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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선 내 나무
  • 입상자명 : 오 유 경 경북 포항여자전자고 3학년
  • 입상회차 : 10회
  • 소속 : 청소년부
  • 장르 : 청소년부 글쓰기

조용한 일요일 아침, 오늘도 엄마는 뒷산에 가시나 보다. 아직 잠이 덜 깬 내 방문을 열고 “유경아” 하고 잠시 머뭇거리시더니, 조용히 문을 닫으셨다. 대입 수능을 앞두고 늘 피곤해하고 잠이 부족한 나를 차마 깨우시지 못하시는 것이다. 어릴 때는 연년생 오빠와 함께 엄마가 가시는 뒷산을 곧잘 따라다녔었다.
직장 다니시는 엄마를 오랫동안 볼 수 있는 시간이 휴일뿐인데, 그 휴일에 거의 엄마가 뒷산에 가시니 당연히 좋아라 하고 따라나선 것이다. 그런데 대개 그렇듯이 내가 사춘기를 맞으면서 친구들과의 노는 시간이 많아지고 엄마는 거의 혼자 뒷산에 가시면서 가끔 서운해하시는 듯했다.
작년에 몸이 많이 불편하신 외할머니께서 우리 집에 몇 달 와 계셨다. 할머니가 계신 곳에는 마땅히 갈 수 있는 가까운 산이 없어 공기 좋은 뒷산에도 가실 겸 오래 사시지 못할 것을 아신 듯 엄마와 함께 좀 살고 싶으신 것 같다. 그때부턴 엄마는 퇴근하시면 바로 외할머니와 동네 뒷산을 오르내리며 좋아하셨다. 할머니께서는 산 입구에서 누군가 사용하던 지팡이 같은 긴 나뭇가지를 주우셔서 그것을 지팡이 삼아 산을 오르내리셨다 한다. 두 분은 산길을 걸으며 엄마의 어릴 때 일도 회상하고 노래도 부르고 하셨다며 즐거워하셨다.
엄마는 산에 가시면 참 마음이 편해진다고 하셨다. 직장일에, 집안일에 무척 힘들고 스트레스 많으셨을 엄마는 아마 산에서 쉬고 싶으셨는지 모른다. 엄마는 산의 좋은 점에 대해 자주 얘기하시며 너도 더 나이가 들면 꼭 등산을 다니라고 하셨다. 인자요산이라는 한자성어를 얘기하시면서 산을 좋아하는 사람은 다 어질다고도 하셨다. 산에서 느낄 수 있는 사계절의 변화도 신비롭고, 산새소리, 가끔씩 만나는 청설모도 너무 귀엽다고 하셨다. 그러시면서 나가실 때보다 더 밝은 목소리로 현관을 들어서시곤 했다. 중학교 땐 친구들과의 시간이 더 즐거워 엄마와 산에 가지 못했고, 철이 조금 든 고등학생이 되어선 내 일정이 바빠 휴일이면 혼자 등산화를 신고 나가는 엄마의 등을 보며 조금 미안함을 느끼기도 했었다.
그렇게 두어 달을 오순도순 엄마와 뒷산을 다니시던 외할머니께서는 딸네집에 오래 있으면 폐가 된다시며 엄마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고향으로 돌아가 버리셨다. 외할머니는 늘 사용하시던 긴 나뭇가지를 산 아래 구석에 놓으시면서 내가 이걸 다시 짚고 산에 가 볼 수 있을까라고 말씀하셨다 한다. 그 말씀대로 외할머니는 이제 병세가 너무 악화되고 기력이 쇠하셔서 자리에서 잘 일어나시지도 못한다. 그래서 이제는 엄마께서 주말마다 뵈러 가신다.
두 분이 정답게 오르내리시던 뒷산의 등산로는 산이라기보다 산언덕 같은 편안한 곳이어서 누구나 쉽게 오를 수 있는 친근한 산길이다. 언젠가 산모롱이를 돌아가는 곳에 안전줄을 설치하면서 아주 굵은 동아줄을 구조물과 함께 소나무 허리에 매어 둔 적이 있었다 한다. 그것을 보신 엄마는 무척 마음에 걸려 하시면서 시청에 민원을 올리겠다고 하셨고, 그 후에 굵은 동아줄이 풀어져 있더라고 좋아하셨다. 그리고 그 소나무의 개수가 7그루였는데, 좋은 일이 생길 것 같다는 유머도 하시면서 홀가분해하셨다. 엄마는 우리가 나무와 숲에게 얼마나 많은 고마움을 입는데 그렇게 나무를 함부로 대해서야 되겠냐고 흥분하셨던 기억이 난다.
중학교 때 ‘내 나무’라는 수필을 배운 적이 있었다. 딸이 태어나면 오동나무를 심어 시집갈 때 가구를 만들어 주고, 아들이 태어나면 소나무나 잣나무를 심어 죽어서 관을 만들어 사용하였다는 자기의 탄생과 더불어 일생을 같이한다는 풍습이었다. 그때 국어선생님께서 지금은 주변 환경이 달라져 나무를 실제 심기 어려운 경우가 많지만, 자기의 마음속에 ‘내 나무’ 하나쯤 심고 가꾸라고 하신 기억이 난다. 그때 난 어떤 나무를 내 나무로 할까 하고 고민하다 종류는 정하지 못하고 잊어버렸던 듯 하다. 그러나 어떤 종류의 나무면 어떨까? 내 마음 속에 푸르고 푸른 나무 한 그루 싱싱하게 자라 가지 뻗고 열매 맺어 여름이면 시원한 그늘을 주고 가을이면 열매를 주는 그런, 친구 같은 ‘내 나무’ 한 그루 마음속에 심고 가꾸어야겠다.
그 내 나무는 내 마음속에서 늘 나와 함께 자라날 것이다. 가끔 비가 오거나 세찬 바람이 불거나 또 너무 가물거나 해서 힘든 날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 주변의 나무들이 그런 나쁜 자연 여건에도 꿋꿋하게 뿌리 내리고 잘 견뎌내어 울창한 숲으로 자라듯이 나 역시 앞으로 여러 가지 어려움이 있겠지만, 내 마음 속 ‘내 나무’가 잘 견디며 자라 주듯이 나 또한 튼튼한 내 나무 같은 사람이 되어 열심히 내 길을 갈 것이다.
만약 이 지구상에 숲과 나무가 없다면 얼마나 삭막할까? 우리에게 시원한 그늘의 숲길을 무료로 제공해주고, 좋은 공기를 주고, 지친 우리 마음을 편안하게 해 주는 피톤치드를 뿜어 주는 고마운 나무, 당연히 그곳에 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우리가 소중히 여기고 보호하지 않으면 언젠가는 사라져 버릴지도 모르는 숲과 나무들, 그 소중함을 정말 절실히 느껴 아끼고 고마워해야겠다. 지금은 할머니도 산에 오실 수 없고 엄마 혼자 산을 오르시지만, 나도 이 바쁜 시간이 끝나면 엄마 손을 잡고 산길을 걷게 될 것 같다. 곧 하늘나라로 떠나실 외할머니와의 추억을 간직한 그 산길에서 허전해하실 엄마의 손을 꼭 잡아드려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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