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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상 숲과 나
  • 입상자명 : 이성원 서울 중대사대부속고 2-1
  • 입상회차 : 6회
  • 소속 : 청소년부
  • 장르 : 청소년부 글쓰기

숲을 지나고 있던 버스가 일순 멈춘다. 차도의 오른편 숲에서 새끼사슴이 나온다. ‘와아’하는 작은 탄성이 버스 안 여기저기서 터진다. 이윽고 새끼사슴이 왼편 숲으로 들어가자, 버스는 다시 목적지를 향해 출발한다. 가는 도중에 산이 보이는 공터가 나와 그곳에서 쉬기로 한다. 아이들은 공터에 다른 교통표지판과는 조금 다른 표지판이 있어, 그 표지판을 유심히 쳐다본다. 표지판에는 방향표시나 정지표시가 아닌 동물의 그림이 그려져 있다. 곧 한바탕 소란이 일어난다. 산에서 곰이 내려온 것이다. 곰은 여기저기 둘러보다가 별일 아니라는 듯이 다시 산으로 올라갔다. 아이들은 곰이 나타나자마자 죽은 척을 하기 시작한 한 아저씨를 보고 키득키득 웃는다.

어렸을 때 갔었던 외국 여행은 이런저런 장면으로 기억되고 있다. 그러나 한국에 돌아와서는 그런 장소를 좀처럼 찾기가 어려워 아쉬웠다. 그리고 그때의 기억을 잊어가는 내 자신이 있었다. 초록에 대한 그리움도 시간이 지나감과 함께 어느새 사라지고 있었다.

고등학교에 입학한 이후부터, 무력해짐을 느끼기 시작했다. 가끔씩 이유를 알 수 없는 두통에 시달리고, 하루를 어떻게 지냈는지 모르게 다시 다음 날을 맞이하는 그런 일상이 계속되자 정신이 피폐해지는 것을 느꼈다. 때문에 가족들과의 갈등도 심해져갔고, 아무 것도 하고 싶지 않았었다.

그러던 어느 날 이모부가 둔내 자연휴양림에 갈 것을 제안하셨다. 취지는 곧 군대에 가게 될 형의 이별식이었다. 나는 단지 1박 2일 동안 둔내에 있는 오두막집에서 지내고 오는 것일 뿐 여행이라고 할 정도로 대단한 것도 아니라고 생각했다.

여행 당일만 해도 나는 별 기대를 하지 않았다. ‘어차피 말뿐인 휴양림이겠지…’라고 생각하며 1박 2일 동안 읽을 책만 두 권 들고 차에 올라탔다. 하지만 그런 생각은 곧 사라지고 말았다. 1시간 정도 영동고속도로를 따라 차를 달리자 멀리 태기산이 보이기 시작했다. 양 옆으로 펼쳐지는 나무들의 향연은, 사람들의 이목을 끌기에 충분했다. 조금 더 가자 ‘둔내 자연휴양림’이라는 표지판이 보였고, 곧 우리는 하룻밤을 지낼 오두막집에 도착했다. 오두막집은 통나무로 만들어져 있었고, 그 내부에서는 잔잔한 나무냄새가 풍기고 있었다. 그 통나무집은 그동안 내가 수련회를 갔을 때 묵었던 시멘트로 만든 유스호스텔과는 다른 기분을 들게 했다. 가볍게 싼 짐을 풀고 잠깐 문밖으로 나왔다. 숨을 들이마시자, 풀냄새가 가득 폐 안으로 들어오는 듯했다. 그동안 나를 괴롭혀왔던 두통이나 답답함 들이 사라지는 기분이 들었다.

저녁을 먹고 밤이 되어 가족들과 함께 모여 캠프파이어를 했다. 학교 수학여행만큼 떠들썩하지도 않고, 전문가가 설치한 것처럼 화려하지도 않았지만, 그 캠프파이어는 사람을 매료시키는 어떤 무언가가 있었다. 그렇게 형이 다른 어른들과 모두 얘기를 하는 동안, 나는 캠프파이어를 설치한 주변 일대를 돌아다녔다. 그 초록으로 둘러싸인 숲을 보다보니, 문득 생각나는 것이 있었다.

나무 하나가 흔들린다 / 나무 하나가 흔들리면 / 나무 둘도 흔들린다

나무 둘이 흔들리면 / 나무 셋도 흔들린다

이렇게 이렇게

나무 하나의 꿈은 / 나무 둘의 꿈 / 나무 둘의 꿈은 / 나무 셋의 꿈

(중략)

아무도 없다 / 아무도 없이 / 나무들이 흔들리고 / 고개를 젓는다

이렇게 이렇게

함께




강은교 시인의 「숲」이라는 시이다. 이 시는 내가 캐나다에서 돌아온 후에 얼마 되지 않아서 알게 된 시이다. 나는 이 시가 어렸을 때부터 무척이나 마음에 들었다. 그 시를 보면 어렸을 때 보았던 캐나다의 숲을 연상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곳 휴양림에 오고 나서, 그 생각이 굉장히 잘못되어 있다는 사실을 깨달을 수 있었다. 이 시에 나오는 나무들은 다른 어느 외국의 화려하기만 한 숲들이 아닌, 우리나라의 소박한 멋이 있는 나무들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캐나다에 갔었을 때 나무와 숲을 보고 느낀 감정은 ‘웅장함’이었다. 그 거대한 초록 안에서 나 자신이 씻겨지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휴양림에 있을 때 꼭 그때와 같은 기분이 들었다. 아, 숲과 나무란 이토록 사람을 경건하게 해주는 것이었던가!

어느새 형이 옆으로 왔다. 그날만큼 형하고 대화한 적은 없었다. 대략 17년 동안 같이 생활했으면서 그 정도의 대화도 하지 않았다는 것을 기억하자 참 아쉬운 기분이 들었다. 그리고 형이 군대에 가게 되어 더 얘기할 시간도 낼 수 없다는 것이 더 아쉽게 만들었다. 나무가 바람에 흔들리는 소리가 났다. 흙냄새가 바람을 타고 허파에까지 들어왔다. 그 냄새가 기분을 가라앉혀주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형이 군대에 갔다 오고 나면, 함께 여행이라도 가지 않겠느냐고 했다. 그때쯤이면 형도 나도 바쁜 일은 거의 다 끝나 있을 테니, 한 번 정도 형제끼리 가는 배낭여행이 어떻겠느냐는 말이었다. 평소에는 어디 한 번 같이 나가자고 하던 일이 없던 형이었기에, 어떻게 그런 얘길 할 수 있었나 싶다. 그러나 지금 생각해 보면 그 나무들 사이에서 우리는 서로가 서로에게 좀 더 열린 마음을 가지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다음날 아침에, 조금은 아쉬운 마음을 가지고 오두막집을 나섰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보는 나무들은 조금은 쓸쓸해 보였다. 저 휴양림을 뒤로 하면서, 어느새 나는 마음 한 구석에서 나무와 같이 살자는 다짐을 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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