홈으로
  • 프린트하기
동상 벗, 벚나무
  • 입상자명 : 장윤수
  • 입상회차 : 11회
  • 소속 : 일반부
  • 장르 : 일반부 시·수필
충남 예산군 예산읍의 금오산. 금까마귀가 나타났다 하여 금오(金烏)라는 이름이 붙여졌다고 한다. 그러나 이러한 전설보다는 내가 다녔던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의교가 첫 구절이 모두 금오산으로 시작했던 것이 더 기억에 남는다.
고등학교를 졸업한 지도 이제 4년이 다 지났다. 나의 모교, 예산고교는 산 속에 자리하고 있다. 바로 금오산에 말이다. 포근한 산의 정기를 감싸고 맑은 공기를 내어주던 학교, 지금 도시에 있는 학교들은 생각지 못할 풍광이리라.
교목인 히말라야시다는 운동장을 감싸며 울타리를 만들어 준다. 그리고 학교 뒤로 이어진 오솔길은 깊은 산과 연결되어 등산객들의 발길을 재촉한다. 입시에 치열했던 우리와는 전혀 달랐던 학교, 무한 경쟁 속에 하루하루 정신없는 시간을 보내던 우리 학교는 , 세월에 가장 무덤덤한 숲과 산에 머리를 박고 있었다.
고등학교 1학년 때였을까. 집이 가까워 나는 저녁을 곧잘 집에서 먹곤 했다. 어김없이 저녁을 먹고 야간자율학습을 하러 나섰다. 그런데 배가 어찌 그리 아픈지, 정신을 차리기가 어려웠다. 한동안 화장실에서 씨름을 하고 밖에 나오니, 어느새 시간은 훌쩍 지나 있었다.
학교에 오르는 길은 가파른 언덕이다. 산 중턱을 깎아 학교를 세웠고, 오르는 길은 마치 협곡과 같다. 그나마 언덕길보다 빠른 계단이 있지만, 아찔한 그 수십 개의 돌계단은 아무리 건강한 고등학생일지라도 숨을 헐덕이게 만든다. 대부분의 지각생들은 언덕 핑계를 대곤 한다. 나도 예외는 아니었다. 그러나 그 날은 핑계를 댈 마음도 없었다. 그저 기왕 늦은 김에 천천히 올라가야겠다는 생각뿐이었다.
학교에 오르고 교실에 들어가려던 찰나. 학교 뒤편에서 반짝이는 무엇인가를 보게 되었다. 어지럼증일까, 아니면 꿈밤을 맞아 별이 보이는 것일까. 주황빛으로 찬란하게 빛나던 그 무언가를 따라 발길을 틀었다. 다가갈수록 더 반짝이며 손짓을 하는 광채, 그리고 알 수 없지만 달큼하며 알싸한 향내. 발길이 닿은 내 머리 위엔 쏟아지는 가로수 빛을 받은 벚나무 한 그루가 온몸을 가득 붉히며 꽃을 피워내고 있었다.
아, 그날의 광경을 나는 잊을 수가 없다. 세상 어떤 공연장의 빛이 이보다 더 찬란하며, 세상의 어떤 배우가 이보다 더 아름다울까. 이제 막 고등학생이 된 티를 채 벗지못한 나를 비웃듯, 벗은 그렇게 나를 불렀던 것이다. 그리고 그 자리에서 나는 세월의 뒷전에 선 나를 만났다. 찬란하게 빛나는 조명 아래에 서 있던 벚나무. 나무는 그렇게 어린 내 가슴을 적시고 포근하게 만들었다. 도무지 잊을 수 없는 향내...... 그런데 이해할 수 없었다. 그 아름다운 풍경과 향내 사이로 어둡고 축축한 무엇인가가 흘러 들어왔다. 너무 고약해서 코를 움켜쥘 수박에 없었다. 나무는 아직 오랜 세월의 이야기를 마치지도 않았건만 눈을 번쩍 뜬 나.. 그리고 그 뒤로 들려오는 외마디 소리.
"야! 니들 몇 학년이야?"
그렇게 꿈결을 걷듯 흐르던 벚나무와의 발걸을 뒤로, 교무실이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꿈은 꿈이고 현실은 현실일 뿐. 내가 우두커니 서 있던 벚나무 뒤편엔 담배를 피우던 학생들 2명이 숨어 있던 것이었다.
"너도 담배 피웠냐? 1학년밖에 안 된 녀석들이...."
선생님의 꾸중과 학생들의 몇 마디 대답이 오고가고, 다행히도 나는 담배를 피웠다는 의심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물론, 야간자율학습에 늦은 것에 대해선 혼쭐이 날 수밖에 없었지만 말이다.
아쉽게도 이후로는 자율학습에 늦을 일도, 가로등 및 벚나무에 집중할 겨를도 없었다. 그저 쉴 틈 없이 다가오는 수능시험에 대한 압박감과 모의고사, 내신을 위한 시험공부가 내 머리를 가득 채웠다. 학교에세는 끊임없이 좋은 대학과 미래만을 바라보도록 최면을 걸었다.
수능시험을 보기 좋게 망치고 나서야 대학과 미래에 대한 최면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이제 3년을 온전히 바라보았던 목표를 넘어 숨통을 틀 수 있게 된 것이다.
졸업 앞둔 한 겨울밤, 벚나무는 그허게 다시 나를 불렀다. 1학년, 그 어린 마음의 때엔 온 몸을 태워가며 찬란하게 나를 만나주엇떤 벗, 그러나 그도 한 겨울에는 앙상한 가지에 눈꽃만 고이 안고 우두커니 서 있었다.
그러나 나는 알수 있었다. 그가 보여주었던 세월의 뒷전에 선 내 모습은 동일하다는 것을. 3년간 숨 가쁘게 내가 달려올 때에도, 학교를 둘러싼 숲은, 벗은 그대로였다는 것을.
학교를 졸업한 뒤에도 나는 지금 예산에서 살며 대학교를 다니고 있다. 그리고 가끔 학교 옆을 지나곤 한다. 학교를 들어서는 교문도, 오르는 길도 더 정리가 잘 되었고 그때와는 많이 달라졌다. 그러나 울타리가 되어 주던 히말라야시다도, 학교 뒤편의 오솔길도, 그리고 나를 불러주었던 벚나무도 한결같이 자리를 지키고 있다.
아마도 그것들은 세월이 아무리 흐를지라도 변함없을 것이다. 아니 벚나무는 나와 같은 이들을 수십 년 전부터 이미 만나고 있었으리라. 학교는 오늘도 밤늦게까지 불을 밝히고 있다. 그리고 많은 학생들은 대학과 꿈, 미래르 향해서 쉴 틈없이 달리고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 모든 것을 감싸고 있는 것은 흐르는 시간 앞에 자유로운, 변함없는 숲이요, 산이다.


만족도조사
열람하신 정보에 대해 만족하셨습니까?
만족도조사선택

COPYRIGHTⒸ 산림청 SINCE1967.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