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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선 치악산에서의 여유
  • 입상자명 : 박 수 진 경기 평택 송탄제일고 2학년
  • 입상회차 : 10회
  • 소속 : 청소년부
  • 장르 : 청소년부 글쓰기

언제부터인가 내가 고등학교에 올라오면서 우리 가족은 대화라곤 찾아볼 수 없을 정도로 냉랭한 사이가 되어버렸다. 바쁜 일상 속에서 함께라기보단 각자의 생활에 더 치우치다 보니 어느새 이런 게 더 익숙해져 버렸다. 이렇다 보니 가족여행이라곤 다녀왔었던 기억도 잘 나지 않는다.
잦은 비에 쌀쌀한 바람이 살갗을 파고드는 9월, 아빠의 결정으로 갑자기 우리 가족은 산에 가기로 했다.
“산은 무슨 산이야 나 힘들어서 안 갈래.”
산도 그냥 산이 아닌 치악산을 가겠다니 투정이 저절로 입 밖으로 새어나왔다. 하지만 결국 난 가족들과의 산행에 동참했다. 가족들과 함께 어딘가를 가지 못한 게 벌써 4년이 되었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강원도에 도착하자 답답한 도시에선 맡을 수 없었던 낙엽 냄새와 높은 창공 아래로 보이는 그림 같은 풍경 때문에 오기 싫었던 처음의 마음은 좀 누그러졌다. 경치에 취하기도 전에 아빠는 가족들을 이끌고 치악산에 오르기 시작했다. 안 그래도 운동을 안 해서 둔했던 몸이 가파른 산을 만나자 경기를 일으키듯 다리부터 떨려왔다. 산을 오른 지 얼마 되지 않아서 난 거의 울상이 되었고 내 동생 역시 투덜거리며 올라오고 있었다. 이건 무슨 산을 오르는 건지 절벽을 타는 건지 분간이 가질 않았다. 주변의 경치는 뒷전이고 당장 눈앞에 있는 바위들 밖에 보이지 않았다. 아빠는 우리에게 쉴 틈도 주지 않은 채 힘들어도 이거 하나 못 참냐 하면서 꿋꿋이 올라가고 있었다. 치악산은 여러 산들이 능선으로 연결되어 태백산맥을 등줄기 삼아 강원도를 둘러싸고 있었다. 우리가 오르고 있는 곳은 그 중 일부분이었던 것 이다. 우리가 목표로 삼은 벼락바위는 해발 500m로 목적지까지 가는 길이 급경사 구간이었다. ‘악’ 글자가 들어가는 산은 정말 악 소리가 난다더니 무슨 말인지 실감이 났다. 오르면서 밑을 보니 마치 바람이 깎아내린 듯한 절벽이 사람의 인생을 나타낸 듯 굴곡이 많이 있었다. 앞으로 나의 인생 역시 이런 길을 걷게 될 것 같았다. 밑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까마득한 절벽의 모습이 미래를 알 수 없는 불투명한 어둠의 길을 걷고 있는 나의 불안함을 대신 말해주는 것 같았다.
벼락바위에 올라섰을 때, 그때서야 산 밑으로 빽빽이 자리 잡은 푸른 나무들로 이루어진 눈부신 절경이 눈을 사로잡았다. 발밑에서부터 올라오는 흙냄새가 코를 찔러 잠시 동안 머리가 어지러웠다. 회색빛의 도시에서 맡았던 칙칙한 냄새에 적응이 되어서인 것 같았다.
“힘들지? 하지만 우리가 언제 또 함께 산에 와보겠냐”
하는 아빠의 말에 씁쓸한 생각이 들었다. 우리 가족이 언제부터 이렇게 서먹서먹해져서 함께 있는 게 더 어색해졌는지. 슬럼프처럼 찾아온 성적에 대한 스트레스는 일상 속에서 나를 지치게 했고 이런 이유로 가족들과 여행을 온다는 것이 한편으론 부담이 되기도 했다.
나의 생각을 읽었는지 아빠는 마음이 답답할 땐 산이 치유해 준다며 이렇게 산을 힘들게 오르면 잡생각이 없어져서 머리가 맑아진다고 하셨다. 숨을 깊게 내쉬는 순간 안개 같은 구름이 다가오더니 나의 어깨에 얹혀진 응어리들을 털어주었다. 솔 나무의 향은 무기력했던 나와 서로 골이 패여 버린 우리 가족들의 마음을 조심스럽게 다독여 주는 듯했다.
높은 곳에 오르고 보니 여기까지 올라갈 수 있을까 했던 생각이 먼저 들었다. 그리고 올라오면서 들었던 생각 역시 바뀌었다. 미래는 보이지 않는 게 아니라 보이게 하면 된다고. 목적지를 향해 최선을 다해서 간다면 언젠가 정상이 보일 것이라는 생각에 숨이 탁 트였다.
내려오는 길에 뒤를 돌아보니 치악산이 내게 손을 흔들며 이렇게 말하고 있었다. 어떤 힘든 일이 와도 이보다 더한 일이 앞으로 너를 기다리고 있을 지라도 극복할 수 있다고. 두려움 때문에 포기하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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