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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선 자연 그 아름다움
  • 입상자명 : 임 숙 경
  • 입상회차 : 8회
  • 소속 : 청소년부
  • 장르 : 청소년부 글쓰기

어렸을 때부터 할머니댁 가는 게 참 좋았다. 할머니댁은 시골이었기 때문에 산도 있고 나무도 있고 냇가도 있고 푸른 하늘도 있었기 때문이다. 나를 반겨주는 자연이 있었다. 오르지는 않았지만 맑은 공기를 주는 산을 좋아했고 심지는 않았지만 그늘을 주는 나무를 좋아했다. 몸을 담그면 깨끗하게 해줄 것만 같은 냇가도 좋아했고 어떤 걱정이라도 다 날려 버릴 수 있을 것 같은 푸른 하늘을 좋아했다. 이것이 내가 할머니댁 가는 걸 좋아했던 이유였다. 도시의 복잡함에 지친 나는 어렸을 적부터 자연을 동경했고 사랑했다. 초등학교 때는 ‘시골에서 학교를 다니면서 영화 속의 아이들처럼 뛰어놀고 싶다’라는 생각을 했고 중학교 때는 ‘크면 한적한 근교에 자리 잡고 마당에 채소와 꽃을 가꾸면서 살아가야겠다’고 생각했다. 고등학생이 된 지금은 조금 먼 후의 일이지만 ‘늙어서 시골에서 농사를 짓지는 않더라도 작은 텃밭 하나를 꾸리며 살아가자’라는 생각을 한다. 나이를 먹을수록 멀어지고 현실적이 되어가는 꿈이지만 그래도 ‘언젠가는 자연으로 돌아가야겠다’라는 생각은 머릿속에 자리 잡고 있다.
그런데 나의 꿈이었고 내가 사랑했던 자연이 망가지는 사건이 일어났다. 내가 중학교 때쯤 할머니댁이 있는 마을에 대대적인 공사가 시작된 것이다. 고속도로를 만든다는 것이었다. 할머니와 마을 주민들은 플랜카드를 만들며 반대했지만 적절한 보상도 이루어지지 않은 채로 공사는 시작됐다. 많던 냇물이 반으로 줄어들었고 뿌연 흙탕물이 되어갔다. 공사차량이 내뱉은 매연은 푸른 하늘을 검게 물들였다. 낮에도 조용하고 한적하던 시골 마을이 순식간에 탕탕거리는 공사소리에 묻혀 말소리도 잘 들리지 않게 되었다. 그렇게 공사가 끝나고 원래 있던 냇가는 영영 덤불 속에 묻혀버리고 상류에 냇가가 생겼지만 깨끗함과 풍경은 원래 있던 것과 비교될 수 없었다. 탕탕거리던 공사소리는 사라졌지만 이젠 밤낮으로 자동차들이 다니는 소리가 새들과 마을 사람들을 놀라게 했고 공사차량이 내뱉던 매연은 고속도로를 달리던 차들이 대신 내뱉고 있었다. 자연은 그렇게 서서히 무너지고 있었다. 그 후로 할머니댁에 가는 즐거움은 자연스럽게 시들해져갔다. 지금도 물론 자연은 푸르렀다. 하지만 들어선 고속도로는 마치 불협화음처럼 자연의 아름다움에 옥의 티가 되었고 계절마다 바뀌는 곤충들의 소리와 바람소리는 고속도로를 가르는 자동차들의 소리에 파묻혀버렸고 산이 내뱉는 맑은 공기는 차들의 매연과 섞여 도시와 다르지 않은 공기를 만들었다. 이 모든 것들은 앞으로 할머니댁 마을이 완전히 개발되기 전까지는 눈에 거슬리는 작은 점이 될 것이다. 할머니댁 마을뿐이 아닐 것이다. 여기저기서 신도시 개발을 하고 아파트가 들어서면서 시끄럽고 복잡해지는 것은 시대의 흐름이라고 할 정도로 여러 곳에서 동시다발적으로 일어나고 있을 것이다. 서서히 자연은 인간들의 무모한 욕심에 설 자리를 잃고 후퇴하고 있는 것이다. 설 자리를 잃은 자연이 언젠가 우리에게 무슨 짓을 할지는 아무도 모른다. 우리는 우리 자신을 위협하는 행동을 하고 있는 건지도 모른다. 지금 우리 눈에 보이는 것은 선진국이 되어야 한다는 생각과 경제가 살아야 한다는 막연한 신념뿐일 테니 자연이 망가지고 사라지는 것은 신경 쓸 일이 아닐지 모른다.
물론 우리나라는 지금 한창 개발도상국에서 선진국으로 넘어가는 상태라 여러 가지 공장들과 도시가 필요할 것이다. 그러려면 도시는 더 복잡하게 되어야 하고 시골은 도시처럼 개발되어야 하고 갯벌은 간척지가 되어 시골이 되었다 다시 도시가 되어야 한다는 것을 안다. 하지만 나는 우리나라가 다른 선진국들과는 다르게 자연과 어우러지는 공존을 보여주길 바란다. 선진국이라고 해서 자연을 망치면서까지 도시를 개발해야 한다는 법은 없다. 도시를 많이 가지는 것만이 그래서 자연을 파괴해야 한다는 것만이 선진국이라는 법도 없다. 예전 자연과 어우러져 터전을 가꾸었던 선조들의 모습을 모두 재연할 수는 없겠지만, 새로운 도시와 새로운 개발을 포기할 순 없겠지만 그래도 한 발자국 물러나 자연을 다시 바라보는 즐거움은 빼앗아가지 않길 바란다. 어딘가에 자연을 보호할 수 있는 구역을 만들어야 한다. 그곳이 꼭 모두가 원하는 곳일 수는 없겠지만 자연을 아끼고 사랑할 수 있는 곳이기만 한다면 어디가 되어도 좋다. 우리에게 많은 것을 주고도 바라지 않는 자연을 우리에게서 너무 멀리 떼어놓지 않기를 바란다. 우리만 자연을 볼 수는 없다. 예전에는 있었다던 백두산 호랑이도 야생 여우도 우리가 볼 수 없는 것처럼 많은 야생동물들이 사라져버린 혹은 멸종위기에 처한 것처럼 하물며 어렸을 때는 보이던 다람쥐나 산토끼가 몇 년 사이에 급격히 사라지는 것처럼 개구리나 귀뚜라미가 후손들에게 멸종위기에 처한 동물로 인식되지 않기를 나중에 어른이 돼 우리가 고향 하나 추억 하나 떠올릴 소리조차 갖지 못하는 일이 없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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