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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상 우면산
  • 입상자명 : 정나현
  • 입상회차 : 13회
  • 소속 : 청소년부
  • 장르 : 청소년부 글쓰기

산이여, 당신이 커다란 나무라면 나는 세상 모르는 푸른 새입니다. 먼동 트는 새벽녘, 당신은 든든한 뿌리로부터 나를 안아 올립니다.

나는 당신의 곧은 등줄기에 기대어 얼굴에 맺힌 찬이슬 털어내며 불안한 날개와 서투른 부리로 아침을 노래합니다.

하루해가 유난히 길고 밝은 햇살이 장대비처럼 쏟아지는 낮, 당신의 편안하고 아늑한 무성함 속에 더불어 풍성해진 나는 흥얼흥얼 온몸을 초록으로 물들이고 당신의 너그러운 숨결로 윤기 도는 깃털을 튕기며 때 묻지 않은 가락을 노래합니다. 그러나 그 길었던 해는 지고 타는 노을 속에 전쟁 같은 내 청춘이 흐느낍니다. 만약 내 등을 돌아 토닥이던 당신의 향기로운 잎사귀가 없었다면 서러운 바람이 등짝을 때리고 팍팍한 그림자는 암처럼 깊어져 나는 붉게 물든 당신의 품 안에서 숨을 거두고 말았을 것입니다.

오오, 메마른 어둠이 어둑어둑 스며들어 옵니다. 당신은 언제나처럼 창백한 나를 안아 올려 마르지 않는 옹달샘처럼 쉴 새 없이 푸른 물을 부어 줍니다. 그 푸른빛 고운 물살에 깨어나는 나의 노래는 실낱처럼 가볍게 가볍게 살아납니다.

새 날을 위해… 그러다 문득 깨어난 빛나는 아침, 나는 당신의 품을 떠나 하늘로 하늘로 날아오릅니다. 당신의 그리운 눈동자는 날갯죽지 아래 가리우고 마음이 동트는 그곳으로 푸드덕 푸드덕 날개를 칩니다. 그리운 당신! 그래도 나는 당신이 언제까지나 그 자리에 계실 줄을 압니다.

아! 초록빛 깃털마다 당신의 향기가 납니다. 산이여, 당신이 저에게 커다란 나무였다면 저는 당신에게서 날아 오른 푸른 새입니다. 우면산 2 서초고 2학년 2반 정나현 아! 이랬으면 좋겠어요. 제가 느리게 걸어가는 아이거든요.

제 옆으로는 시간도 길도 천천히 지나가서 느린 걸음을 기다려 주었으면 좋겠어요. 우면산 정겨운 허리를 돌아가는 풀 한 포기 돌멩이 하나도 모두 반가운데, 뒤에선 서두르라고 서두르라고 밀기만 해요. 이따금씩은 푸른 나뭇가지 사이로 황금 햇살이 눈부시게 부서지고 저는 햇살 한 조각 입에 문 작은 새가 되어 푸드덕, 날아올랐으면 참 좋겠어요.

아! 이랬으면 좋겠어요. 햇빛 좋은 날엔 신발을 벗고 음악이 흐르는 바위 위에 철퍼덕 주저앉아 무거운 어깨에 쉴 짬을 주고 싶어요. 그렇게 산내음에 취해 바람 한 자락에 흔들거리며 흥얼흥얼 바람가락을 탔으면 좋겠어요.

갑갑한 날에는 소망탑 돌멩이 위에 저를 얹고서 떠오르는 해를 올려다보고 굽이치는 도시도 내려다보며 해의 세월, 도시의 세월, 우리의 세월을 헤아려 볼 거예요. 아! 제가 아직 덜 영글은 아이여서요. 더러는 긴 꼬리를 튕기는 싱싱한 쉼표가 제 옆에 찍혔으면 참 좋겠어요. 아! 그리고 이러고 싶어요. 봄날 같은 오후, 아카시 향기 날리는 산길에서 친구들과 박장대소 하고 싶어요.

어제 읽은 로맨스 소설도 좋고, 지난 주말 보았던 런닝맨 이야기도 좋아요. 우리의 손바닥이 만나는 바로 그 지점에서 배가 꺼지도록 웃어 보았으면 좋겠어요. 제가 꿈꾸는 푸른 새의 비상이, 친구가 꿈꾸는 아카시나무의 축제가 서로 오다가다 두 꿈이 만났을 때 문득 얼굴을 들어 환하게 웃어만 주어도 이 세상이 얼마나 편안하고 아늑할까요? 꽃피고 지며 꽃눈 날리는 산길에서 우리는 같은 하늘을 볼 거예요.

가장 큰 하늘은 언제나 우리들 머리 위에 있거든요. 마침내 제가 어른이 된다면, 그때도 천천히 천천히 산을 오를 거예요. 소외 받는 사람, 의심 받는 사람, 무시당하는 사람, 무력한 사람, 그들 한 생애의 땀과 눈물과 한숨과 슬픔이 배어 더디게 더디게 움직이는 그들의 어깨에 토닥토닥 부딪혀 가며 반가운 동행이 되어 줄 거예요.

그런 세월 그 정겨운 세월 동안 우면산 길목 어디에선가 우리 만나고 또 헤어지고 하면서 시간도 길도 천천히 흘러갔으면 참 좋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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