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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상 휴지(休地)
  • 입상자명 : 김지수
  • 입상회차 : 13회
  • 소속 : 청소년부
  • 장르 : 청소년부 글쓰기

‘세상을 두 가지로 나눠 봐!’ 누군가에게 그런 질문을 받았다면, 당황하지 말고 우선은 기준을 세워야 한다.

이 세상을 덮을 만큼 거대하고 분명하고 누구나 인정할 수밖에 없는 엄청난 무언가로. 숨을 쉬는 것과 쉬지 않는 것으로 나누는 것이 어떨까? 숨 쉬는 나, 숨 쉬는 당신, 숨 쉬는 개, 잠자리, 그리고 나무. 그래, 이게 좋겠다.
내가 아주 어렸을 적부터 우리 가족은 주말에 여행을 자주 다녔다.

우리가 좀 더 크면 시간이 없다, 못 본다. 그러셨던 아버지가 운전대를 잡으셨기 때문이었다. 장소는 주로 지역 축제나 등산, 휴양림 등 도시와 떨어진 자연에서의 하룻밤이었다.
정말 우리가 자랄수록 가기 싫다, 피곤하다, 공부해야 한다는 납득될 만한 핑계들이 자연스럽게 생겨났고 아버지 말씀대로 우리는 시간이 없어졌다.

그런데 내가, 이번 여름방학에 휴가로 안양산 휴양림을 가자고 했다. 나의 폐가 인공적인 것들로부터 침략당하고, 채워지고, 익숙해져 갈수록 내 어린 시절을 둘러쌌던 숲이 그리웠었다.
안양산 휴양림의 널따란 평상에 누워 하늘을 쳐다보았다. 하늘을 가린 무수한 나뭇잎들이, 수술대 위의 환자를 내려다보는 초록 수술복의 의사들 같았다.

치료를 위해 나를 에워싼 고마운 그들에게, 나는 가련한 환자가 되어 주기로 했다. 하룻밤을 자기로 하고 휴양림의 밤이 되자 나뭇잎마저 검음으로 물들었다.
검은 숲 속은 계곡물 흐르는 소리뿐이었다. 세차고 불규칙한 그것은, 사람들이 싫어하지 않는 몇 가지 안 되는 소음 중 하나였다.

나는 에어컨을 켜지 않고 창문을 열어 두었다. 계곡 물 소리와 함께 출발지점을 알 수 없는 바람이 제 몸을 구깃거리며 창문으로 들어왔다.
에어컨 바람처럼 차고 건조한 것이 아닌, 습하고 부드러운 바람이. 짧은 방학이 지나고서는 굳이 다른 곳을 찾지 않았다.

우리 고등학교는 산에 둘러싸여 있기 때문이다. 등굣길부터가 경사져 있기 때문에 아침마다 학교에 ‘올라야’ 해서 학생들은 투덜대지만, 사실 이 산은 우리 학교의 아이러니한 자랑이다.
가끔 너구리가 슬그머니 모습을 드러내기도 하고 무서움을 모르는 청설모가 산책을 나와 학생들을 놀리고 가기도 한다.

사계절을 교실에 갇힌 채 있는 학생들에게 교실의 창문은 선명한 달력이다. 봄이면 있는 줄도 몰랐던 진달래가 팔을 벌리고, 여름엔 초록이 무성하다. 가을엔 초록이 사과처럼 갈변하고, 겨울엔 공허하지만 그것도 나름대로 겨울답다.

교실 창문 밖에는 누군가의 손에 맡겨 길러진 것이 아닌, 태초를 모를 날 것 그대로의 나무들이 곧은 모양도 못 되고 서로의 간격도 일정치 않다. 하지만 ‘자연’스럽다. ‘숲.’ 재밌는 생김새다. 마치 나무를 얼기설기 엮어 만들어 놓은 하나의 집과 같은 모양이다.

소박하고, 단출하고 또 자연스럽다. 숲의 모양은 ‘숨’과 닮아 있다. 숲의 숨을 내가 먹고 나의 숨을 숲이 먹고. 세상의 숨이 적층되어 집이 된 이름일까. 이 콘크리트 바닥은 살아 있나요. 내 책상은 죽은 건가요.
우린 매일을 죽은 것을 짓밟고, 만지고, 애착하며 사는 건가요. 그렇게 물으며 세상에 실망한 누군가를 만났다면, 그 팔을 이끌고 주저 없이 숲으로 가길 바란다.

숲은, 나무는 인간의 휴지(休紙)가 되기도 하고 휴지(休地)가 되기도 한다. 사람(人)은 나무(木)와 함께여야 쉴(休) 수 있다.
나는 머리가 아파도, 마음이 고달파도 휴지(休地)를 찾는다. 산 것에 뿌리를 내린 산 것들의 공간에, 나무에게 안기고 숲에 둘러싸인 휴지(休地)에 고립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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