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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상 할아버지의 버섯
  • 입상자명 : 이 현 진 경기 고양예술고 1학년
  • 입상회차 : 10회
  • 소속 : 청소년부
  • 장르 : 청소년부 글쓰기

코끝으로 퍼지는 알싸한 버섯 향. 얼마 전 텔레비전에서 버섯에 관련된 교양 프로를 본 적이 있다. 리포터는 여러 종류의 버섯을 들고 향기로우면서 알싸한 향이라고 말했다. 촬영 팀은 임업 현장에 가서 버섯들을 직접 보고 만져보기도 하고, 버섯으로 만든 각종 음식들을 먹었다. 그들은 버섯을 말할 때마다 버섯 향에 행복하다는 듯이 말했다. 나는 문득 할아버지가 생각났다. 매년 할아버지 댁에 갈 때도 그런 냄새를 맡았던 것 같다.
버섯 농장을 하는 우리 할아버지는 세상에서 가장 좋은 것이 무엇이냐 여쭐 때마다 첫째는 우리고, 둘째가 버섯이라고 하셨다. 매년 할아버지를 뵐 때마다 할아버지의 이마에는 주름이 늘고, 피부에는 검버섯과 기미가 늘었다. 그러나 항상 그때마다 웃는 얼굴로 흐르는 땀을 닦으시고, 품 안에 버섯을 한 아름 안고 계셨다. 할아버지는 그 정도로 당신의 일을 사랑하셨다. 언젠가 한 번, 할아버지를 따라 버섯 재배지에 간 적이 있다. 나무마다 달라붙어 있는 버섯을 떼어내고 재배한 버섯은 따로 상자에 넣어 두었다. 할아버지는 나와 내 동생을 세워 두고 버섯의 향을 맡게 하셨다. 우리는 그 냄새를 오래 기억하려고 열심히 향을 맡았다. 그러고 나면 할아버지께서 눈을 감은 채 버섯의 향을 맡고 이름을 맞혀 보라고 하셨다. 나와 내 동생은 그 놀이를 할 때마다 번번이 할아버지께 졌다. 엉뚱한 이름을 말하거나 무엇인지 알 것 같은데, 하며 아리송해서 기껏해야 하나 정도 맞출 수 있었다. 그러나 할아버지는 척하면 척, 무슨 버섯이든 코끝에 가져다 대기만 하면 다 알아맞히셨다.
할아버지는 버섯뿐 아니라 동네에서도 소문난 박사님이셨다. 묻기만 하면 버섯은 물론이고, 각종 농업 지식부터 생활 지식까지 마치 백과사전처럼 줄줄이 꿰고 계셨다. 그래서 동네 사람들은 할아버지를 박사님이라고 불렀다. 동네 사람들은 틈만 나면 할아버지께 버섯에 대해서 조언을 듣거나, 그해 재배가 잘 되지 않으면 어찌된 영문인지 여쭈러 오곤 했다. 그럴 때마다 할아버지는 귀찮은 기색 하나 없이 그저 사람 좋은 웃음을 지으시며 많은 사람들을 다 상대해 주셨다. 할머니는 그런 할아버지를 보시며 당신 일 하기도 바쁘실 텐데, 저렇게 사람들 만나는 걸 좋아한다고 못마땅해 하셨다. 그러면 할아버지는 매번 내가 아는 것을 다른 사람에게 가르쳐 준다는 것은 복이지, 하고 웃어 넘기셨다.
어릴 적부터 할아버지께선 버섯만큼 인생과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는 것도 없다고 누차 말씀하셨다. 버섯에는 화려하고 아름다운 독버섯과 보기에는 예쁘지 않지만 건강에는 최고인 버섯들이 있다. 할아버지는 독버섯의 사진들을 보여주시며 세상에는 이렇게 겉모습으로 사람들을 현혹하는 것이 있다고 하셨다. 정말 독버섯은 예쁘고, 화려해서 침이 꼴깍 넘어갔었다.
