빈손으로 왔다 빈손으로 가는 날,
나는 나무되리라
물관부 따라 땅속까지 닿아 있는
뿌리혹박테리아로 남아
봄이면 꽃을 두레박으로 긷고
여름이면 초록을 긷고
가을이면 단풍을 긷고
겨울이면 함박눈을 길어 올리리라
까마귀들이 지저귐으로 배웅하는 날,
나는 나무되리라
뜻 모르고 살았던 삶의 끝으로
화려한 스포트라이트 아래
함부로 저질렀던 기쁨과 즐거움들이
참선하듯,
내 곁에 두 발 묻고 마주 설
하얀 영혼을 위하여
푸른 지폐 같은
옛 이야기 한 장씩 넘겨가며 기다리리라
숲 속에 조등(弔燈)같은 노을이 걸리고
지금 막, 일기장을 덮은 한 영혼이 들어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