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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선 우리 할머니의 약은 숲이에요
  • 입상자명 : 최 리 아 서울 길음초 3학년
  • 입상회차 : 10회
  • 소속 : 청소년부
  • 장르 : 청소년부 글쓰기

거운 일이 생기곤 했다. 할머니는 누구보다 나를 반겨주셨다. 맛있는 것도 많이 해주셨고, 하루 종일 귀찮게 굴어도 늘 귀엽다고 하셨다. 하지만 그런 할머니가 언젠가부터 우리 가족을 별로 반기지 않으셨다. 말도 거의 하지 않고 하루 종일 누워만 계시려고 하셨다. 밤이면 잠도 잘 못 주무시고, 밥도 거의 드시지 않으셨다. 처음에는 ‘무언지 굉장히 화가 난 일이 있으시구나.’ 이렇게 속으로 생각했었다. 엄마도, 아빠도, 나도 처음에는 그렇게 생각했다. 왜냐하면 우리 가족이 기억하는 할머니는 굉장히 멋 부리는 것을 좋아하시고, 개그우먼처럼 웃긴 말도 잘하는 분이셨기 때문이다.
잠시도 가만히 있질 않으셨고, 늘 몸을 움직여 집안일을 하시던 분이셨다. 가끔 우리 집이 있는 서울에 올라오시면 피아노에 쌓인 먼지까지 쓱쓱 닦아내시며 괜히 우리 엄마를 눈치 보게 하시던 할머니셨다. 발도 부지런하셔서 시장으로, 놀이터로 나를 끌고 다니며 구경하는 것도 좋아하셨다. 단 것을 좋아하셔서 예쁘고 맛있는 케이크 가게에 가는 일도 늘 빼놓지 않으셨다. 하지만 할머니는 변하셨다. 행동과 성격과 변한 것이 아니셨다. 옛날 모습도 많이 잃으셨다. 생기 넘치는 얼굴에는 힘이 하나도 없으셨고, 전혀 다른 사람처럼 살도 쭉 빠지셨다. 재미없어진 할머니, 힘이 없어진 할머니, 그런 할머니는 정말 이상한 사람같이 보였다.
싫다는 할머니를 억지로 끌고 서울로 모시고 온 것은 아빠엄마만의 생각은 아니었다. 나도 큰 병원이 있는 서울에서 할머니가 치료를 받는 게 좋겠다고 생각했다. 보름 정도 병원 입원치료를 거쳐 우리 집으로 돌아온 할머니는 다행히 살도 예전처럼 다시 찌셨다. 하지만 그뿐이었다. 할머니는 여전히 안방을 차지한 채 이불 속에 누워만 계시려고 하셨다. 엄마아빠가 아무리 달래도 말을 듣지 않으셨고, 나의 애교작전에도 꼼짝도 않으셨다. 옛날에는 아무리 화가 나셔도 내가 나서면 무조건 손을 드시는 할머니셨다. 하지만 안 통했다. 대신 마치 꾀병을 부리시듯 온몸이 쑤시다고만 하셨다. 아무리 밖에 나가자고 해도 무릎이 쑤셔서 못 가겠다, 허리가 끊어질 것처럼 아프다, 잠이 온다, 이런 식으로 꼼짝도 하지 않으려고 하셨다. 할머니는 잔다고 한숨, 아빠와 엄마는 걱정이 돼서 한숨, 나는 답답해서 한숨이 절로 나왔다.
그렇게 할머니가 우리 집에서 지내신 지 일주일쯤 지났을 때 문득 할머니와 함께 집에서 가까운 솔밭숲에 가보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떠올랐다. 할머니를 숲에 초대한다는 초대장도 공들여 만들었다. 할머니가 좋아하시던 황금 빛깔 색지에 내가 가장 아끼는 스티커들을 붙여서 만든 초대장이었다. 그동안 엄마는 맛있는 김밥도시락을 준비하셨고, 아빠는 할머니 선물로 발바닥이 편하다는 신발까지 사오셨다. 드디어 만만의 준비를 마친 우리 가족의 할머니 꼬시기 대작전 시작, 결국 엄마와 아빠, 그리고 나의 마음은 할머니의 마음을 움직이는 데 성공했다.
