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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상 소나무와 보굿
  • 입상자명 : 조미정
  • 입상회차 : 13회
  • 소속 : 일반부
  • 장르 : 일반부 시·수필
엄마나무가 쓰러졌다. 비탈진 기슭에 서 있는 동안 허리 한 번 펴지 못해 비틀어지고 휘어진 나무다. 수백 년 동안 끄떡없더니 지난밤 태풍은 견디기 힘들었던 모양이다. 가지 하나는 생으로 찢기고 뿌리가 반쯤 뽑혀 옆으로 비스듬히 누웠다. 나무를 일으켜 지지대를 세우고 흙을 북돋워주면서도 소생 불가능한 것은 아닌지 안쓰럽기만 하다. 엄마나무는 등 굽은 적송이다. 튼실한 뿌리 밑에 엄마의 유해를 묻어 수목장을 지낸 이후로 '엄마나무'라고 이름 붙였다. 다시 태어나면 양지식물이 되고 싶다던 생전의 말이 유언이 되어 엄마는 한 그루의 소나무로 서게 되었다. 전등사의 왼쪽에서 삼랑성의 서문 방향으로 이어지는 산길을 올라가다 보면 엄마나무가 보인다. 산길 오른쪽 산등성에서 고즈넉한 절집을 내려다보고 있다. 사계절 푸른 낯빛의 엄마를 만날 수 있어 정족산은 올 때마다 정겹다. 근처는 붉은 수피를 드러내며 키가 쭉쭉 뻗은 소나무 군락이다. 군데군데 서어나무, 참나무들이 한데 어울려 있어 오래된 숲의 나무들이 뿜어내는 정기가 예사롭지 않다. 조금씩 터를 넓히는 참나무의 위세에 점령당할 뻔했지만 인간의 손이 닿아 잡목은 솎아지고 숲은 아직도 울울창창한 소나무가 우거져 있다. 얼마 전부터 수목장지로 지정되어 이곳의 소나무는 구리 명패를 달고 있는 경우가 많다. 비석 같다. 자연에서 태어나 자연으로 돌아가고 싶은 이들의 애틋한 마음이 한 조각 명패 속에 스며 있는 듯하다. 나무를 보면 한 사람의 이력이 묵묵히 말을 건네 온다. 거북등처럼 밑동에 금이 쩍쩍 벌어진 엄마나무는 굽어 있어 곡진한 느낌이 든다. 처음에 못마땅했던 마음도 볼수록 엄마를 닮은 듯해 위안이 된다. 소나무는 유난히 껍질이 두껍다. 자세히 들여다보면 겹겹의 나이테가 수피에도 있다. 일 년에 한 번씩 수피가 떨어져 나가는 다른 나무와 달리 껍질이 잘 벗겨지지 않아 해마다 표피 밑에 죽은 세포가 쌓이기 때문이다. 소나무의 겉껍질을 보굿이라고 한다. 누군가 떼어주기까지 떨어지지 않고 붙어 있다가 나무가 점점 자라 굵어지면 갈라 터져버리고 만다. 나무의 깊은 골을 따라 걸어 들어가니 뜻밖에도 엄마와 내 모습이 보인다. 날개가 달려 멀리까지 이동이 가능한 소나무 씨앗처럼 엄마는 남해 끝자락에서 대구로 이사를 왔다. 살림 밑천이라고는 몸뚱이밖에 없어 억척 같이 일만 하였다. 그 삶에는 고운 단풍이 들거나 이목을 끄는 꽃잎의 화려함도 없었다. 입을 것 못 입고 먹을 것 못 먹으며 가족들을 위해서 살았던 엄마에게 하나뿐인 딸은 속내를 드러내 보일 수 있는 친구 같았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곰살궂은 딸이 아니었다. 엄마의 애를 무던히도 태웠다. 남편이 잘못 서 준 빚보증으로 살던 집을 내어 준 데다 힘들게 한 사업마저 실패하자 나는 걸핏하면 죽겠다고 울부짖었다. 끝났다 싶으면 도미노처럼 또다시 찾아오는 시련으로 몸과 마음이 황폐해진 나에게 심한 우울증이 찾아온 것이다. 강가에 내 놓은 아이 같다며 엄마는 한밤중에도 내 집 대문 앞에서 서성였다. 나무 밑에 수북한 솔가리가 엄마의 속내라는 생각이 든다. 