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의 바람이 일고
강물처럼 화음(和音)이 흐르고
그리고 계절이 바뀌고 있었다
아침나절, 수목들의 끈끈한 수액에 체온을 적시며
신열(身熱)을 삭이는 저들의 실핏줄 하나하나에 시선을 던질 때
한순간 잠들어 있던 깨달음이 이끼마냥 돋는다
맑은 물살을 불러 일렁이는 산 오름길
숲 갈피에 오래 전 끼워 둔 추억의 풀씨들이
안단테 곡조로 발자국을 찍고 있었다
자작나무 몇 개, 철 지난 언어의 껍질을 벗고
바람 속을 날아오르려 하고 있다
이 청정한 가을 숲 어딘가에 은밀히 젖어 흐르는
향기로운 숲의 꿈,
그 베일을 벗기려는 듯 시시각각 손을 끄는
녹색바람, 녹색바람…
갈매빛 하늘 한 자락 숲에 머물러 제 빛깔을 덧입힌다
허상(虛像)의 거울에서 빠져나와 우듬지에 걸쳐 묻고 답하는 새털구름
홀연 숲 언덕으로 푸른 휘파람을 날렸다
그때 내 귀는 무극(無極)의 호흡소리를 듣고 있었다
차오르는 숲의 강물
눈썹이 젖은 채 건강하고 달디단 숲 바람을 마셨다
나는 은빛 자작나무 한 그루로 우뚝 서 있었다
많은 날을 숲의 바람으로, 숲의 강물로
넓고 넓은 세상으로 흘러갈 꿈을 꾸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