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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선 오체투지(五體投地)
  • 입상자명 : 고충영
  • 입상회차 : 13회
  • 소속 : 일반부
  • 장르 : 일반부 시·수필
근자의 날씨는 하루 걸러 하루, 맑고 흐린 상태의 교체지간이었다. 한차례쯤 후련하게 쏟아져 주면 좋을 것 같은데도 막상 비는 오시지 않았다. 자연의 흐름 박자란 일견 알기 쉬운 듯해도 내면의 이유까지 이해하기엔 아직 한참 멀기만 한가보다. 지난 봄 뒷동산 그늘진 산비탈 한편에서 각시붓꽃 한 그루를 만날 수 있었다. 각시붓꽃이 봄날의 산록을 장식하는 붓꽃의 대종이라지만, 어떤 일인지 이번엔 여느 각시붓꽃과 분위기가 사뭇 다르단 느낌은 유난할 정도로 강했다. 무성해야만 할 난초 형, 칼 형 곧은 잎새가 거의 눈에 띄지 않았고, 맨 바탕에 꽃대만 달랑 두 개가 올라와 이제 곧 터질 듯한 꽃봉오리를 달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상식적으로 알고 있던 서식 여건과 맞지 않아 설마하니 생각도 못했던 일 가운데에도 치미는 강한 의구심은 그 흔한 각시붓꽃이기 보다 희귀하단 보호종 난쟁이붓꽃일 가능성을 강하게 가지게 했다. 일반 각시붓꽃 같았으면 어림도 없었겠지만 일단 난쟁이붓꽃을 상정하고 그의 발달되는 진행상황을 사진으로 기록하기 위해 해 뜰 무렵 매일같이 산비탈 능선을 찾기 시작했다. 가슴으로 인식하고 희망하는 난쟁이붓꽃을 이젠 시간으로 확인하고 머리로 부정하는 사실적인 절차를 이행하자는 것이다. 마침 두 송이의 꽃봉오리 상태로부터 관찰이 시작될 수 있었기에 그중 다행이었다. 첫날 아침 봉오리 상태에서 발견한 6시간 뒤에 다시 찾아가 봤더니 역시나 그새 두 송이 모두 힘 있게 활짝 개화해 있었다. 매일같이 촬영을 해도 이미 개화를 한 상태에선 외관상 큰 변동을 발견할 수 없음은 당연했다. 결국 사흘째부터 잎새는 별로 진전이 없는 가운데 꽃이 먼저 스러져 갔다. 이 같은 정황이라면 난쟁이붓꽃 예상은 아직 유효했다. 겨우 돋아나기 시작한 잎새도 가늘고 뾰족한 모습이기에 아직은 난쟁이붓꽃의 희망은 남아 있었다. 내 야생화 사진앨범 속에 하필 난쟁이붓꽃이 없을 바에야 마음에서 그래줬으면 함이 옳았겠다. 아침에 들러 본 의문의 붓꽃도 오늘 부로 꽃잎은 완전히 사라질 것이다. 그렇다면 이제 하나 남아 있는 요령이란 보다 길게 시간 여유를 가지고 잎새가 성장해서 난쟁이붓꽃 특유의 가는 부추 잎 모양을 띌 것인가에 귀결이 닿았다. 그새 다시 새 꽃망울이 달려 준다면야 기다림도 관찰도 더욱 재미를 붙여줄 테지만, 이는 붓꽃이 하고자는 대로 따를 뿐 다른 인위적인 방법이란 있을 수가 없었다. 옳거니, 희망을 가지고 지나온 관찰 결과가 신통치 않다 해도 크게 서운해 할 일은 없겠다. 그간 크나큰 기대와 희망을 안고 이른 아침 해맑은 공기 마시며 매일처럼 왕복한 안개로 은은한 돌투성이 산길 숲길은 도회지 일상에선 구할 수 없는 별단의 즐거움이었고, 산마을에서나 가질 수 있는 각별한 도정이었음을 말하고자 함이다. 