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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상 할아버지와 함께 간 마지막 여행
  • 입상자명 : 이 지 민 경북 포항 대흥중학교 1학년
  • 입상회차 : 3회
  • 소속 : 청소년부
  • 장르 : 청소년부 글쓰기
1년 전쯤이다. 쉬지 않고 내리쬐는 햇살이 유난히도 뜨거운 여름이었던 것 같다. 할아버지와 할머니를 모시고 금오산으로 여행을 가기로 한 날이었다. 투명하면서도 노란 햇살을 가득 빨아들인 나무들은 평소보다 훨씬 탐욕스러워 보이는 푸른 색깔이었다. 청명한 하늘까지 어우러진 맑은 날이었는데 그날따라 왠지 여행을 떠나기 전 으레 느껴지는 설레임보다는 왠지 생소한 불안감이 더 강하게 느껴졌다. 할아버지, 할머니와 떠나는 오랜만의 여행인 만큼 기대감과 설레임이 불안하게 느껴지는 것이라고 자기합리화 시키며 나는 얼굴에 애써 웃음을 띠운 채 자동차에 올라탔다. 약하게 코팅된 자동차 유리조차 칼날처럼 따갑게 비춰드는 햇빛을 당해내지 못하는 것일까? 조금도 약해지지 않은 햇살들이 할아버지, 할머니의 깊게 패인 주름 사이사이에 온통 황금빛 물감을 풀어놓았다. 저절로 미간이 찌푸려질 만큼 강렬한 햇빛이었건만 누구 하나 신경 쓰는 이 없이 만면에 웃음기가 가득 했다. 가족들의 행복한 모습을 보자 나 또한 처음 출발할 때의 불안한 감정을 잊고, 시원하게 그늘을 드리울 휴양지의 아름드리 나무를 생각하며 금세 기분이 좋아졌다. 나무 그늘 밑에서 차가운 수박을 큼직하게 썰어 한 입 크게 베어 물 생각에 어느새 입 안에는 달콤한 수박의 향기와 과즙이 가득 고였다. 창 밖의 풍경은 여전히 노란 햇살에 묻혀 있다. 간간히 보이는 산의 실루엣만이 목적지가 가까워지고 있음을 알렸다. 우리 가족들은 모두 식물을 좋아한다. 그래서 집에도 식물을 많이 기르는 편이다. 하지만 관상용으로 예쁘장하게 심어 놓는 나무와 촉촉한 흙에 뿌리를 박고 울창한 산 속에 우뚝 서 있는 믿음직스러운 나무를 어찌 비교할 수 있으랴. 인공적으로 가지치기를 하고, 물뿌리개에 담긴 가느다란 물로 생명을 지탱하는 나무보다는 풍성한 자태를 자랑하며 간간히 내리는 굵은 빗줄기로 생명을 유지하는 나무가 더 멋있고 풍요로운 것이다. 나도 그런 나무가 되고 싶다. 비록 실내에서 키워지는 나무보다 예쁘지는 않겠지만 다른 사람에게 그늘을 만들어주고, 신선한 산소를 제공해주는 나무, 그런 나무 말이다. 이런저런 생각을 하다 도착한 휴양지에는 어느새 수북이 쌓여 여느 때보다 훨씬 푹신한 토양을 만들어버린 누런 나뭇잎들이 깔려 있었다. 아직도 가을이 되려면 한참이나 남았건만 누렇게 퇴락한 채 외면받고 있는 나뭇잎이 안쓰럽게 느껴졌다. 하지만 나뭇잎 덕분인지 대지의 냄새는 여느 때보다 향긋하고 달콤하였다. 그 위를 걸으면 발밑에서 사박사박 스러지며 조심스레 밟히는 소리가 나곤 하는데 그것마저 부드럽게 들렸다. 숲은 언제나 풍성하다는 것을 새삼스레 느낀다. 숲에 오면 크게 심호흡을 하는 것도, 괜스레 마음이 평안해지는 것도, 나무에서 배출된 햇살 한 가닥씩을 여문 깨끗한 산소가 잿빛으로 더럽혀진 마음을 투명하게 씻어내기 때문이 아닌가 싶다. 그만큼 산은 마음의 안식처이자 육체적 피곤을 받아주는 너른 어머니의 품이 분명하다. 우리 가족은 휴양림에서 하루를 푹 쉬었다. 내게는 언제나 무뚝뚝하시던 할아버지조차 가끔씩 환한 미소를 지으셨다. 어쩐 일인지 할아버지는 내게 다른 때보다 더 많이 웃어주셨고 더 많이 이야기 해주셨다. 같이 나뭇잎을 줍기도 하고 차가운 물 속에서 물장난도 쳤다. 하지만 당연히 기뻐야 할 그 순간에 내 마음의 한 구석은 왜 이유없이 무거웠을까? 할아버지의 미소가 왜 슬프게 보였을까? 나와 할아버지는 싸알한 나무 향과 너무나 포근한 숲의 풍경에 도취되어 전보다 훨씬 가까워진 듯했다. 그 해 겨울, 할아버지는 폐암이라는 판정을 받고 세상을 떠나셨다. 그래서 그랬을까? 너무나 맑은 날씨에 불안감을 느꼈던 것이. 할아버지가 더 많이 웃으시고 이야기 하셨던 것이. 이렇게 내 곁을 영영 떠나실 것이었다면 그렇게 하지 않으셔도 되었는데. 그냥 무뚝뚝한 할아버지로 오래 오래 남으셔도 됐을 텐데. 할아버지의 마지막 모습은 풍요로운 숲의 품속에 깊숙이 안긴 채 푸근하고 다정하게 미소 지으시는 모습이 되어버렸다. 할아버지의 장례식에는 참가하지 못했다. 비가 너무 많이 내린다는 이유였다. 한 순간 믿기지 않았던 말이 갑자기 현실로 느껴지면서 눈물이 흘렀다. 죽음이 어떤 건지 처음 체험한 순간이었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다행이라는 생각이 든다. 할아버지와의 마지막 여행이 복잡한 도시가 아닌 편안함이 가득 배여 있던 숲속이었다는 것이. 그 속에서 할아버지와의 마지막 여행을 할 수 있어서 너무 행복했던 것 같다. 물론 그때는 그것이 마지막 여행이 될지도 몰랐지만 말이다. 이제 다시 산의 품으로 돌아가신 할아버지. 하지만 아무리 좋게 생각하려고 해도 널따란 숲의 위로를 받으며 울고 싶은 마음은 어쩔 수 없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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