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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선 학교에 미확인 생명체가 나타났다
  • 입상자명 : 한 누 리
  • 입상회차 : 8회
  • 소속 : 청소년부
  • 장르 : 청소년부 글쓰기

"으아아악! 저게 뭐야! 살아 있는 수세미…?”
아마도 그 일은 작년 여름방학 때쯤에 일어났던 것 같다. 그 당시에 많은 아이들이 학원으로 빠지거나 위층의 독서실에서 공부하고 있어서 교실에는 나와 내 친구, 단둘이만 남아 있었다. 둘뿐인 교실은 한동안 침묵을 지키고 있었는데, 돌연 어떤 덜컹거리는 소리가 그 정적을 깨고 들려오기 시작했다. 그 소리는 점점 빈번해져 나는 소리의 근원지를 찾기 위해 의자에서 일어났다. 그 순간 나는 내 눈을 의심할 수밖에 없었다. 바로 교탁의 잠긴 서랍이 심하게 덜컹거리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이상한 나라에 빠진 앨리스가 된 기분이었던 나는 친구를 불러 이 괴현상을 보여주려고 했다. 그 친구가 교탁으로 다가오던 그 때, 우리는 교탁 아래로 스쳐지나가는 털수세미를 볼 수 있었다. 그리고 우리의 비명소리는 허공을 가르며 전교에 메아리쳤다.
나중에 옆반 남학생들이 도와주러 와서 간신히 포획한 후에야 우리는 그 털수세미가 족제비의 꼬리라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학교에서 일어난 웃지 못 할 에피소드는 이것만이 아니다. 지난 중간고사 때의 일이었는데, 내가 히터 뒤의 창가자리에 앉아서 문제지를 보고 있을 때였다. 아무도 건드리지 않았는데 히터에서 자꾸만 삑삑거리는 소리가 들리기에 나는 신경질을 내며 히터를 세게 걷어찼다. 그러자 히터는 한동안 조용하다가 다시 삑삑거리는 소리를 내는 것이었다. 시험이 끝난 후 머리끝까지 화가 난 상태였던 나는 쉬는 시간 내내 히터의 이곳저곳을 살펴보았지만 그 어디에서도 히터의 문제점을 찾을 수가 없었다. 하루를 싱숭생숭하게 보내고, 본격적으로 히터를 살펴보고 나서야 나는 히터와 건물 밖이 연결된 관에서 아기 새들이 즐겁게 지저귀고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이런 일들이 일어날 수 있었던 것은 우리 학교가 논밭과 산에 둘러싸여 현대 문물로부터 우리를 지켜주는, 그야말로 천연 요새이기 때문이다. 도시와는 멀리 동떨어져 있는 우리 학교의 지리적 특성 덕분에 나를 비롯한 생물동아리 학생들은 언제든지 산에서 많은 연구대상을 찾을 수 있었고 숲을 알아갈 수 있었다.
숲을 알아간다는 것은 물론 숲에 대한 과학적 지식을 쌓아간다는 이야기이기도 하지만, 숲을 사랑하는 법을 알게 된다는 이야기이기도 하다. 입학한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에는 이런 환경이 전혀 즐겁지 않았다. 벌레도 잔뜩 있고, 오락실과 매점 대신 나무만 빼곡히 들어서 있는데 즐거울 리가 만무했다. 하지만 우리가 숲을 알아가면 알아갈수록 숲은 우리에게 너무나도 많은 것을 준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시원하고 깨끗한 공기, 도시에서는 볼 수 없었던 밤하늘 가득 바글거리는 별들, 그리고 자연에 묻힌 삶을 통한 치유.
우리는 TV를 보는 대신 나무 사이를 골대 삼아 축구를 하고, 더운 날이면 나무 그늘에 앉아 하늘을 바라보며 바람을 쐬었다. 여름엔 풀숲을 뒤적이며 곤충채집에 나섰고, 가을이면 수북하게 떨어진 낙엽을 밟으며 친구들과 정다운 이야기를 나누었다. 치열한 경쟁 속에 서로를 미워했던 감정도 숲에 훌훌 털어놓고 우리는 금세 다시 친해질 수 있었다. 우리는 숲을 가슴으로 이해하고 사랑하게 되었다.
그런데 몇 달 전에 깜짝 놀랄 일이 일어났다. 학교 옥상에서 누전으로 인한 불이 났던 것이다. 선생님들께서 신속하게 처리하신 덕분에 소방관들이 칭찬하고 갈 만큼 제대로 화재진압을 하긴 했지만, 검게 피어나던 연기는 아직도 생생하게 기억날 정도이다. 선생님들께서는 아침이었으니 망정이지 밤중에 이런 사고가 났으면 어찌되었을지 모른다고 하시며 혀를 차셨다. 작은 화재로 끝났으니 다행이었지만 만약 화학 실험실까지 불길이 미쳤다면 학교는 물론이고 온 산이 불바다가 될 뻔했다.
나는 문득 낙산사 사건을 떠올리며 그 소름끼치던 산불의 모습을 기억해 냈다. 산불은 수천, 수만 그루의 나무를 장작처럼 날름 삼켜버리고, 그 안에서 살던 수많은 동물들의 목숨을 앗아가며, 같이 자라던 그 모든 것들을 파괴해 버린다. 산불로 남은 상처는 내가 넘어져서 까진 상처에 딱지가 붙고 새살이 돋는 과정보다 몇 백 배는 느린 과정을 거쳐야 회복된다. 만일 우리가 화재를 막지 못했다면 우릴 지켜주었던 숲이 그렇게 크나큰 상처를 입게 되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니 가슴이 아팠다. 우리는 다신 이 학교에 화재가 나게 하지 않겠다고 다짐하였다….
지금은 우리의 다음 학년 아이들이 우리를 대신하여 생물 실험실을 지키고 있다. 그 아이들도 숲에서 자라난 꽃, 나무, 버섯, 곤충들을 관찰하고 실험하며 차근차근 숲을 배워나가고 있다. 그 아이들 역시 산을 사랑할 수 있게 될 즈음 아이들은 학교를 떠나게 될 것이고, 그 떠나간 자리는 그 다음 학년 아이들이 이어나가며 또 새로운 숲을 열어갈 것이다. 나는 이러한 숲을 알아가고 지켜가는 아름다운 순환이 언제까지고 계속되길 바라는, 조금은 큰 욕심을 부려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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