홈으로
  • 프린트하기
입선 나는 우리 산이 좋다
  • 입상자명 : 정 원 희
  • 입상회차 : 8회
  • 소속 : 청소년부
  • 장르 : 청소년부 글쓰기

어릴 적부터 명절이면 시골 할머니댁으로 내려가는 기차를 탄다. 아버지의 자동차로 하는 여행이 쉽고 편하긴 하지만 기차 창밖으로 보이는 풍경 감상을 좋아하는 나로서는 아주 잘 된 일이다. 서울을 벗어나기 전까지는 시멘트나 대리석 건물이 즐비하고 푸른 나무나 들판은 아주 간간이 눈에 띈다. 계속되는 지루한 건물 구경에 지쳐 살짝 졸다가 눈을 뜨면 비로소 수줍게 익어가는 들판이 보인다. 파란 지붕의 농가들이 간간이 보이고 그 뒤로 펼쳐진 끊어질 듯 말 듯 이어진 푸른 산의 모습도 함께 눈을 즐겁게 한다. 자세히 관찰해 보면 그 나무 크기나 모양이 같은 것이 하나도 없다. 나무가 생각하는 능력이 있다면 인간을 바라볼 때도 하나하나 다른 얼굴을 가지고 다른 생각을 하는 것이 놀랍겠지만 내가 스치며 지나가는 나무 한 그루 한 그루가 모두 다르다는 것은 새삼 놀라운 사실이다. 어떤 나무는 겨울이 와도 끄떡없을 것처럼 잎이 반듯이 서 있거나 색이 진하고 바람이 살짝만 불어도 살랑살랑 갈대마냥 흔들릴 것 같은 새싹 빛의 어린 나무도 있다. 한 그루 한 그루 살펴보다보면 그 나무들도 세상에서 유일한 존재일 텐데 나무의 이름조차 불러주지 못하는 것이 안타까웠던 적이 많다. 또, 가끔 논이나 강가에서 다리가 긴 하얀 새가 옆 산의 숲속으로 숨기도 하는데 아직까지 그 새의 이름을 모르겠다. 온양온천이나 대천역 같은 관광으로 유명한 역에 가까워지면 다시 멋진 산들과 들판은 자취를 감춘다. 대신 커다란 포클레인이 억척스럽게 산을 깎아내리는 모습만 보여서 눈을 질끈 감아버린다. 우리 산을 지키기 위해 할 수 있는 일이 아무 것도 없는 것이 너무 안타까워서이다. 가족들이나 친구들은 유난 떤다고들 하지만 사람들이 매정하게 산을 깎아내고 그 안쓰러운 속살을 드러내는 산들을 보면 가슴 한구석이 막히는 느낌을 막을 수가 없다. 어린 시절부터 나에게 산은 좋은 친구이자 아지트가 되어주었으니까.
나는 어린 시절을 산동네에서 보냈다. 처음에는 버스도 올라오지 않던 비좁고 가파른 산동네였지만, 무더운 여름이면 올라오기가 꺼려지는 동네였다. 부모님이 맞벌이를 하셨기 때문에 나는 아침이면 같은 동네에 사시는 이모댁에 맡겨졌다. 나와 내 동생 그리고 사촌동생 두 명까지, 우리 집 사총사는 학교 뒷산을 넘어 등교했고 손을 잡고 같이 하교했었다. 겨울이면 산속은 춥고 설상가상으로 눈까지 오면 못 쓰는 길이었지만 언제 그랬냐는 듯이 분홍 진달래가 산길 양쪽으로 피어 우리를 다시 불렀다. 하늘하늘한 꽃잎이 매력인 진달래가 떨어져 버리는 것이 아까워서 주워들은 방법으로 진달래를 얹은 떡을 만들어 봤다. 누가 볼까봐 조마조마 따와서 혼자 음식한다고 난리법석을 떨다가 손을 데인 기억도 있다. 산 오르기를 항상 무서워했던 동생이 먼저 학교 가자며 나를 산으로 이끌 때면 산딸기가 무르익을 시절이 됐다는 뜻이다. 초등학교 3학년 내 생일날 학교 다녀오면서 마을 주변 산 아래서 돌아다니며 놀다가 빠알간 산딸기를 발견했을 때 그 설렘은 아직도 생생하다. 상기된 얼굴로 겨우 몇 개 익어 있는 산딸기를 입에 넣었을 때 아쉽게도 내가 상상했던 촉촉하고 단맛은 아니었다. 씁쓸한 뒷맛밖에는 기억이 나지 않지만 그 시절 산딸기는 뒷산에서 얻을 수 있는 가장 큰 보물이었다. 또, 한 번은 산에서 크게 다친 적도 있다. 사촌 동생이 기르던 토끼에게 주려고 아카시아 나무의 여린 잎을 따러 산에 올라갔다가 발을 잘못 디뎌 온몸에 상처가 난 것이다. 집에서 크게 꾸중을 듣기는 했지만 내가 따온 풀을 야금야금 삼키는 작은 토끼를 보고 그저 뿌듯했었다. 크지는 않지만 동생들과 함께한 나의 어린 시절을 함께해 주었던 백련산. 아카시아꽃 냄새에 취해서 등교하던 웅장하지 않지만 정감 있는 산. 나의 산에 대한 무한한 애정은 거기서 시작된 것 같다.
주위에 친구들이 하나둘씩 외국 여행을 다녀오면 들리는 유명한 관광지 이름들이 있다. 미국의 그랜드캐니언, 알프스, 히말라야 산맥의 여러 산들. 나는 한 번도 접해 보지 못한 곳들이지만 사진으로 보거나 사람들의 경험을 들어보면 그 산들은 분명 높고 웅장한 광경을 자랑하는 것임이 틀림없다. 아래는 초원인데 산꼭대기에는 만년설이 쌓여 있는 킬리만자로 산은 도대체 얼마나 높은 걸까 나도 한번 가보고 싶다는 생각, 해외여행 많이 다녀본 친구들이 부럽다는 생각 많이 해봤다. 내가 좋아하는 작가 한비야 씨가 쓴 국토 종단기에서도 그녀는 세계의 여러 산을 다녀보았지만 아무래도 우리의 산이 가장 정감 있고 사랑스럽다고 했다. 같은 동양화여도 중국의 산수화보다 한국의 산수화에서 더욱 소박하지만 품위 있는 멋이 나올 수 있는 것도 작지만 절개 있는 우리 산의 모습 덕분이지 않을까. 이런 말을 꺼내기가 부끄러울 정도로 아직 올라보지 못한 우리 산이 너무 많다. 대학생이 되면 하나하나 되도록 많이 올라볼 작정이다.

만족도조사
열람하신 정보에 대해 만족하셨습니까?
만족도조사선택

COPYRIGHTⒸ 산림청 SINCE1967.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