겉으로는 푸르러 보이지만 내 울화를 받아주느라 아무도 모르게 문드러지고 있었다. 빚을 갚느라 남은 돈 한 푼 없어 끼니마저 걱정해야 하는 내게 엄마는 자주 누런 돈 봉투를 내밀곤 하였다. 몇 년을 차곡차곡 부었던 곗돈을 깨거나 시원찮은 무릎으로 맞벌이인 동생네 아이를 업어주고 받은 용돈이었다. 누구네 집은 딸내미가 외국여행을 시켜주고 두툼한 용돈까지 쥐어준다는데 나는 늙은 엄마의 몇 푼 안 되는 쌈짓돈까지 얻어다 썼다. 누구보다 잘 살 것 같았던 딸이 엄마의 애물이 되고 만 것이다. 그때의 나는 보굿이었으리라. 고단한 엄마의 삶에 들러붙어 갈라지고 터지는 줄도 몰랐다. 견디기 힘들었던지 엄마는 뿌리가 뽑힌 채 쓰러졌다. 평소에도 자주 머리꼭지가 얼음장을 인 것 같다고 했었다. 뇌졸중의 징후였다. 쓰러지기 며칠 전에도 오른쪽 귀가 갑자기 안 들린다며 수줍은 목소리로 전화를 했는데도 그 말을 흘려들었다. 내 무릎에 얹힌 아픔만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엄마의 뇌졸중은 나 때문이라는 죄책감이 컸다. 평생 그 멍에를 지울 수 없었을 것 같았다. 하염없이 눈물이 쏟아졌다. 흙 한 줌 없는 바위틈에서도 자라는 소나무의 강인한 생명력을 닮아 엄마는 열흘 만에 의식이 돌아왔다. 나에게 기회를 주는 것만 같았다. 속죄를 하듯 병원으로의 출퇴근이 시작되었다. 간병인이 따로 있어도 뭐든 내 손으로 해야 직성이 풀렸다. 궁핍한 살림에 병원비를 보탤 수 없어 병수발로 대신하던 그 몇 년은 처음으로 내가 엄마에게 온전히 무언가를 해줄 수 있었던 시기였으리라. 재활치료실에서 기구에 몸을 의지한 채 서 있으면 얼굴이 벌겋게 달아올랐던 엄마 얼굴이 눈에 선하다. 쓰러질까봐 얼마나 용을 썼는지 야윈 두 다리는 바들바들 떨렸다. 아이처럼 눈물이 터질 것 같은 얼굴을 나는 애써 웃으며 쓰다듬어 주곤 했었다. 애틋하지 않은 엄마와 딸이 어디 있을까. 내 품에서 고이 잠든 엄마의 마지막 모습이 마음속에서 고운 물결을 그린다. 그토록 엄마에게서 떼어내고 싶었던 보굿은 쉽사리 잘 떨어지지 않았다. 소나무와 보굿은 엄마와 딸 같은 사이가 아니었을까. 가장 가까운 사이면서도 가장 만만하기도 해 때로는 서로의 가슴을 누구보다 아프게 할퀴기도 한다. 그래도 엄마와 딸은 미우나 고우나 서로 부둥켜안고 가는 숙명을 지녔나 보다. 세월의 더께를 입으면 보굿의 골은 점점 동글동글해진다. 솔잎처럼 뾰족하던 아픔도 세월의 무두질에 점점 무뎌가는 것이리라. 엄마에게 나도 그랬으면 좋겠다. 비탈을 밟고 서서 방금 몸을 일으켜 세운 엄마나무를 들여다본다. 가끔 나는 마음의 무늬가 딱딱해져 이유 없이 목 놓아 울 때가 있다. 미치도록 그리운 엄마 때문이다. 무조건 퍼주기만 하는 엄마로서의 삶만 살았지 기대고 사랑받는 여자로서의 삶을 살지 못하고 간 것이 통한으로 남아 있었다. 그럴 때마다 엄마나무는 낮은 목소리로 조곤조곤 말을 걸어온다. 인생마다 다 다른 크기와 무늬의 아름다움이 있으니 엄마나무의 행복한 모습만 보라고. 머리카락을 날리는 바람에 송진이 엉겨 붙은 가지가 솔잎을 흔든다. 상처투성이여도 저토록 청량한 공기를 뿜어내니 엄마나무는 머지않아 굳건하게 다시 뿌리를 내리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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