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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선 산판 죽을 것 같이 힘들었던 하루
  • 입상자명 : 윤 연 수
  • 입상회차 : 8회
  • 소속 : 청소년부
  • 장르 : 청소년부 글쓰기

산판일은 쉽지 않았다.
내가 산판이라 명칭하는 것은 아마 추측해 보건대 그 이름 말고는 내가 아는 어떤 이름도 그것을 대신할 수 없기 때문이다. 쉼없이 기계소리는 웽웽대며 고막은 터져나가는 것 같았고 쓰러진 나무 사이로 다람쥐는 도망을 가고 따라 눕는 풀들 때문에 풀 메뚜기는 사방으로 날아다니고 아빠의 "비켜라"라는 주문같은 소리에 뱀에 물릴까 빌려 신은 무거운 할머니의 빨간 장화는 거치적거려 생각보다 더 몸을 둔하게 만들었다. 사촌언니랑 난 큰 아빠에게 언짢은 소리만 듣게 되는 땔감 작업하는 그 곳을 산판이라고밖에 말을 할 수가 없다. 비록 잘라놓은 나무 둥치를 하나씩밖에 경운기에 싣지 못해서 '힘도 없는 요새것들'이 되었지만 날은 지독히도 덥고 청바지는 척척 다리에 휘감겼다. 팔은 안까졌지만 소나무 둥치때문에 이리저리 쓸려 짜증만 마구 났고, 최선을 다하고도 욕만 먹는 터라 만사가 귀찮았다. 공부한다고 하고 서울에서 내려오지 말것을 하고 후회가 막급이었다.
추석이다.
이번에도 할머니네는 마당 가득 차가 들어차고 세 분의 작은할머니네 가족까지 거의 40여 명이 움직여대는 북적이다 못해 빡짝대는 모습이었다. 그 속에서 제대로 자리도 못 잡고 구형 TV에 매달려 사촌언니들과 약 7㎡밖에 안되는 사랑방에서 몸도 똑바로 못 누이고 푸세식 화장실과 외양간 때문에 날아다니는 엄청난 파리떼들에게 짜증과 욕을 해대고 있었다. 물론 엄마와 큰엄마는 작은 귀퉁이 방에서 엄청난 양의 부침개를 벌겋게 익은 얼굴로 뒤집개를 그야말로 두 개씩이나 들고 이리저리 음식을 하시는 중이고 아빠와 큰아빠는 아침부터 선산에서 베어 경운기에 가득 싣고 내려온 나무를 마당에서 전기톱으로 잘라 땔감을 만들고 계셨다. 그 나무들을 자르시느라 내는 소리는 귀가 멍멍한 정도를 넘쳐서 누워서 TV 보던 우리들에게는 파리떼보다 더한 짜증만 잔뜩 불러일으키고 있었다. 문득 소음이 멈추고 좀 TV소리에 집중이 되던 그때였다. 사랑방 방문이 열리며 뒹굴거리던 우린 모두 후루룩 경운기 위에 갑작스레 태워졌다. 각자의 장화와 물과 약간의 음식과 더불어 우린 이미 오봉산을 향하고 있었다. 오봉산은 여러 번 올라봐서 익숙하던 터였다. 손자가 없는 시골 우리 할머니네에서는 성묘는 당연하게 우리들 손녀차지였다. 그래서 그 덕에 우리는 우리의 선산인 오봉산자락을 가다가 남의 과수원 밭에서 서리로 복숭아, 사과도 간간이 따먹고 뽕나무가지를 딛고 올라 따먹는 오디는 손과 이빨까지 검게 물들여 히- 하고 웃으면 바보역할은 따 놓은 당상이 된다는 것쯤을 알게 했다. 가끔 그 큰 오봉산 전체가 우리 집안 선산은 아닐 것이란 생각은 했지만 큰할아버지께서 어디서 어디까지라고 구역을 정해 간혹 얘기해 주셨던 그 곳을 난 잊고 어느 순간부터인가는 그냥 오봉산을 우리 거라고 단순하게 생각했다. 그리고 오봉산에 올라가면 뱀이 나올까 하는 무서운 생각만 빼고는 봄에 가면 복분자도 따먹고 하는 그냥 재미나고 즐거운 산자락이었다. 그늘도 있고 물도 흘러내리고 발 밑에는 할머니들께서 늘 따는 고사리, 취나물이 가득해서 향내가 근사하게 나는 피톤치드가 마냥 뿜어져 나오는 그저 단순히 놀러가는 예쁜 산이었다.
하지만 오늘은 끔찍했다.
머리에 쏟아져 내리는 뙤약볕 때문에 무수히 날아다니는 풀벌레들로 숨을 쉬면 벌레들이 내 코로 들어올 듯했고 기계음의 찢어지는 소리에 머리는 아프고 할아버지 산소에 난 잔디를 살리느라 그늘 지우는 소나무를 잘라내야 하는 이 일을 왜 하는지 끔찍했다. 계속 아빠에게 투덜거렸지만 혼자 산에서 내려가기도 너무 무섭고 해서 꼼짝없이 아빠 일을 도울 수밖에 없었다. 마침내 벌초인지 산판인지 끝날 것 같지 않던 일이 끝나고 할아버지 산소엔 맑은 해가 소복이 들어와서 깔끔해진 산소 주변을 보는 순간 내 가슴이 뭉클해지는 묘한 느낌이 생겨나는 것 같았다. 경운기 위에 잘려진 나무둥치들과 주변이 정리되어진 모습을 보고 ‘아! 그래서 매년 아빠는 큰아빠와 더불어 땀에 절어서 오셨고 그 덕에 할머니네 아궁이에서는 가마솥 위로 김이 나기만 하면 맛난 누룽지도, 옥수수도 나왔구나’ 싶은 것이 땀에 절어 걸레 같던 내 기분이 시원하게 반쯤 얼려 가져온 생수를 들이켰던 순간처럼 산뜻한 마음이 절로 생겨났다. 이 나무둥치는 송진향기 피우며 마른 후 겨울에 우리 궁뎅이를 따뜻하게 데워줄 것이고 잔불이 꺼져갈 때 즈음엔 고구마와 감자를 묻어 우리 입을 호강시켜 줄 것이다. 아마 아빠와 큰아빠는 우리에게 얘기는 안 하셨지만 이것을 가르치고 싶지 않으셨나싶다
무더위에 절어 지냈던 오늘 하루.
천촌리, 건천, 산내라는 유치찬란한 이름을 가진 동네를 모두 아우르는 중앙에 봉우리가 다섯이기 때문에 달랑 그냥 지어버린 듯한 오봉산 산 정상에 둥그런 보름달이 떠올라 있고 생식마을로 유명한 우라리 너머로 보이는 보름달은 더 댕글댕글해 보여서 할머니네 마당으로 비추어지는 오늘 문득 오봉산 산허리 어디에서 반쯤은 죽어가던 맹한 내 정신이 살짝은 살아 돌아오고 있는 것 같았다. 그리고 몇 개밖에 베어내지는 않았지만 허가 없이 자른 나무는 괜찮을까하는 막연한 두려운 생각과 더불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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