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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상 천년의 바람이 빚어낸 숲
  • 입상자명 : 윤호기
  • 입상회차 : 15회
  • 소속 : 일반부
  • 장르 : 일반부 시·수필

여름의 인공림 숲은 정말 아름답다. 먹구름과 흰 구름들은 꼬리를 물려 쫓고 쫓기는 그 틈을 타고 파란 하늘이 열리면서 나를 앞지르는 바람과 조용히 뒤를 따르는 소음을 매달고 차는 질주한다. 겨울의 흔적 뒤에 여름의 색이 번지는 곳을 향해 가고 있다.
얼마를 달렸을까. 목적지의 끝이 닿은 이곳, 경상남도 함양 상림 인공휴양림이라는 안내판이 미소로 눈앞에 다가선다. 세대와 분야는 다르지만 신라시대 선인들의 발자취가 천년의 바람을 일으키는 숲 속으로 가는 문을 열어준다.
보이지 않는 곳으로부터 흘려듣던 그 아련한 숲의 들머리에 들어선다. 바람이 불 때마다 잔잔한 파도소리를 내는 숲, 아침이면 곤히 잠든 새들을 깨우느라 잎새들이 찰랑찰랑 하늘을 향해 몸을 흔든다. 느티나무 숲에 둥지를 틀고 사는 온갖 새들이 오늘도 무사히 창공을 누비다 마치고 오도록 하는 기도 같다.
어디선가 ‘뚝딱뚝딱 뚜따닥~’ 하고 나무 찍는 소리가 들린다. 어디서 나는 소릴까. 위를 올려다본 순간, 높은 나무의 기둥에 붙어 오색딱따구리가 연방 머리를 앞뒤로 젖히며 둥치를 쪼고 있는 게 아닌가. 오탁에 찌든 도심에서는 듣기 힘든 천연의 소리다. 소리는 점점 크게 확대된다. 딱따구리의 부리에 나무껍질이 떨어져 나가는 모습이 신기하기 그지없다.
오전 이른 시간 이곳은 사위(四圍)가 완벽한 고요다. 모든 게 멈춘 듯 정밀(靜謐)한 여름날, 소음이라곤 오직 내가 내쉬는 숨소리뿐이다. 더위를 흠뻑 뒤집어쓴 소나무들, 무엇 하나 치장하지 않았음에도 푸르름으로 빛난다.
재잘거리는 텃새의 낭랑한 노래 소리가 들린다. 숲 속의 청량한 기운과 풀들이 내뿜는 자연의 향기는 나른해진 몸도 마음도, 얽히고설킨 시름도, 잡생각도 다 내려놓게 하는 이른바 삼림욕(森林浴)이다.
고운 최치원 선생이 나뭇가지 하나 꺾어 꽂은 게 벌써 천년이 되도록 우람한 낙랑장송으로 살고 있다. 인내하고 기다릴 때마다 가지가지에 사리처럼 오롯한 솔방울들이 돋았다. 보면 볼수록 단아하고 다소곳하게 치마폭을 펼치고 자리를 잡은 소나무의 넉넉한 자태가 바로 극락의 품이 아닐까 상상한다. 몸과 마음이 세정(洗淨)되지 않을 수 없는 순간이다. 이럴 때엔 앞으로 매순간을 이렇게 맑게 살아야지 하는 다짐이 가슴에 그득히 차오른다.
그러나 피사체가 바뀌면 어느새 본태성 속기(俗氣)가 솔솔 피어오른다. 마음은 금세 간사해져서 속물(俗物) 근성이 도진다. 참 뿌리도 깊다 싶다. 삶이 끝난 후에는 다 부질없는 것인 것을, 과도한 물욕과 헛된 욕심의 크기는 밑이 빠진 독이니 이를 어쩌랴.
소나무가 나를 다독이듯 바람에 미세하게 흔들린다. 처진 채 드리워진 그의 품이 얼마나 넉넉했으면 천년 동안 거쳐 간 마음들을 넉넉히 잠재워 주었을까. 서두르지 않고 묵묵히 기다리며 인내하는 일을 몸소 실천하는 처진 소나무를 보며 나도 이제 느리게 살고 싶어진다. ‘기다림’이란 어쩌면 속세에서 선계로 이어지는 들목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가슴으로 품으며 고운 최치원 산책로로 발길을 옮긴다. 역사 속 문향의 대표적인 인물인 최치원, 신라 진성여왕 때 태수로 와 있던 고운 선생이 함양의 너른 들 가운데로 흐르던 위천수의 범람으로 인해 홍수 피해가 심한 것을 보고 강을 서남쪽으로 돌린 후 수해로부터 멀어졌다. 1961년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숲 속을 거닐며 신라 최고의 문장가였던 고운 최치원 선생을 더듬는다. 9세기 토황소격문이란 명문으로 중국 당나라에서도 이름을 빛내며 통일 신라의 발자취를 남기고 돌아온 우리나라 한문학의 시조인 최치원의 삶을 되새겨 보자는 의미에서 만들어진 숲이다.
숲을 가로지르는 냇가 바로 옆 정자가 탐방객들의 눈을 붙든다. 천년의 숲을 조성한 최치원의 선정을 기리기 위해 고종 43년(1906년)에 후손들이 세운 사운정(思雲亭)이다. ‘고운을 추모하는 정자’라는 뜻으로 건립했다는 산책로 길 위에는 선생의 넋이 아직도 살아 숨 쉬고 있다.
빛나는 세월의 흔적들을 남기고 떠난 영혼에서 울리는 목소리며, 글 속에서는 숨소리가 지금도 들리는 듯하다. 세대와 분야는 다르지만 전통문화에 대한 예술적 열정은 통한다는 이야기를 천년의 바람 일으키는 여름 상림 숲 에서 만난다.
