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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선 산에서 나는 냄새
  • 입상자명 : 신 은 정 경기 안양 양명여고 1학년
  • 입상회차 : 9회
  • 소속 : 청소년부
  • 장르 : 청소년부 글쓰기

아직 깨지 않은 새벽, 그 새벽에만 맡을 수 있는 나무 냄새가 좋다. 울창한 나무들이 내뿜는 청량한 산소, 나뭇잎에 살포시 매달린 둥그런 이슬들. 이른 새벽에 깬 풀벌레의 소리, 계곡물이 조르르 흘러 자갈들을 칠 때 나는 소리. 그 모든 조화가 좋다. 숲에서만 느낄 수 있는 이 냄새가, 소리가 이루 말할 수 없이 좋다. 나뿐이 아니었다. 우리 가족은 이 산 냄새, 나무 냄새를 좋아했다. 그래서 우리 가족은 매년 여름이면, 각자 배낭을 메고 산으로 갔다.
도착하자마자, 숨을 들이마셨다. 청량한 공기가 비공을 통해 머릿속에 들어왔다. 듬성듬성 있는 나무가 잘 만들어준 자리, 물소리가 잘 들리는 자리에 텐트를 쳤다. 텐트를 치고 나면 나무그늘 아래에서 잠시 쉬었다. 그러면 나무들이 내뿜어 주는 산소로 인해 선선한 바람이 만들어졌다. 텐트를 치느라 고였던 땀이 바람으로 인해 말라갔다. 그 땀방울이 다 마르기 전에 계곡물로 들어갔다. 열기를 씻어내고 한참을 참방거렸다. 그런 다음엔 산에서 지은 꿀맛 같은 밥을 먹고, 밤하늘을 구경했다. 드문드문 있기는 하지만, 도시 집에서 볼 수 없었던 별을 볼 수 있었다.
그러고 보니, 도시에서는 하늘을 쳐다볼 일이 별로 없었다. 항상 앞을 보았고, 옆을 보았다. 그러다가 땅을 쳐다봤다. 내가 내 목표를 위해 잘 달려가고 있는지, 현재 내 경쟁자는 얼만큼 왔는지 봐왔었다. 그러다가 나의 모자람에 낙심하며 땅을 쳐다봤다. 그런데 하늘을 올려다볼 생각은 하지 않았다. 산 속 하늘은 높았다. 높고 깜깜했다. 드문드문 있는 별은 깜깜한 천에 수놓아진 금색 자수 같았다.
평소 아침잠이 많아 어지간해서는 스스로 일찍 일어나지 못 했다. 그 전날 일찍 잠이 들어도, 시끄러운 알람소리가 울리는 알람시계를 맞춰놓고 자도 일찍 일어나지 못했다. 그런데 산에 들어오면 달랐다. 새벽녘이 되면 서늘한 기운에 몸을 떨고, 나무에서 텐트로 이슬 떨어지는 소리가 들렸다. 그리고 산만의 특유의 냄새가 났다. 나무에서 내뿜는 공기 냄새, 풀벌레의 배설물 냄새, 이슬 냄새 등. 그렇게 일찍 일어나면 텐트 밖으로 나가 기지개를 켜다가 숨을 길게 들이마셨다. 그렇게 몇 번, 산 속의 모든 냄새를 몸 안 구석구석 넣고 아침 맞을 준비를 했다.
산 속은 밤과 아침이 빨리 찾아온다. 그래서인지 빨리 잠이 들고, 빨리 깬다. 밤늦게까지 형광등을 밝게 밝히는 도시와는 다르다. 형광등이라는 인공 불 아래에서 눈을 혹사시키고 몸을 혹사시키고 마음을 혹사시켰다. 산에서 휴식이 끝나면 다시 집으로 돌아가야 한다. 그리고 다음 휴가 때 다시 올 것을 기약하면서 다시 일상으로 돌아가야 한다. 그 전에, 일상으로 돌아가 몸을 제대로 굴리기 위해서는 산의 공기가 필요하다. 그래서 늘 산에 오면 몇 분간은 긴 호흡만 한다.
이번 여름, 언제나 그랬듯이 산에 갔다. 우리가 텐트를 치는 곳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곳에 다른 가족이 먼저 와 텐트를 치고 있었다. 초등학교도 아직 들어가지 않은 듯한 어린 아이가 있는 가족이었다. 엄마, 아빠가 텐트를 치는 그 시간이 지루한지 아이는 땅을 톡톡 발로 차며, 땅에서 난 잡초를 만지작거리며 놀고 있었다. 그것도 지루했는지 아이는 화장실에 다녀오는 나에게 말을 걸었다.
“누나도 산이 좋아?”
아이들은 좋아하지만, 대하는 법을 모르는 나는 이 작은 아이에게 무어라 대답을 해야 할지 난감했다. 내가 무슨 말을 해야 하나 고민하는 사이 아이는 다시 말을 했다.
“난 산이 싫어. 모기도 많고, 벌레도 많잖아!”
산을 좋아하는 나는 아이의 생각을 바꿔주고 싶었다. 하지만 무슨 말을 해서 아이의 생각을 바꿀 수 있을지 좀처럼 떠오르지 않았다. 몇 초간 고민을 하다 입을 뗐다.
“누나는 산이 좋아. 산에선 좋은 냄새가 나거든.”
산에서는 좋은 냄새가 난다. 그 이유로 산을 좋아했지만 아이의 맘을 바꾸려는 말로는 맞지 않다고 생각했다. 아이는 눈을 몇 번 깜빡이더니 긴 속눈썹을 내리감았다. 그리고 숨을 크게 들이마셨다.
“아무 냄새도 안 나는데?”
아이가 눈을 뜨면서 말했다.
“다시 눈을 감아봐. 그리고 잠깐 산에서 나는 소리를 들어봐. 많은 소리가 들릴 거야. 새소리도 나고, 물이 흐르는 소리도 나고, 귀여운 풀벌레가 우는 소리도 날거야. 그리고 숨을 쉬어봐.”
아이의 말에 반사적으로 말이 나왔다. 아이는 다시 큰 눈을 깜빡였다. 그 때, 아이의 부모가 아이를 불렀다. 아이는 부모에게 대답을 하고 나를 다시 쳐다보다 부모에게 달려갔다.
산에 밤이 찾아왔다. 별 구경을 하는데 낮에 봤던 아이가 다가왔다.
“누나 말대로 해봤어. 신기해! 코 안이 시원해졌어!”
들뜬 얼굴로 숨을 들이마시는 표정을 짓고 손을 코에 가져다 대면서 아이는 말했다. 그 말을 하고 아이는 다시 자신의 부모님이 계시는 곳으로 갔다.
풀냄새 가득한 바람이 불었다. 머쓱해졌다. 마치 칭찬 받은 기분이 들었다.
‘아이가 산을 좋아하게 되었을까. 방금 아이의 표정은 그래보였는데.’
어린 아이가, 산 냄새를 맡고 좋아했다. 이제 그 아이는 산 냄새를 맡을 수 있게 되었고 그 냄새를 좋아하게 되었다. 산이 주는 자연의 냄새를 맡게 된 것이다. 바깥에서 놀 시간 없이 공부만 하는 요즘 아이 한 명이 산 냄새를 맡게 되었다. 그것도 내 덕에! 입가에 웃음이 붙었다. 왠지 기분이 좋았다.
산 속의 밤공기를 마셔 보았다. 산에서 나는 특유의 냄새가 났다. 여전히 기분 좋은 냄새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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