를 기다려주는 그녀를 만날 수 있는 길. 문득 내 전생이 ‘고로쇠나무? ’
얼마 전 꿈자리가 뒤숭숭했다. 그 꿈 속에서, 누군가 나의 고로쇠나무에 하얀 이름표를 걸고 있었다. 주위 사람들 중 몇은 눈물을 흘리고 몇은 기도를 했다. 기도가 끝나자 사람들이 그 고로쇠나무를 향해 박수를 보냈다. 그들은 나의 고로쇠나무에 누군가의 수목장을 치르고 있었다.
다음 날 나는 서둘러 모악산에 올랐다. 그 고로쇠나무를 만나러 갔다. 가로 5cm, 세로 3cm의 내 이름표를 만들어 품은 채. 고로쇠나무, 그녀의 몸에 나의 이름표를 달아줌으로써 그녀가 나의 영생목임을 세상에 알리고 싶었다. 그 고로쇠나무에는 그 어떤 이름표도 붙어 있지 않았다. 깊은 사색에 잠겨 있던 고로쇠나무는 나를 보자 깜짝 놀라 몸을 추스리더니, 손가락 모양의 나뭇잎을 살랑거리며 반겨주었다. 하지만 그녀의 마음을 알 수가 없었다. 그녀는 과연 내 선택을 받아들일 것인가. 나는 가지고 간 나의 이름표를 꺼내 만지작거리며 한참을 나무처럼 서 있었다.
고로쇠나무, 그녀의 전생은 무엇이었을까. 혹, 전생에 맺지 못한 슬픈 인연을 그곳에 서서 기다리고 있는 것은 아닐까? 두 번의 심호흡을 하고 나서 모악산 정상을 응시했다. 이윽고, 나는 내 이름표 대신 내 마음을 그 고로쇠나무 우듬지에 걸어주고, 돌아섰다. 그녀의 아름다운 선택의 여백을 위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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