그럼 할아버지께서 웃으시면서,
“거 봐라, 예쁘지? 그런데 이 독버섯처럼 사람에게 위험한 것도 없어. 까딱 사람을 죽일 수도 있는 것이 독버섯이지. 하지만 이 버섯들을 봐라. 영지버섯, 송로버섯들은 건강에 매우 좋은 식품이지만 겉모습은 독버섯보다 훨씬 못하지? 인생도 그런 거다. 겉모습에 현혹되어 판단을 잘못해선 안 돼.”
하고 말씀하셨다. 어렸을 때는 그 말이 무슨 뜻인지 잘 이해되지 않았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할아버지의 말씀을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할아버지의 말씀 덕에 언제나 겉보다 속을 중시했고, 외모보다 속내를 더 깊이 들여다보는 습관을 기를 수 있었다. 그것은 할아버지가 내게 주신 어떤 선물보다 더 값진 것이라고 생각한다. 할아버지의 말씀대로 그때 할아버지가 들려주신 버섯 이야기는 내 인생에서 중요한 표지판 역할을 해주었으니까.
언젠가 할머니께서 이런 말씀을 하신 적이 있다.
“매일 밖에 나가서 일만 하니까, 할아버지 피부가 점점 검게 탄다. 그뿐이냐 기미에 검버섯까지 생겨서 이제는 누가 봐도 일꾼 같아.”
젊은 시절 할아버지는 읍에서 최고 미남이셨다고 한다. 훤칠한 키와 단단한 체형 그리고 적당하게 그을린 구릿빛 피부. 사진으로 본 젊은 할아버지의 모습은 정말 영화배우 같으셨다. 그러나 지금 할아버지는 할머니 말씀대로 밤낮 고된 노동에 검게 타고 기미까지 난 피부를 가지고 계셨다. 손에는 온통 굳은살과 생채기. 할아버지께서 버섯과 보내신 30년의 세월 동안 그는 지금도 계속 늙어가는 중이었다. 그런 할아버지를 보면 나도, 우리 부모님도, 할머니도 다 가슴이 아파 이제는 일을 그만두시라고 만류한다. 그러나 할아버지께선 그럴 때마다 한사코 거부하시며 도리어 큰 소리를 내신다. 아빠, 엄마는 할아버지의 열정이 대단하시다고 고개를 저으시고 할머니는 한숨을 푹푹 쉬신다. 가족들을 걱정시키면서, 또 당신의 몸을 고되게 하시면서도 굳이 일을 하시려는 이유가 무엇일까?
할아버지는 당신께서 어릴 때부터 함께했던 버섯을 놓을 수가 없다고 하신다. 이 덕분에 내 아버지가 훌륭하게 자랄 수 있었고, 그 덕에 우리 같은 손녀딸들을 볼 수 있는 거라고 말씀하신다. 할아버지가 그렇게 세상의 근심과 걱정을 모두 날릴 듯 웃으시면 만류하던 우리도 두 손 두 발 다 들 수밖에 없다. 할머니 말씀대로 ‘저 양반처럼 세상에서 일을 가장 즐겁게 하는 사람’도 없을 테니까.
요새도 할아버지를 뵐 때마다 그의 얼굴엔 잔주름과 함께 검버섯이 하나씩 늘고 있다. 그러나 나는 이제 더 이상 그런 할아버지를 걱정하지 않는다. 검게 타고 피어나는 검버섯이 있을지라도 우리 할아버지는 누구보다 일을 즐겁게 하시고 열정적이실 테니까. 남들 눈에는 나이가 들어 보일지 모르겠다. 그러나 할아버지에게 그 검버섯은 평생을 버섯들과 함께 사신 그에게 자연이 주는 표창일 것이다.
앞으로도 할아버지는 지금처럼 환한 웃음으로 버섯밭에 서 계실 것 같다. 눈가에 잔주름을 접으시며 목에 수건을 건 채로, 손에 버섯을 한 아름 들고서, 언제까지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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