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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선 산수유와 사랑
  • 입상자명 : 최 은 선 광주 살레시오여고 1학년
  • 입상회차 : 10회
  • 소속 : 청소년부
  • 장르 : 청소년부 글쓰기

나는 오늘도 당신을 봅니다. 당신은 어제와 같은 모습으로 내게 와서 똑똑 노크를 합니다. 대답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당신은 내 앞에 우두커니 서서 부드럽게 나를 쓰다듬습니다. 당신의 손은 부드럽지 않습니다. 그 손은 평생을 고생만 하며 산 사람처럼 투박하지만, 다른 것을 부드럽게 쓰다듬는 법을 알고 있습니다. 당신의 고운 손길에 반응하고 싶지만 나는 꼼짝도 할 수 없습니다. 나를 향한 당신의 애정에 흠뻑 젖어 움직이는 법을 잊기 때문이지요. 나를 만지는 동안, 당신은 이 세상에 나와 당신밖에 없는 것처럼 행동합니다. 태양을 품은 듯 뜨거운 두 눈은 오로지 내게만 향해 있고, 드넓은 바다를 쥔 듯 푸른 손은 바람보다 시원합니다. 당신은 무뚝뚝한 내 몸을 수차례 쓰다듬다가 내게 한 번 웃어 보이곤 나를 스쳐 지나갑니다. 그럼 나는 어김없이 어린아이가 되어 있는 힘껏 몸부림칩니다. 내가 움직일 때마다 사그락, 사그락 하며 바람이 산산조각 나는 소리가 들립니다. 당신은 마치 내 언어를 알아듣는 것처럼 슬며시 돌아서서 내 등을 또 한 번 두드려줍니다. 툭툭, 등을 치는 당신은 나를 위로하는 것 같기도 하고, 내게 장난을 거는 것 같기도 합니다. 그 짧은 순간이 흐르면 당신은 다시 다른 곳으로 갈 것을 나는 알고 있습니다. 당신은 모르겠지만, 나는 당신이 내 앞에 머무는 찰나의 시간으로 추운 밤을 버팁니다. 사그락, 사그락. 파도처럼 부서지는 바람을 등에 지고, 당신은 더 높은 곳을 향해 떠납니다. 당신의 떠난 자리에, 햇살의 열기가 봄비처럼 고여 있습니다.
“엄마, 그럼 이 나무는 이름이 뭐야?”
당신은 오늘 당신을 닮은 딸과 함께 왔습니다. 당신의 딸은, 당신과 다르게 버섯처럼 손이 작고 부드럽습니다. 오직 사랑받고 자란 것들만이 가질 수 있는 유순함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마치 고사리 같습니다. 고사리도 늘 사랑받고 자라기 때문에 유순합니다. 고사리 같은 그 손 나를 조심히 쓰다듬습니다. 나의 가장 거칠거칠한 부분과 훼손된 부분만 골라서 매만지네요. 파손된 곳을 품는 어설픈 손길에 나는 갓 태어난 아기처럼 어쩔 줄 모르게 됩니다. 행여 비단 같은 손에 상처 날까 싶어 긴장을 풀어 봐도 나는 여전히 바짝 굳어서 딱딱합니다. 당신의 딸은 가느다란 내 가지를 쥡니다. 가냘픈 그것을 세게 쥔 손길이 아프지는 않지만, 금세 부러질 것 같습니다. 부러지면 아플 것을 알고 있습니다. 오랜 시간을 보호받아 온 것은 약한 힘에도 쉽게 상처받기 마련이기 때문이지요.
“유미야, 그럼 안 돼. 나무가 아야 하잖아.”
당신이 나를 쓰다듬는 것과 비슷한 손길로 딸의 손을 붙잡네요. 당신의 말에 딸은 호기심을 얼굴 가득 띄우고 묻습니다. 나무도 아야 해? 내 몸이 품고 있는 견고함의 감촉을 알게 된 딸은 단순해집니다. 딱딱한 것은 아프지 않을 거라고 믿는 것이지요. 또, 무수한 것들 중, 하나를 잃는 것쯤은 아무렇지도 않다고 여기고 있습니다. 비단 당신의 딸뿐만이 아니라 당신을 닮은 많은 사람들이.
“당연하지. 나무도 살아 있어.”
살아 있어, 라고 말하는 말끝에 힘이 실리는 것을 느낄 수 있습니다. 당신의 말은 늘 바람처럼 강하고 분명하게 닿아 옵니다. 당신의 딸은 결코 이해할 수 없는 사실을 애써 인정해야 하는 표정을 짓습니다. 당신들의 언어를 구사할 수 없는 나는 내가 느끼는 통증에 대해 설명할 수 없습니다. 하지만 나는 늘 내 몸을 사방으로 흔듦으로써 나의 고통을 표현합니다. 새가 노래하는 것을 듣고, 새가 울고 있다고 말하는 사람들. 그래서 내 언어를 알아들을 수 없나 봅니다. 하지만 나를 무던히 겪은 당신은 알고 있는 것처럼 보입니다. 당신의 딸이 힘 있게 쥔 부분을 천천히 쓰다듬기 시작합니다.
“나무는 이렇게 부드럽게 대해 줘야 하는 거야.”
당신의 딸이 고개를 끄덕입니다. 봄볕처럼 부드러운 손이 닿은 곳에 꽃이 피어날 것 같습니다. 화사한 꽃이 피어나면, 나를 쓰다듬는 시간이 좀 더 길어질까. 홀로 상상하다가 수줍어져서 몸을 배배 꼽니다. 내 부끄러움이 전달된 건지 당신은 해맑게 웃습니다.
“나무가 유미를 만나서 기분이 좋은가봐.”
그 말에 당신의 딸이 수줍게 웃네요. 나무야, 또 만나자. 앳된 목소리로 내 여린 살에 속삭이는 말은 벌꿀처럼 달콤합니다. 또 만나자라는 말은, 아무리 생각해 봐도 진달래꽃처럼 예쁜 말입니다.
“유미야, 그럼 계속 올라갈까?”
당신의 말에 딸이 고개를 끄덕입니다. 당신은 또다시 나를 스쳐 지나갑니다. 차츰 멀어지는 당신의 등을 보며, 나는 내일을 기약합니다. 당신을 통해 기다림을 배운 나는, 이제 예쁜 꽃을 피울 봄을 기다립니다. 아름다운 꽃을 활짝 피운 나를 보고 한 번쯤 더 웃어 줄 당신을 기대해봅니다. 당신을 사랑하는 나는, 당신의 집 뒷산에 살고 있는 한 그루의 산수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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