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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선 주산지에서
  • 입상자명 : 박재선
  • 입상회차 : 13회
  • 소속 : 일반부
  • 장르 : 일반부 시·수필
어느 산기슭에 다다르자 지친 빗방울은 조용히 몸을 뉘기로 마음먹었다 오랜 기다림 품이 그리웠던 것이다 말없이 파고들고만 싶었을 것이다 속삭임 없이 뒤척임 없이 매캐한 하늘 떠도는 동안 먹구름 사이로 들었던 것이다 어데서 새들이 지저귀며 전하는 소리를 물안개 전설처럼 떠도는 호수 그 곳 허벅지까지 물 차오른 왕버들 할아버지들 귀 담그고 듣는 오래된 울림들에 대하여 귓바퀴 마다 기어 나온 달팽이들이 느릿느릿 끌고 가는 바위 같은 세월들에 대하여 쭈그리고 앉은 조약돌이 사각사각 신발 밑에서 몸을 부비는 소리들에 대하여 숲 속 이파리 사이 내려앉아 찰방이며 떠다니는 허공의 햇살들에 대하여 물결이 일면 온 하늘이 흔들리는 단 한 번도 마른 적 없는 수심에 대하여 빗방울은 어딘가 그리운 호수를 만나고 싶었다 굽이굽이 흘러 가고 싶었다 허나 낯선 산기슭, 아무렇게나 누워버렸다 눈을 감아버렸다 깊은 잠이 들어버렸다 어느 결에 산속 숨어든 시내를 따라 이미 꿈결처럼 가고 있는지도 모르고 이미 귓가에 전설처럼 나지막이 왕버들에 앉은 새들이 지저귀는지도 모르고 이미 오솔길에 달팽이와 조약돌과 햇살이 모여 기다리고 있는지도 모르고 지문 자꾸 눈물에 젖다보니 손끝마저 퉁퉁 불었어요 어머니 당신이 내주신 숙제는 당최 끝날 기미가 보이지 않아요 오늘도 길 위를 헤매다 길을 잃었네요 도저히 남의 것 훔쳐보고 풀 수도 없죠 마디마디 아로새겨진 미로 같은 하루하루는 이미 내력이었던 거였네요 나이테가 그러하듯 파문이 그러하듯 남몰래 가슴이 저민 흔적인지도 몰라요 보름달과 잎사귀가 물 차오르는 木요일에 날 낳아주신 어머니 날 품는 동안 아팠던 건 함께였네요 어디서 시작되는 게 어디로 끝나는 게 인생인가요 골몰해봐요 알 수 없어요 나는요 오래될수록 따스하게 차분히 말라가는 정갈한 나무로 늙어 가야할 것 같아요 어머니 당신이 내게 가장 먼저 내준 그 숙제 가이 없어요 나만의 길 찾아보라는 어머니 이별의 기억은 서른 해 지나가며 희미해졌지만 눈물겨운 당신은 꿈결같이 웃고 있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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