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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선 밤에 만난 숲의 삽화
  • 입상자명 : 박영희
  • 입상회차 : 13회
  • 소속 : 일반부
  • 장르 : 일반부 시·수필
산 입구는 너무 어두웠다. 인간의 삶이 그러하듯 가로등이 대낮처럼 밝혔던 육교를 지나니 눈도 어둠 속에 적응하는 시간이 필요했나 보다. 임휴사까지 나 있는 콘크리트길을 지나치면 흙길임을 생각하니 걸음이 빨라진다. 눈이 어둠에 익숙해진 후, 간간이 서 있는 가로등의 간격이 더 벌어질수록 나무에게 좋겠다는 생각을 해 본다. 인위적인 것으로 인간의 편의가 우선되어진다면 나무는 편히 쉴 수 없을 것이고 결국은 인간의 손해가 아닌가. 하늘을 올려다보니 하늘 절반을 덮고 있던 검은 나무들의 실루엣이 하늘빛 아래서 검은 물결처럼 잔잔하게 일렁이고 있다. 태양빛에서는 볼 수 없는 아름다움을 목격한 충만함이 가득히 차오른다. 지쳐 있는 마음을 쉬고, 사람에게 상처 받았을 때 숲만큼 좋은 것이 없음을 나는 경험을 통해 이미 잘 알고 있다. 깊은 숲과 칡넝쿨이며 잡풀, 나무들이 무성한 산자락 오른쪽으로 길이 나 있고 길의 오른쪽 내리막길 끝에는 계곡이 있다. 올여름 유난히 더웠던 대구는 비가 거의 오지 않았다. 어둠에 희미하지만 물기 없는 계곡이 길게 누운 듯 메마른 모습으로 눈에 들어온다. 이런 밤에 물소리를 듣는다면 얼마나 청아하게 들릴까? 돌 틈을 비집으며 바위를 휘돌아 아래로 힘차게 흐르는 물소리가 그립다. 비가 그렇게 오지 않았는데도 나무들은 습기를 담뿍 머금고 칠흙 같은 밤보다도 더 짙은 색으로 빛나고 있다. 그들의 생명력에 새삼 감탄한다. 긴 무더운 여름을 지나온 나무들이 너무 기특하고 대견하여 손바닥으로 툭툭 두드려 준다. 감촉은 까칠하지만 그 너머 부드러운 속살들에 흐를 나무들의 역사를 상상해 본다. 과묵한 나무들은 스쳐 지나는 사람들이 흘려놓은 이야기, 바람이 전해 준 소식들, 새들이 떨구고 간 사연들을 상세히 알고 있을 것 같다. 나무는 바로 숲의 살아 있는 역사가 아닌가. 구월인데도 가지 끝의 자주색 꽃들이 예쁜 배롱나무, 작은 도토리들이 올망졸망 매달려 있는 상수리나무가 어둠 속에서도 헤실헤실 웃고 있는 듯 가지들을 흔들어 댄다. 드디어 오래지 않아 깊게 패이고 돌이 불쑥불쑥 튀어나온 내가 좋아하는 흙길을 만난다. 여름에는 바로 이 길에서 둔하게 느릿느릿 기어가던 두꺼비, 하늘소, 장수풍뎅이 같은 작은 생명들과 조우했었다. 쪼그리고 앉아 그들을 지켜보면서 자유롭게 사는 미물들에게 더는 인간이 위험한 요소가 되지 않기를 바라는 순한 마음을 가졌었다. 운동기구와 약수터가 있는 평안동산은 가족들끼리의 두런거리는 대화, 스마트폰에서 흘러나오는 소음들이 자연과의 일체됨을 방해한다. 그곳을 지나쳐 불빛이 전혀 없는 달비고개 쪽으로 몸을 돌린다. 불빛과 점점 멀어지니 무섭지 않은 것은 아니지만 환한 곳에서 어두운 곳을 바라봤을 때는 무서운 생각이 앞선다. 하지만 막상 어두운 곳으로 들어가 버리면 어둠만이 있지 않고 그 어둠 속에서도 밝음이 있다는 것을 곧 알게 된다. 고통스러운 기억들을 생각만 해도 끔찍하여 기억 저편에 밀어 놓고 잊고 살지만 막상 기억 밖으로 끄집어내서 정면 돌파를 하고나면 그렇게 고통이 크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되는 것처럼 말이다. 오늘, 어두운 밤에 숲속에서 홀로 나무에 기대어 조용히 눈을 감고 오래도록 가만히 온몸으로 숲을 체험해 본다. 오래전에 아팠던 마음을 치유해 준 그 숲을 만난 후 이 산에서도 해 보고 싶었다. 산 중턱에서 소쩍새가 운다. ‘솥-저어다. 솥-저어다’ 라며 맑은 소리로 울고 있다. 소나무 숲이 아름다운 산정호수에서 밤마다 소쩍새 우는 소리를 들었었다. 그때 소쩍새는 늘 나에게 ‘이제 그만 울어라. 이제 그만 울어라’라며 미끈한 자태의 소나무 숲을 휘돌아서 내 귓가에 와 속닥거렸었다. 마음먹음에 따라 사물의 모양이 다르게 보일 수 있다지만 어떻게 소쩍새의 울음소리가 슬픔을 향해서 치닫고 있었던 나의 아픔을 멈추게 하는 소리로 들릴 수 있었을까? 생각해 보면 불가사의한 일이다. 가을이면 정상에 억새꽃이 피고 흰 부채 모양으로 커다랗게 펼쳐져 있는 부채 바위가 있는 명성산 아래 작은 사찰이 있고 그 아래로 산정호수가 빙 둘려 쳐진 소나무의 호위를 받으며 햇빛에 반짝이고 있었다. 중년의 나이에 맞닥뜨린 배신과 이별, 주변의 냉소. 남겨진 것은 절망과 한탄뿐이었다. 상실의 늪은 깊은 수렁과도 같았다. 절의 작은 방에서 답답한 가슴을 쥐어뜯다가 수도 없이 방문을 박차고 달려 나갔다. 그때마다 자연으로 방목 되어진 나를 구원해 준 것은 바로 숲이었고. 나무였고. 바람이었다. 그리고 이제 그만 울라고 노래해 준 소쩍새였다. 밤낮 없이 소나무 숲을 걷고, 호숫가를 달리고, 소나무들을 향해 억울함을 토로했다. 이른 아침의 소나무 숲은 간밤에 내린 이슬로 축축한 습기로 가득했다. 신발이며 옷이 젖는 것은 아랑곳하지 않고 그 속에서 편안히 숨을 쉬는 연습을 했다. 법당 위로 해가 솟아올라 소나무 사이를 비집고 강렬한 빛줄기를 쏟아 붓기 시작하면 두 눈을 똑바로 뜨고 태양빛과 마주하며 내 마음속의 우울을 녹여 내었다. 그러던 어느 날 나는 드디어 ‘이제 그만 울어라’ 하고 다독이는 소쩍새의 노래를 듣기 시작한 것이었다. 나무에 기대고 있으니 나무의 향긋함이 나의 온몸으로 퍼진다. 나무의 수액이 마치 나의 몸속으로 수혈되는 듯 편안한 상태가 한동안 지속된다. 이제 마음속에 남아 있는 나쁜 앙금 같은 것은 없다. 다만 순수하고 깨끗한 마음이 넘친다. 남아 있는 시간들을 오로지 자연처럼, 숲처럼, 나무처럼 살아간다면 더 이상 마음을 다칠 일도 이제는 없을 것임을 믿는다. 늦은 시간에 호젓함을 즐기며, 자연과 교감하는 이 순간이 행복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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