우리는 옛날 역사 속의 뛰어난 사상가와 문학가와 직접 만날 수는 없지만, 그러나 그들이 남기고 간 소리와 그림자로 조우한다. 신라 천년의 고즈넉한 숲길을 걸으며 간단없이 쏟아지는 상쾌한 새소리에서 옛 문인들의 시를 듣는다. 자아를 성찰하기 좋을 뿐 아니라 무념무상(無念無想)을 경험해 보기에도 그만이다.
성하(盛夏)의 태양을 먹고 자란 온갖 나무들은 한층 푸르게 우쭐대며 하늘의 구멍도 보이지 않을 만큼 우거졌다. 얼마 아니 있으면 낙엽 지는 가을이 자연의 정취를 흠뻑 분출시키는 상림 숲 전체를 수놓는 단풍으로 보는 이들을 황홀경(?惚境)에 빠지게 하리라.
참나무와 소나무는 한국의 대표적 수종이다. 어느 산 어느 곳을 가든 흔히 볼 수 있는, 우리 강산을 지키는 나무들이다. 천 년 전의 통념이 박제된 여러 가지 기물들이 거미줄에 걸려 오랜 세월을 말해준다.
나무는 꿈과 희망이다. 나무가 희망의 대상인 것은 나무도 인간과 같은 생명체이기 때문이다. 나무는 인간 없이도 살 수 있지만 인간은 나무 없이는 살 수 없다. 그래서 인간은 생명의 원천인 땅과 평생 동거하는 나무를 숭배하는 것이 아닐까.
신라 천년의 문화가 담겨 숨 쉬고 있는 이 숲 속에는 시대를 이어가면서 많은 문사(文士)들이 다가왔었다. 특히 신라의 최치원 조선전기에 김종직 조선후기에 박지원 등이 대표적인 외부의 인물이다. 허공을 향해 매달렸던 현고수(懸鼓樹), 임진왜란 때 진주성을 사수하라는 명을 받고 곽재우 장군이 걸어놓고 의병을 훈련시켰다는 북채는 중앙을 얻어맞은 심장에서 노도처럼 호령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소리가 바람의 파장을 타고 민족의 혼을 깨어내기 시작했을 것이고, 뻗어가는 소리는 산자락에 부딪혀 다시 소리를 낳고, 소리의 흐름은 질서 없는 질서로 일어서고 꼬리를 감췄을 것이다.
숲 속 모퉁이마다 오래된 역사만큼 많은 유적이 있다. 흥선대원군이 쇄국의 결의를 다지기 위해 세운 척화비가 서 있고, 길옆 모퉁이에선 제법 단장을 한 묘지 한 기가 나왔다. 반쯤은 땅에 묻히고 반쯤은 하늘을 향해 있다. 세종대왕의 열두 번째 아들 한남군(漢南君)의 묘이다. 한남군은 세종의 후궁 혜빈 양 씨의 소생으로 단종의 삼촌이다. 김종직이 다섯 살 아들을 잃고 슬픔을 이기기 위해 심었다는 느티나무, 홍역으로 잃은 아이의 이름을 따 ‘목아(木兒)’라고 불렀다. 이듬해 함양을 떠나면서 학사루라는 누각 앞에 또 느티나무 한 그루를 심고 아이에 대한 그리움을 달랬다는 사연도 걸려 있다. 그런가 하면 회재 이언적이 자신의 건강을 보살피기 위해서 심은 조각자나무, 김정희가 청나라에서 가져와 고조부 김흥경의 묘소 앞에 심은 백송도 눈에 띈다. 뇌계 유호인의 비석이 명불허전(名不虛傳)으로 전한다. 숲 옆으로 흐르는 강 위천은 그의 호를 따라 뇌계천이라 불렀다.
흔히 문화재라면 유리장 속의 금관만 생각할 뿐 나무 문화재란 말엔 익숙지 않은 국민이 대다수인 것 같다. 겉으로 보이는 문화적 가치만을 논할 것이 아니라 보이지 않는 이면을 보듬어 준다면 그것 또한 문화재를 사랑하는 한 방법이 아닐까. 백세토록 길이 전할 맑고 푸른 기풍을 뜻하는 백세청풍(百世淸風)은 조선시대 지식인들이 가장 선호했던 글귀라고 한다. 영원토록 변치 않는 고고한 선비가 지닌 절개를 대변하는 산은 만물을 낳는 어머니라 했던가. 만물이 있는 산에 들어가면 어머니의 품처럼 아늑하지만, 그러나 만물이 없는 산은 허전하기 그지없다.
자본이 몰리면 값을 매길 수 없는 무거운 가치를 지닌 역사와 삶의 흔적들이 하나둘 지워지고 만다. 그와 함께 필연적으로 따라오는 것이 전통의 파괴다. 사라져가는 천년의 풍경과 시차를 잡아두기 위해 스마트폰 속에 가둔다.
어느새 해가 기울면서 구름은 바람 따라 떠나고 인생도 세월 따라가며 서쪽 산 그림자가 숲 속으로 길게 누우면서 보따리 같은 조각달이 높은 하늘에 걸려있고 뒷산과 먼 산에 가족을 찾는 뻐꾸기 소리가 한창이다. 그 소리에 애처롭고 애틋한 마음이 끝없이 이어져 아지랑이처럼 어디론가 흘러간다.
인근 농장에서 “이랴 이랴” 소를 모는 소리가 내 귓속에는 황폐해지기 쉬운 산림을 걱정하는 숲의 신(神)들이 한숨 소리로 들리는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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