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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선 내 작은 친구 이야기
  • 입상자명 : 조 병 채
  • 입상회차 : 8회
  • 소속 : 청소년부
  • 장르 : 청소년부 글쓰기

그 녀석을 처음 본 것은 여느 때처럼 뒷산 가까운 곳에 올라가서 책을 읽고 있을 때였다. 한참 동안 책을 읽던 나는 어디선가 계속해서 들려오는 금속 마찰음 소리를 들었다. 뭔가에 홀리듯이, 나는 그 소리가 나는 곳으로 책을 내려놓고 걸음을 옮겼다. 점심시간도 한참 남았고 소리가 가까운 곳에서 들렸기 때문에, 나는 차분하게 몇 번이고 뒤를 돌아보면서 걸었다. 그 곳에 그 녀석이 있었다. 오른쪽 발이 사람들이 쳐놓은 체인에 걸려서 몇 번이고 그것을 할퀴어대고 있었다. 난간용으로 쳐놓은 체인은 쉽게 끊어질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등산로였기 때문에, 언제라도 사람들이 올 수 있는 장소였다. 이런 데에 왜 너구리가 있지? 나는 그런 생각을 하면서 좀더 가까이 다가갔다. “크이이이이익!” 너구리가 그런 소리로 운다는 것을 그때 처음 알았다. 사람이 다가오자 놀랐는지 체인을 할퀴던 손을 내 앞으로 내밀었다. 얼굴을 보자 이마에 대각선으로 긴 흉터자국이 있었다. 조금이라도 더 가까이 가면 공격하려고 하는지 그 녀석은 몇 번이고 눈치를 살피면서 나를 보았다. 나는 거리낌 없이 손을 뻗었다. 지금 생각하면 어디서 그런 용기가 나왔는지 모르겠다. 말뚝에 매어져 있는 체인을 떼어서 그 녀석 쪽으로 던졌다. 느슨해진 사이로 발이 빠졌는지 절뚝거리면서 몇 번이고 뒤를 돌아보는 뒷모습이라니. 나는 체인을 다시 원래대로 돌릴 생각도 하지 못하고 멍하니 그 자리에 서서 녀석을 바라보다가, 그나마도 덫에 걸린 게 아니어서 다행이라고 생각하며 산을 내려왔다. 그리고 그 녀석을 다시 만난 것은 그 다음날이었다. 여자아이들이 놀고 있던 뒤뜰로 그 녀석이 내려온 것이다. 아이들은 당연히 비명을 질렀고, 근처에 계셨던 교감선생님은 커다란 막대기를 들고 그 녀석을 쫓아내려 하셨다. 어, 창가로 그것을 보고 있던 나는 그 너구리가 어제 만난 녀석임을 직감하면서 뛰어내려왔다. 3층 계단이 왜 그렇게 많은지, 헐레벌떡 뛰어내려왔을 땐 이미 남자아이들이 몰려든 상태였다. 흉터자국, 쏟아지는 돌멩이 세례 속에서 그 녀석이 도망치려는 듯 바쁘게 주변을 살폈다. 누군가 던진 돌에 귀를 맞았다. 피가 난다. 나는 급하게 아이들을 헤치면서 그만 던지라고 소리쳤다. 체육선생님이 들고 계시던 하키채, 아이들의 돌멩이, 나는 불현듯 두려워졌다. 이 녀석이 아니라 사람들이. 거의 엎어지다시피 지친 듯 있는 그 녀석을 조심스레 안고 다시 그 녀석을 처음 만났던 그곳으로 올라갔다. 그 와중에 많은 소리가 들렸지만 나는 손 안에 흥건한 피에 이 녀석이 죽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면서 바쁘게 산으로 올라갔다. 그 녀석에게서 작게 들리는 심장소리가 왜 그렇게 소중했는지, 올라간 그곳에는, 새끼 너구리들이 있었다. 사람들이 다니는 등산로에 말이다. 어떤 위험을 감수하고 이 녀석은 아래로 아래로 내려온 걸까. 나는 순간 할말을 잃고 새끼들 옆에 조심스럽게 그 녀석을 내려놓았다. 달려들어 상처를 핥는 새끼들 모습에 나는 갑자기 눈물이 나서 애써 입술을 꾹 깨물면서, 어머니께 혼날 것을 조금 두려워하면서, 코트를 깔고 그 위에 그 녀석을 올리고 다시 감쌌다. 까만 눈가 털이 피에 말라붙어가고 있었다. 정신이 드는 듯 마는 듯 녀석은 고개를 들더니 갑자기 무언가를 토해냈다. 그건…, 어린 내 손가락만한 고구마였다. 오늘 점심에 고구마맛탕이 나왔다는 것을 기억해내면서 나는 침으로 범벅이 된 그것을 새끼들 앞에 놓았다. 배가 많이 고팠는지 허겁지겁 달려드는 새끼 세 마리를 보면서 나는 아무 말도 할 수가 없었다. 얼마나 배가 고팠으면 사람을 경계할 틈도 없이 달려들었을까, 고구마를 금세 다 먹은 새끼들이 자꾸만 뒤를 돌더니 어딘가로 걷기 시작했다. 나도 녀석을 안고 따라 걸었다. 날이 추웠지만 무거운 그 녀석을 안은 탓인지 오히려 땀이 났다. 이십 분 남짓 나뭇가지를 헤치고 외진 산길로 가는가 싶더니, 낙엽으로 덮인 굴이 나타났다. 굴 안으로 팔을 넣어 그 녀석을 두고 나니 한결 마음이 편해졌다. 너구리털이 드문드문 붙어 있는 코트를 입지도 못하고 팔에 걸치면서, 나는 한참이나 그 녀석을 바라보다가 새끼 한 마리가 다시 나가는 것을 보고는 그 녀석을 따라 학교로 돌아왔다. 그 날은 어쩐지 잠을 잘 수가 없었다. 며칠 동안 그 이야기로 학교가 떠들썩하고, 완전히 아이들 사이에서 잊혀져 갈 때쯤, 창가로 바라본 산 중턱에 그림자 네 개가 총총히 걸어가는 것을 보고, 나는 기뻤다. 그리고 눈물이 났다.
그 녀석을 만났던 그 길은 8년이 지난 지금은 공사로 막혀서 찾아갈 수 없게 되었다. 하나하나 주변의 산에서 공사가 시작될 때마다 나는 그 녀석을 생각한다. 그 녀석의 자손들이 어딘가에서 살고 있을 거라는 작은 희망을 품는다. 하루하루 좁아져가는 삶의 터전에서 발버둥치는 그들을 생각한다. 사람이 자연의 일부라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된다. 삶의 터전을 잃은 것은 비단 그 녀석만이 아니리라고 나는 확신한다. 그 안에서 숨쉬는 수없이 많은 생명, 그리고 산이 크게 내쉬는 한숨소리를 우리는 들어야 한다. 많은 논란이 있지만 확실한 것은 무분별한 벌목과 개발은 결코 해답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이 땅은 우리가 함께 살아가지 않으면 안되는 곳이기 때문이다. 환경문제가 본격적으로 대두되고 있는 지금, 나는 가끔씩 어린시절의 나와 그 녀석을 떠올리면서, 우리가 지금 진정으로 나아가야 할 길에 대해 생각하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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