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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상
  • 입상자명 : 이지우
  • 입상회차 : 13회
  • 소속 : 청소년부
  • 장르 : 청소년부 글쓰기
기말 고사가 끝나고, 오랜만에 기숙사에서 돌아온 나는 엄마와 함께 대청소를 감행해야만 했다. 꾸물거리며 이것저것을 정리하던 중, 나는 먼지가 뽀얗게 쌓인 커다란 사진첩을 발견했다. 엄마께서도 그 사진첩을 오랜만에 보신다 하시며 그것을 펼치셨다. ‘우와, 내가 이렇게 귀여웠었나.’ 어렸을 때 찍은 나의 사진을 넘겨 보는데, 유독 부모님과 함께 산에 오르는 것을 찍은 사진이 많았다. 엄마께 여쭈어 보니 내가 어렸을 때는 아빠께서 산을 워낙 좋아하셔서 가족 모두가 주말마다 산을 타곤 했다는 것이었다. 엄마께서 그렇게 말씀하시니 어렴풋이 학교 가는 날은 깨워도 안 일어나던 내가 토요일에는 새벽같이 일어나 오늘은 무슨 산을 갈 거냐고 아빠를 깨우던 내 모습이 떠올랐다. 사실 지금도 아빠께서는 10년 가까이 살고 있는 우리 집 앞에 있는 지족산을 주말마다 오르시는데, 나는 1년 넘게 산 오를 여유조차 없이 살았다는 것을 깨달았다. 눈 코 뜰 새 없이 바쁘게 일주일을 보내고 기숙사에서 집에 돌아올 때마다 지친 나를 늘 담담하게 그리고 싱그럽게 맞아주는 산을 보며 나는 나의 마음이 ‘힐링’됨을 느꼈다. 그런데도 산을 자주 가 보지 못했다는 것이 너무 후회스러웠다. 어느 누군가가 나에게 소중한 선물을 주었는데 미처 열어보지도 않고 잃어버린 듯한 기분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날 나는 처음으로 혼자 지족산에 올랐다. 혼자 산을 타니 그 누구의 방해도 받지 않고 푸르른 내음새에 취해 마음껏 나의 마음속을 들여다볼 수 있었다. 이 숲 전체가 자신의 것인 양 겁 없이 뛰어다니는 다람쥐와 청솔모를 보니 할머니 댁에 놀러가 봄이 되면 마당에 활짝 피는 목련이 떨어지기만을 기다려 소꿉놀이를 하던 어린 나의 모습이 떠오르고 아늑하면서도 시원한, 나를 반겨 주는 상쾌한 공기에 실려 오는 흙냄새를 맡으니 아빠와 함께 2년 전 여름, 속리산 정상에 올라 문장대에서 가쁜 숨을 내쉬며 서로의 땀을 닦아주던 추억이 떠올랐다. 그새 더 높이 자란 나무를 보며 한 걸음 한 걸음 내딛을 때마다 하나 둘씩 친구들과 뒤뜰로 책갈피로 만들 단풍을 주우러 다니던 추억과 분홍빛 진달래를 심어 놓은 화분을 보며 봄꽃의 아름다움에 취해 시 한 소절 읊으시던 할아버지의 정다움이 새록새록 떠오르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 시절 풋풋하고 행복했던 나날들이 현재의 답답한 날들과 중첩되어 떠올라 나의 숨을 턱 막히게 했다. 지족산 중턱에서 잠시 소나무에 기대서 바람을 쐴 때서야 내 마음을 그토록 누르고 있던 것이 무엇인지를 알았다. 왠지 모를 답답함과 과거에 대한 그리움이 어디서 묻어나오는 것인지를 느낄 수 있었던 것이다. 국제고등학교에 진학하고 외교관이 나의 길이 아님을 깨닫고, 오랫동안 꿈꿔 오던 꿈을 포기한 나였다. 거의 반 년 가까이 내가 진정으로 무엇이 되고 싶은지 알지 못한 채 달려온 나는 이제 더 이상 어디로 내달아야 하는지 몰라 착잡했던 것이었다. 그런데 문득 ‘아직 뭐가 되고 싶은지 정확한 계획도 없이 참 한심하다.’는 생각 너머 ‘어, 여기가 예전에 길을 잃어 버렸던 곳이구나. 아이 참, 이 커다란 바위만 돌아서 나오면 되는데 왜 그때 길을 잃었다고 생각하고 당황했지.’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이정표를 확인하고 이번에는 길을 잃지 않고 다시 정상으로 향하는 나를 보며 나는 정말 커다란 가슴 떨림을 느꼈다. ‘그때 그곳에서 길을 잃어버리지 않았다면 오늘도 나는 또 헷갈려 했을 지도 모른다. 지금 내가 이렇게 방황하는 것도 나의 진정한 길을 찾기 위함이며 나중에 나에게 살이 되고 피가 될 경험이구나.’라는 생각이 나의 마음속에 잔잔히 퍼졌다. 몇 년 만인지 몰랐다. 우리 집 앞산의 정상에 올라 우리 마을을 내려다보는 것이. 여름철 산 정상의 푸르름은 여전했다. 고등학교에서의 치열한 학업 경쟁과 성적에 대한 스트레스에서 행방됨을 느꼈다. 이 커다란 자연이 나의 본연의 모습 자체를 따뜻하게 포용해 주었다. 산은 나에게 내가 꿈을 찾는 동안 겪을 시행착오를 견딜 수 있는 힘을 주었고 또 항상 그곳에서 내가 힘들 때 힘을 북돋아 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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