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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선 ‘생각하는 숲’
  • 입상자명 : 정 홍 주 경기 과천 과천중 3학년
  • 입상회차 : 9회
  • 소속 : 청소년부
  • 장르 : 청소년부 글쓰기

'더이상은 안 될 것 같아….’
캄캄해서 아무 것도 볼 수 없는 산 속 어딘가에 길을 잃고 멈춰버린 기분이다 초등학교 6학년 무렵, 나는 또래 아이들과는 달리 굉장히 심오한(?) 삶을 살았다. 예를 들면 죽음이란 무엇인가에 대해 생각해 본 적도 있고 또 나란 존재가 세상에서 어떤 것을 가지고 이 피폐해진 세상을 좀더 나은 세상으로 바꿀 수 있을까? 꽤 나름대로 진지했었다. 생각해 보면 애 늙은이 같다는 생각에 우스워진다.
어느 순간 거울에 비친 내 모습은 초췌해 보이다 못해 한심스러웠다. 더 이상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자 덜컥 겁이 나기도 했다. 그 순간 떠오른 곳은 아빠를 따라 심신의 건강을 위해 따라다녔던 청계산 산림욕장이었다. 홀로 강행해 보는 아침산행. 새로운 희망이 떠오르듯 전나무들 사이사이로 막 씻어낸 듯한 빛줄기에 압도당했다. 그러나 나는 처음으로 가슴이 오그라들 정도로 내 안에 갇혀 있는 경험을 했다. 딱딱한 사슴벌레의 등껍질 같은 단절의 옷을 입은 채 1학기 내내 말문을 닫아버렸다.
자연으로 가는 길 앞에 자연과 마주섰다. 또 한 번 작은 배낭 어깨끈을 단단히 멘다. 오늘 따라 산림욕장의 길들이 외줄기 길을 가는 나그네 길로 느껴져 벌써 눈이 시큰해온다. 산모롱이 길을 따라 걸으면 깊은 계곡에 와 있는 듯한 울창한 숲과 그 속에 오아시스처럼 곳곳에 숨어 있는 많은 약수터들. 사람 사는 곳과 정말 가까이 있는 과천의 풍요로운 자연. 평소 같으면 아빠 따라 아이처럼 까불며 11개의 테마코스 중 발바닥에 흙의 살결을 직접 느껴 볼 수 있는 황톳길을 피톤치드를 맘껏 들이마시며 맨발로 뛰어갔을 텐데…. 아침도 먹지 않은 빈속이라 이내 몸의 힘이 빠져나가면서 지치고 더위 먹은 강아지마냥 헉헉거린다. 오늘 무조건 가 구간부터 라 구간까지 완주하는 거야. 마라톤 선수처럼. 마음을 다져먹고 눈을 부릅뜰수록 눈앞이 짭짤한 물기로 흐려온다.
내겐 꿈이 있다. 멋진 작가가 되는 것이다. 더 정확히 말해 사람들의 마음속에서 자연의 온갖 경이로움과 아름다움을 속삭이며 독자에게 따스함과 감동을 주는 작가가 되는 것이다. 좀 더 욕심을 부린다면 각기 다른 세상의 사람들, 특히 소외되고 약한 이들의 마음에 깊고 맑은 숲의 숨소리와 함께 희망을 주는 글을 쓰고 싶다. 그러기 위해서는 다양한 종류의 책도 많이 읽어야 하고 많은 곳들을 여행하며 세상을 느껴야 한다. 하지만 미래의 내 꿈을 위해선 잠시 미루어둬야 할 내 소망.
3학년 들어 나의 성적은 절벽 아래로 떨어지듯 곤두박질쳤다. 나에겐 꿈의 실천인 책읽기와 자연을 벗 삼기가 정말 좋았는데…. 나는 엄청난 책읽기와 산에 빠져 근처 산을 아빠를 졸라대어 꽤 자주 다녔다. 산의 봄, 여름, 가을을 누린 덕에 내 몸과 정신은 나날이 성장했지만 반대로 갈수록 게을리 공부하던 나에게 결국 최대의 위기가 다가왔다. 성적은 거인의 그림자처럼 너무 거대하여 나의 빛을 가려버렸다. 부모님도, 오빠도 나를 위로했지만 매사에 욕심이 많은 내겐 최악의 학교생활이었다. 멋진 글을 쓰려면 최소한 학생으로서 기본적인 학업에 충실해야 미래의 내 독자들에게 부끄럽지 않을 것이라는 게 나의 작가관이었다. 나 스스로도 나를 건드릴 수 없는 지경이었다. 다시 ‘나의 산행’을 통해 극복할 수밖에.
‘겨우 이 정도밖에 안 되는 건가.’
그 말은 내가 자존심이 강한 나를 향한 날카로운 꾸지람이었다. 고작 이 정도 정신력으로 사람들에게 희망의 메시지를 주는 작가가 되겠다고? 자책감으로 결국 마지막 코스인 라 구간이 아니라 나 구간 입구 작은 바위 위에 털썩 주저앉아 울음을 터뜨리고 말았다. 눈물에 젖은 손에 문득 만져지는 거칠지만은 않은 우둘투둘한 바위. 그리고 비바람에 굴곡진 아름답고 강인한 곡선을 가진 나무들. 강렬해지는 빛 속에서 초록 잎을 너울거리며 제 모습을 드러내며 내게 침묵 속에서 말을 걸어오는 나무와 풀들.
내 볼과 귓가를 스치고 지나가는 여름바람은 마치 오랜 허물없는 친구 같았다. 언뜻 눈을 들어보니 나 구간의 내가 가장 좋아하는 ‘생각하는 숲’이 눈물 속에 아른거린다. 길 가장자리에 소나무를 비롯한 이름이 재미있는 팥배나무, 신갈나무, 생강나무에선 생강냄새가 나서 너무 신기해했던, 초여름을 알리는 작은 갈래줄기가 모여 둥글게 온몸을 활짝 뻗어 피는 노란 생강나무 꽃. 그 작은 꽃에게 부끄러운 생각이 든다. 다람쥐가 샤샤삭- 하고 지나가는 소리, 새들이 지저귀는 소리가 엉켜 어떤 음악보다도 아름다운 하모니를 만든다.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보여주는 숲이 가슴 속 깊이 들어온다. 나 자신의 무게를 내려놓고 처음으로 돌아가 차분히 해나가리라. 나 그대로의 모습을 인정하면서…. 숲의 향기로운 공기를 한껏 들이마셨다. 아무도 모르게 싹을 틔우고 때론 계절의 소용돌이에서도 맞서 싸워 깨어나는 믿음직스러운 나무들의 호흡이 느껴진다. 솔향기를 맡으며 소나무에게 속삭여본다.
‘울창한 소나무 숲을 키우고 싶은 너의 꿈도 이뤄지길 바래. 나도 다시 꿈의 씨앗들을 간직한 채 키워나가 우거진 숲처럼 미래를 만들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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