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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선 할아버지의 마지막 이유
  • 입상자명 : 최 예 람 경기 평택 송탄제일고 1학년
  • 입상회차 : 10회
  • 소속 : 청소년부
  • 장르 : 청소년부 글쓰기

그날따라 유난히 눈이 많이 내리지 않고 바람만 많이 불어서 추운 겨울 날씨에 더 추운 날이었던 것 같다. 그때가… 초등학교 겨울방학이었는데, 얼굴이 마비가 될 정도로 추웠던 것 같았다. 나는 종종 할아버지와 함께 동네에 산들을 많이 다닌 것 같았다.
산이 3개가 있는데, 산 하나는 이름이 없을 정도로 정말 조그마한 산이었다.
그날도 목도리에 장갑에 모자에 귀마개에 잠바에 꼭꼭 껴입고 산으로 가고 있는데, 언제부터인지 할아버지가 유난히 산을 타는 걸 힘들어하셨다.
‘허, 허’ 하는 쉰 숨소리처럼 그런 숨소리도 많이 내셨다. 나는 할아버지 연세가 연세이니 만큼 그런가 보다라고 생각하고 아무 말 없이 손을 꼭 잡아 드리는 것 말고는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그렇게 산에 처음으로 올라가는데, 그날은 매일 가던 산보다 좀 더 멀리 떨어져 있는 산으로 올랐다 매일 가던 산에는 할아버지 친구 분들이 계셔서 갔는데 가끔 친구 분들이 없을 때는 다른 산을 가곤 했다.
그날도 다른 산에 가고 있었다. 올라와서 중간에 있는 나무의자에 앉아서 할아버지 손을 잡고 할아버지가 주신 사탕을 먹고 있는데, 할아버지가 “아이고, 힘들어 이제 죽을 때가 됐나보다.”라고 우스갯소리를 하셨다
“뭐야~그런 게 어디 있어!”라고 하고 일어나서 눈을 만지고 놀고 있는데 할아버지가 “너희 할머니가 할애비 빨리 오라고 부르나 보다.”라고 말을 하셨다. 그때는 그게 무슨 소린가 하고 할아버지를 보고 있는데 할아버지가 웃으시면서 “빨리 가야지, 오래 살아야 짐만 돼서 미움만 받지.”라고 하셨다.
그때는 그건 또 무슨 소린가 하고 할아버지를 보는데 “올라가자!” 하고 웃으시면서 내 장갑을 툭툭 털어 내 손을 꼭 잡고 할아버지 바지 주머니에 넣어서 올라가고 있었다.
거의 정상쯤 왔을 때 운동기구 위에서 장난을 치고 있는데, 할아버지가 옆에 서서는 “할애비 없어도 좋아?”라고 물어보셨다 “할아버지 없는 게 뭐가 좋아!”라고 말을 하고 장난을 치는데 “우리 손녀 시집가는 거 보고 죽어야지 내가!” 하고는 웃으시더니 내 손을 잡고 정상에 올라와서 벤치에 앉아서 밑에 아파트를 쳐다보는데 “손녀 시집가는 거 보고 죽을려면은 매일 산에 와서 운동해야겄네.”라고 하셨다. “매일매일 와서 운동해!”라고 하고 계속 밑에 구경하고 있었는데. “그때까지 살려면 200살까지 살아야겄네?”라고 웃으시길래 같이 웃고 있었다. 그날따라 할아버지가 더 늙어 보이고, 더 말라 보이셨다.
그래서 할아버지 나이에 비해서는 건강한 편이셨는데, 그날따라 왜 이렇게 안돼 보이셨는지…. 그래서 할아버지 보고 한 번 웃어 드렸다 내가 웃었던 것 중에 제일 기쁜 표정으로, 그리고 산을 내려가고 있었다 할아버지랑 이런저런 이야길하는데 그날따라 ‘손녀 시집가는 거 보고 죽어야지.” 하시는 일이 많았다.
집에 돌아와서 할아버지랑 티비를 보는데 어김없이 아빠는 할아버지에게 화를 냈다. 나는 그런 아빠가 정말 싫었다.
할아버지 힘든 데 맨날 할아버지 보고 짜증을 부린다.
할아버지는 귀가 안 좋으신데 그거 못 듣는다고 성질을 부렸다.
그렇게 매일 할아버지랑 산을 다니는데 방학 마지막 날 할아버지랑 매일 가던 산으로 가서 할아버지 친구 분들이랑 만나서 얘기할 동안 공원에서 놀다가 할아버지 얘기가 끝나고 할아버지랑 올라갔다 그날따라 할아버지는 아무 말 없이 그냥 산을 오르기만 했다. 원래는 장난도 치면서 올라가는데 아마 아침부터 아빠랑 싸우고 나와서 그렇다고 생각하고 그냥 손을 잡고 올라갔다가 내려왔다. 그렇게 집에 와서 할아버지랑 아빠는 어김없이 말싸움을 했고 아빠가 일을 나간다며 현관문을 ‘쾅!’ 하고 닫고 나가 버렸고 할아버지께서는 “에호.”라고 하시고는 할아버지가 매일 드시던 기침을 멈추게 하는 물약을 드셨다 아까도 아빠와 병원에서 약을 지어 오네 찾아 오네 안 찾아 오네 그것 때문에 싸우셨다. 그렇게 약을 드시더니 갑자기 막 토하시는 것이다 입에 들어가자마자 갑자기 입에 거품이 잔뜩 물려서는 몸을 떠시고 나는 놀라서 당장 현관문을 열고 아직 현관문 앞에서 담배 피던 아빠에게 소리쳤다.
“아빠!!!!! 할아버지가 갑자기 이상해!!!” 그렇게 아빠가 들어와서는 “아휴, 쌩쇼를 하네”라고 말을 하면서 화장실로 모시고 가서는 등을 두드려 드리더니 병원에 데리고 가셨다 그러고 한두 시간 후에 아빠가 들어와서 아까 무슨 약을 먹었냐고 물었다.
그래서 아까 드셨던 물약을 내주었고 냄새가 너무 독했다. 아빠가 가지고 가서는 그렇게 4시간 정도 후에 엄마와 큰 병원으로 이동한 할아버지에게 갔다. 중환자실 앞에서 아빠는 울고 계셨다. 나는 그 상황이 정리가 되지 않아 그냥 멀뚱히 서 있었다. 그렇게 병원을 이동해 다니시다가 우리 동네 병원에서 숨을 거두셨다.
나는 그 이후 아빠와 거의 이야기를 하지 않았고 그렇게 몇 달 후 아빠와 함께 산에 올라가게 되었다 그렇게 조용히 걸었다. 그때가 나는 중학교 1학년쯤이었을 것이다. 그렇게 그냥 걷는데 할아버지가 한 말이 스쳐 지나갔다.
“내가 손녀가 시집갈 때까지 살아야지.”
“할머니가 할애비 부르나 보다, 빨리 가야지.”
왜 그땐 몰랐을까? 할아버지의 마지막 이유가 나였다는 걸. 그렇게 아빠 뒷모습에서 할아버지의 그런 위축됨을 느낄 수 있었고 난 아빠 옆으로 가서 할아버지와 한 것처럼 손을 잡고 정상으로 위로 올라갔다.
할아버지도 내가 아빠를 원망하는 것은 원치 않는다고 생각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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