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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선 별이 날아다니는 맹산
  • 입상자명 : 조 유 경
  • 입상회차 : 8회
  • 소속 : 청소년부
  • 장르 : 청소년부 글쓰기

나는 오랜만에 유치원에서 준 앨범을 들춰보다가 ‘풋’ 하고 웃음을 터트렸다. 앨범에는 삐뚤빼뚤한 글씨체로 ‘맹산을 죽이지 마세요!’라는 제목의 일기가 있었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내 어릴 적 일기는 거의 맹산에 관련된 것이었다. ‘벌에 손가락을 쏘였다’ 등의 내용을 읽어내려 갈수록 내 머릿속에 옛 추억들이 새록새록 살아났다. 내가 졸업한 유치원 바로 뒤에는 맹산이라고 불리는 작은 산이 있었다. 꼬마였던 내가 올라도 그다지 힘들지 않았고 한 발자국씩 오르고 오를 때마다 시원한 시냇물 소리와 예쁜 새소리가 울려 퍼지는 그런 산이었다. 그곳에는, 최근에 자연 체험 장소로 꽤 유명해진 ‘맹산 반딧불이 자연학교’가 있었다. 유치원 활동 중 일 주일에 한두 번씩은 꼭 맹산 체험이 있어서, 나는 어린 시절부터 도시에서 체험하기 힘든 자연 속에서 자랄 수 있었다. 도롱뇽 알이나 개구리 알 등을 실제로 보고 부화과정을 살피는 일은 그 자체로 어린 내게 신선한 충격이었다. 고사리 같은 손으로 매일 올챙이가 성장해 나가는 모습을 공책에 그리고, 나무에게는 각각 이름을 지어주면서, 자연을 마치 한 명의 생명을 돌보는 듯 대하는 방법을 배워 나갔다.
이러한 영향으로 나는 초등학교 3학년 때까지 나무를 그릴 때 항상 눈, 코, 입을 달아주었다. 그 시절 내 버릇 중 하나는, 주말에는 아버지와 주중에는 유치원 친구들과 등산을 하는 것이었다. 등산로 입구 직전에 위치한 계단의 끝을 밟았을 때는 내가 거대한 나무의 도시로 들어온 것만 같이 느껴졌었다. 친구들과 나무에 달려 있는 이름표를 보며 나무 이름 외우기 게임을 하면서 올라가다보면 어느덧 등산로 옆에 비밀스럽게 위치한 첫 번째 약수터가 나왔다. 그 옆으로는 시원하게 흐르는 시냇물이 있어서 바라보기만 해도 가슴이 뻥 뚫리는 것 같았다. 나무 사이로 들이치는 햇살이 얼마나 아름답게 보였던지 나는 종종 엄마가 쓰라고 주었던 모자를 벗어버리곤 했다. 맹산은 산세가 대체로 완만해서 어린 나도 쉽게 오를 수 있었다. 산을 오르며 중간 중간 마주치는 다람쥐와 청설모를 보며 감탄을 터트리다 보면 지치는 줄도 모르곤 했다.
하루는 아버지와 함께 산을 오르다가 아버지가 갑자기 조용히 몸을 낮추시더니 조심스럽게 나무를 가리키셨다. ‘…딱다구리…’ 자연스럽게 머리에 떠올랐다. 부리로 열심히 나무를 찧고 있는 색깔도 고운 새의 모습. 실제로 보게 되리라고는 상상하지도 못했다. 나중에 새가 날아간 뒤 아버지와 나는 딱따구리가 부리로 열심히 쪼았던 나무를 보았다. “진짜로 뚫려 있어!” 나는 감탄에 찬 말을 내뱉었다. 정상에 올라가서 있는 힘껏 ‘야호…’를 외치며 건너편 산을 바라보았다. 그 순간만큼은 내가 세상의 중심이 된 기분이었다. 내 발 밑으로 수많은 건물들이 깨알같이 모여 있는 듯했다. 이렇게 산은 늘 나를 행복하게 만들어 주었다. 산에서는 자동차의 매연이 싫어 입과 코를 꼭 막지 않아도 되고 지나가는 굴삭기에 위험을 느끼지 않아도 되었다. 산은 나에게 일종의 탈출구처럼 다가왔다.
그러던 어느 날 맹산에서 자연보호캠페인을 벌이는 것을 보았다. 등산객들의 무분별한 행동으로 산이 매몰되는 등 훼손되고 있다는 내용이었다. 등산객들의 진입을 통제하고 경고성 메모를 숱하게 보면서 어린 나는 나도 가만히 있을 수 없다고 생각했다. ‘청설모를 다시 볼 수 없다니?’ 그럴 수는 없었다. 나는 유치원에서 친구들, 선생님과 함께 자연을 사랑해 달라는 글을 썼던 것이 기억난다. 작지만 마음을 울리는 글들이었다. 내 앨범에는 ‘맹산을 죽이지 마세요! 저는 아직 반딧불이를 보지 못했어요. 선생님께서 반딧불이는 요즘 시골에서도 잘 못 본다고 하셨어요. 저는 꼭 보고 싶어요. 산에는 딱따구리도 살아요. 집에서 기르는 화초처럼 산도 예뻐해 주세요.’
나는 여러 가정에서 화초에 물을 주고 영양분을 주는 등 지극정성을 다해 가꾸는 모습을 보았었다. 산도 마찬가지이다. 단지 ‘나의’ 소유가 아니라 ‘우리 모두의’ 소유라는 것이 차이이다. 우리는 아름다운 산의 사진을 보며 아름답다고 느낀다. 실제로 그 배경이 된 산은 아름답다. 내가 반딧불이를 처음 사진으로 보았을 때 하늘의 별이 내려와 땅에서 춤을 추는 것 같다고 생각했다. 이렇게 옛 추억에 사로 잡혔을 무렵 호주에 유학 간 친구와 이메일로 연락을 할 기회가 있었다. 그 친구는 호주에는 산이 별로 없어서 적응을 잘 못하겠다고 했다. 의식하지 못했지만 산이 정말 소중하고 아름답다는 것을 타지에 와서야 알게 되었다고 했다. 등굣길에 매일 마주하게 되는 산인데도 고등학생이 되어 바쁜 일상을 지내다보니 직접 등산할 시간도 점점 줄어들게 되었다. 이번에 추석 연휴를 맞아 아버지와 함께 시골의 산에 오르기로 약속했다. 다시 한 번 옛날의 기분을 느끼고 싶다. 뭔가 응어리졌던 마음이 뻥 뚫어지는 듯한 그 느낌. 그 느낌을 조금씩 되살려 가며 내년에는 꼭 반딧불이를 보러 맹산에 찾아가야겠다고 다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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