홈으로
  • 프린트하기
입선 추억
  • 입상자명 : 조 경 희
  • 입상회차 : 8회
  • 소속 : 청소년부
  • 장르 : 청소년부 글쓰기

내가 초등학교 3학년 때 일이었다. 그 당시 우리 가족은 등산에 한참 열을 올리고 있었다. 물론 어린 나와 동생은 등산이라면 질색했지만, 엄마와 아빠는 등산을 즐기셨다. 휴일이면 우리 가족은 등산을 하기 위해 이곳저곳을 돌아다녔었다. 한번은 수원에 있는 어떤 산을 올랐는데, 가을에 간 그곳은 형형색색의 단풍이 이곳저곳을 수놓아 눈을 정신없게 했었다.
초등학교 4학년 식목일. 그 날은 지금의 내게 꽤 소중한 날이 되어 있다. 4학년 식목일, 우리 가족은 전주의 어떤 산으로 등산여행을 떠나게 되었다. 나는 산에 간다는 말에 질겁하며 꾀병을 부렸지만, 아빠에게는 소용없었다. 투덜대며 차에 올라타 전주로 향하게 되었다. 한참이 걸려 도착한 전주에는 사람들이 꽤 많이 있었다. 차에서 내린 나는 그저 전주비빔밥 생각에 정신이 없었다. 동생과 같이 배고프다는 말을 계속 내뱉으며 앞서가는 엄마, 아빠의 신경을 박박 긁어 놓기를 십여 분. 우리 가족은 등산을 시작하게 되었다. 그리 가파른 길도 아니었지만, 난 그저 눈이 빙빙 돌아갔다. 동생은 말없이 산을 올랐고, 아빠는 퉁퉁 부은 내 심보를 달래며 앞서가는 엄마와 동생을 뒤쫓았다. 그 날은 식목일이어서 그랬는지, 사람이 꽤 많았다. 지나가는 아저씨, 아주머니들은 입이 삐죽 나와서 등산하는 나를 보며 웃거나 물을 건네주셨다. 그때마다 나는 민망하기도 하고 괜한 기분에 더 짜증을 냈다.
한참을 올라가니 바위산 같은 곳이 보였다. 평평한 진한 회색의 돌들. 동생과 엄마는 그곳에서 먼저 쉬고 있었다. 나도 동생과 엄마 옆에 앉아 산을 올라오며 받은 생수 한 통을 입에 대고 마셨다. 타는 듯한 갈증이 땀과 함께 섞여 떠밀려가는 듯했다. 아빠도 같이 앉는 듯했지만, 지나가는 등산객을 붙잡고 길을 묻고 계셨다.
“오니까 좋지?”
동생은 엄마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나 역시 작게 고개를 흔들었다. 아빠가 바위 위에 앉아서 엄마와 대화를 나누셨다. 산에 대한 이야기인 듯했다. 동생이 장난스럽게 누가 먼저 올라가는지 내기를 하자고 했다. 어린 마음에 우린 헐레벌떡 바위 위를 올랐고, 내가 먼저 바위산 위의 길에 도착했다. 엄마, 아빠도 같이 올라왔고, 동생도 올라왔다. 좀 더 산에 올라 정좌해 앉으니, 이상하게도 가족 중 가장 신이 난 건 나였다. 훅훅 숨이 차고 두 뺨이 시큰거릴 정도로 발그레했다. 하지만, 나는 가족들보다 먼저 앞서 산을 올랐다. 정상까지는 가지 못 했지만, 뒤에서 내게 물을 건네주신 어른들도 따라잡을 정도였다.
산을 내려와 우리 가족은 산 근처에 자리한 산채비빔밥 집을 찾았다. 산에서 내려와서 땀때문에 얼굴이 따끔따끔했지만, 산바람에 땀은 천천히 식어가고 있었다. 비빔밥 집에서 아주머니들은 나와 내 동생을 보고 얼굴이 빨갛다며 하하 웃으셨다. 그때 우리 둘은 서로 얼굴을 보며 낄낄 비웃다가 싸워서 아빠한테 크게 혼이 났었다. 시큰둥해 있는데, 산채비빔밥이 목구멍에 넘어갈 리가 없었다. 깨작깨작 밥을 비비는데 알 수 없는 야채가 너무 많아서 밥을 입에 대기 싫었다. 결국 밥을 안 먹고 있다가 배가 고파서 야채를 씹어 먹었다. 배가 고파서 그랬는지 아니면 진짜 맛있었는지 알 수 없었지만, 하나는 분명했다. 산에서 맡은 풀냄새가 진하게 입을 자극했다. 분명 입으로 먹고 있는데, 산 내음은 코를 향했다. 신기했다. 가게 아주머니는 비빔밥에 넣은 야채가 모두 산속에서 키운 거라고 말씀하셨다. 난 믿지 않았지만, 엄마는 믿고 있었다. 밥을 다 먹고 갈 때 아주머니는 나와 동생에게 무순을 심으라며 봉투에 넣어주셨다. 후에 비빔밥할 때 먹어버렸지만. 집에 가는 길에 다리가 뻐근했다. 산이란 후에 기쁨과 고통이 동시에 오는 곳이었다. 옷에 묻은 땀 냄새가 싫었다. 솔직히 생각해 보면 아무것도 남지 않은 듯했다.
하지만, 지금은 다르다. 우리 가족은 돈 때문에 아빠와 떨어져 살고 있다. 그렇게 생각하면, 그때의 등산은 내게 꽤 큰 추억이다. 가족끼리 함께했던 적도 별로 없었기에 더 큰 추억일 뿐더러 기억은 잘 안 나지만, 아빠는 내게 많은 산에 관한 지식을 전해 줬었다. 그 당시에는 이해도 안 되는 이야기들이 있었다. 가장 기억에 남는 건 ‘산이 하나 있으면 밥 걱정은 없다.’였다. 난 솔직히 그 당시에 그게 무슨 소리인가 했었다. 하지만 가족이 떨어지고 나서 다시 그 산을 찾았을 때 나는 그게 무슨 이야기인지 깨달았다. 엄마와 동생, 나 이렇게 셋이 찾은 산은 더 풀이 우거져 있었다. 아빠가 옆에 없는 엄마와 산을 오르는데, 엄마는 이 풀은 무엇이고 이 풀은 먹을 수 있다며 이것저것 알려주셨다. 어릴 땐 아무 생각이 없었는데, 엄마의 설명을 들으며 등산을 하니 이것저것 풀들이 눈에 띄었다. 그때서야 아빠의 말이 떠올랐고, 오랫동안 머릿속 구석에 자리 잡았던 아빠의 모습이 떠올랐다.
다시 찾은 산은 사람에 의해 작아 보였다. 하지만, 다시 찾은 산은 추억을 품고 있었다. 그때 알았다. 산이란 힘들수록 사람에게 더 힘을 불어넣어준다. 녹색을 보면 편안해지듯, 내게 있어 산이란 가족의 추억을 담는 그런 곳인 것이다.

만족도조사
열람하신 정보에 대해 만족하셨습니까?
만족도조사선택

COPYRIGHTⒸ 산림청 SINCE1967.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