꽃이 앉아 있는 위치가 제법 가파른 언덕인데다 성장변화를 기록하기 위한 촬영임으로 자세와 각도는 항상 일정할 수밖에 없었고, 현상의 꽃잎과는 마지막 대면임에 일상적인 흐름대로 습관인 듯 태연스레 사진에 마저 담았다. 오늘 꽃이 온전히 사라지는 만큼 이젠 매일처럼 촬영할 이유는 없어졌다. 그저 수일에 한차례씩 붓꽃 잎사귀가 성장하며 변화되는 느린 모습을 맨눈으로 살피자면 그로서 충분할 것이었다. 어느새 익숙해진 자세로 간신히 자취만 남아 있는 각시붓꽃 촬영을 마저 마치고 자리에서 일어설 즈음, 돌연 ‘악!’ 하는 비명이 스스럼없이 튀어나왔다. 차마 보지 말았어야 할 것을 본 듯 한순간에 머리는 아득해지고 가슴의 심장은 막을 수 없이 두 방망이질을 해대기 시작했다. 이젠 마음의 여유를 가지고 주변을 돌아볼 수 있었기 때문인지 아하! 저런! 한결 같은 일주일, 그 며칠 새 내 몸이 엎드린 부복의 자취가 거기 언덕 사면에 고스란히 각인이 돼 있었던 것이다. 두 무릎을 꿇었던 자리, 두 팔꿈치를 짚었던 자리, 바로 네 곳의 지체가 의탁했던 자취가 위태로운 언덕배기 가파른 경사면에 고스란히 찍혀있었다. 나머지 한 지체인 머리가 찍혀야 할 자리엔 바로 예의 각시붓꽃이 머물러 있었으니 갈데없는 부복경배, 형태상 오체투지(五體投地)의 전형이 아닐 수 없었다. 난 그저 미지의 야생 붓꽃 이름 하나를 바르게 알고자 새벽행차의 수고를 아끼지 않았을 뿐, 이처럼 시작의 의미는 아주 단순했다. 하지만 지금 서 있는 자리에 찍혀 있는 일주일 시간의 자취란 숨조차 극단이 죽여 가며 부복함으로 시행하던 오체투지의 짙은 경배 흔적이었다. 오고감의 흔적을 자연 속에 남기거나, 숲과 생물체에게 불필요한 영향력을 가능한 줄이고자 하는 의지는 시종일관 변함없을지라도, 나로서 활동적 생물체이기에 어쩔 수 없이 남겨지고 마는 자취가 하필 저와 같은 경배의 짙은 그림자였던 것이다. “이제까지 난 도대체 무엇을 해 왔음이런가?” 지금 눈앞에 펼쳐진 태연한 생명체들이 알고 보니 모두가 다 경배 받아 마땅한 존체들이었고, 모르는 새 거행된 내 오체투지 제행배례는 지엄한 누군가의 명령에 의했을 뿐 결단코 알량한 나 자신의 의지일 순 없었다. 산은 산이고 물은 물이듯 꽃은 다만 생명이려니 그렇다, 실(實)로서 존재와 생명에게 오체투지 경배를 다할지언정, 허(虛)로서 일개 풀꽃의 무망한 이름에다 엎드려 부복의 깊은 예를 표할 바는 아니었다. 가슴 밑에서 뜨겁고 묵직한 불덩어리 한 뭉치 불끈 치올랐다. 숙연함 하나만 남긴 채 아득해지도록 심신이 자 의지를 모두 빼앗겨버린 지금의 비탈진 시공간, 얼핏 화엄세상의 한끝을 봤단 느낌이 들었고, 가슴의 뜨거운 열기는 위로 좀 더 치밀고 올라와 결국 감각과 표상의 끄트머리 눈시울에 닿았다. 법열(法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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