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아버지는 산을 그렸지
푸른 산 그 위에 푸른 하늘
유난히도 짧은 초록색 크레파스
아버지는 산을 그렸지
푸른 산 살짝 베어내어 작은 통나무집
푸른 산 살짝 태워내어 작은 밭두렁
조금씩 짧아지는 빨간 크레파스
나도 산을 그렸지
푸른 산 위에 하얀 도화지 덧대고
형형색색의 으리으리한 집, 넓은 들판에 울어대는 소 떼들
깨끗한 초원위에 떠오르는 하얀 공, 하얀 내리막에 떨어지는 검정 고글
어느새 키가 똑같은 12색 크레파스
내 아들 산을 그리지
푸른 산, 푸른 하늘
그 앞에 바래진 세 장의 그림
떨어지는 눈물에 번져가는 푸른색에
수없이 다시 그리고 그리지...
다신 오지 않을 푸른 날을 그리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