다행히 날은 좋았다. 햇볕은 따뜻했고, 바람도 불었다. 정말로 김밥을 싸서 소풍을 가기게 딱 좋은 날씨였다. 저절로 노래가 나왔다. 가면서 발장난도 절로 나왔다. 내 마음과 상관없이 할머니는 계속 투덜거리셨다. 아주 조금 걷고서도 “아이고, 힘들어. 조금만 쉬었다 가자.” 이렇게 말씀하셨다. 그때마다 우리 가족은 할머니 말을 따랐다. 세상에서 가장 느린 소풍, 꼭 달팽이가족의 소풍 같았다. 그래도 할머니는 다시 집에 가자는 말씀은 안 하셨다. 천천히 가다가, 쉬고, 다시 천천히 가다가 쉬고, 그렇게 힘들게 갔지만 할머니는 포기는 안 하셨다. 엄마도, 아빠도, 나도 그게 기분 좋았다. 할머니와 함께하는 오랜만의 즐거운 외출이었기 때문이다.
솔밭숲에 가는 동안 길에서 꽃도 보고, 새도 봤다. 나무도 보고, 뭉게구름이 둥둥 떠 있는 하늘도 봤다. 잠자리도 보고, 풀도 봤다. 새소리도 따라 하고, 가다가 만난 돌탑에 돌을 얹으며 소원도 빌었다. 맨날 맨날 속으로만 빌던 그곳에서 일부러 “우리 할머니 예전처럼 수다 할머니로 돌려주세요.”라고 큰 소리도 소원을 빌었다. 그런데 할머니도 오랜만에 꽃도 보고, 나무도 보셔서 그랬는지 조금씩 웃으셨다. 소리를 내서 크게 웃지는 않으셨지만 분명 웃으셨다. 고개도 둘러보고, 예쁜 꽃을 한참 바라보기도 하시고, 엄마한테 물을 달라고도 하셨다. 그리고, 가다가 아빠 손 대신 내 손도 잡으셨다. 손을 잡고 조금 흔들어 주기도 하셨다. 나보다 먼저 다람쥐를 찾으시기도 하셨다.
숲에 가기 싫다고 하셨던 할머니는 막상 숲에 오시더니 숲을 좋아하시게 된 것 같았다. 할머니의 작은 변화는 우리 가족의 흐린 기분을 정말로 맑게 만들어주었다. 나는 ‘야호’라고 소리도 치고 싶은 기분이었다. 아빠와 엄마도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그러고 보면 2학년 때 숲체험교실에서 들었던 이야기는 정말 사실이었다. 그때 숲체험을 지도하시는 선생님이 숲은 사람의 아픈 몸과 마음을 치료하는 에너지가 넘치는 곳이라는 하셨었다. 공기도 맑고 새소리도 나고, 물도 졸졸 흐르는 숲은 그래서 사람들의 정말 좋은 친구 같다. 그래서 우리 할머니도 숲에서 절로 마음과 몸이 나아지신 게 아닐까. 그렇게 생각해보니 숲은 할머니의 약이다.
할머니는 다시 시골로 내려가셨다. 하지만 가끔 전화를 하면 할머니가 그래도 많이 건강해지셨다는 생각이 든다. 사실 서울에 계시는 동안 우리 가족의 등쌀에 못이기는 척 숲을 찾으셨던 할머니셨다. 다행히 할머니도 이제는 숲을 좋아하신다. 그곳에서도 가끔은 숲을 찾아가신다고 하셨다. 옛날처럼 아주 많이 건강해지시지는 않으셨지만 그래도 나는 믿는다. 언젠가 할머니가 아주 아주 많이 건강해지실 거라고. 우리 할머니한테는 숲의 약과 우리 가족의 사랑이 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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