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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상 올빼미 새끼
  • 입상자명 : 이 재 영 경기 성남 양영중 3학년
  • 입상회차 : 10회
  • 소속 : 청소년부
  • 장르 : 청소년부 글쓰기

지난해 가을, 추석을 맞아 조상님 묘에 성묘하기 위해 충북 음성 큰집에 찾아갔습니다. 봄에 다녀가고 겨우 몇 달 지났을 뿐인데도 조상님 묘를 찾기가 어려울 만큼 풀이 많이, 그리고 높게 자라났습니다. 과수원에 주렁주렁한 사과들과 인삼밭, 고추밭을 지나 산길을 따라 한참을 들어가야 나오는 까닭에 어쩌다 1년 만에 찾아오면 길 찾기가 미로와도 같다는 것이 어른들 말씀입니다.
그래서 나뭇가지에 빨강 파랑 리본을 매달아 길잡이를 시키기도 한답니다. 어른들 뒤를 따라 꼬불꼬불 걸으니 마침내 숨바꼭질하듯 산소가 나왔습니다. 간단히 조상님께 인사를 드린 다음 바로 벌초작업이 시작되었습니다.
예초기 2대가 바삐 돌아가는 뒷전에 서서 낫을 든 어른들은 꼼꼼하게 봉분의 풀을 베어내고 저는 고무래를 들어 베어진 풀들을 긁어모아 한쪽에 쌓았습니다. 간단한 일 같았지만 막상 해보면 겨울철 쌓인 눈 치우기보다 더 힘들게만 느껴집니다. 조금하다가 너무 힘이 들어서 삼촌을 따라 밤을 주우러 근처 숲 속으로 갔습니다. 어느새 딱 벌어진 밤송이들이 바닥에 구르며 탐스런 밤톨을 드러내니 괜스레 욕심이 앞서 힘든 것도 잊고 열심히 밤을 주워 담았습니다.
두툼한 장갑을 꼈어도 거친 밤송이의 가시에 자꾸 손가락이 찔려 아팠지만 그래도 연신 양 발끝으로 밤송이를 벌리고 그 안의 밤톨들을 골라내는 재미는 마치 땅에 흘린 동전을 줍는 느낌으로 행복했습니다.
한참을 놀듯이 밤을 줍고 나니 저쪽에서 어른들이 부르는 소리가 들립니다. 미련이 남아서 밤알 몇 개 더 줍고 일어서는데 저만치 커다란 나무 밑에 뭔가가 꿈틀대며 작은 소리를 냅니다. 호기심이 이끄는 대로 가 보니 그건 작은 새였습니다. 아직 뽀얀 솜털도 제대로 벗지 못한 여린 새는 올빼미처럼 보였습니다. 너무 신기한 마음에 가만히 쓰다듬어 보니 동그란 눈동자의 새끼가 ‘바르르~’ 떨고 있습니다. 삼촌, 아빠와 함께 의논했지만 어떡해야 좋을지 모르겠습니다. 아마 어미가 근처에 있을 것 같아서 나무 위를 한참 살펴봤지만 아무 흔적도 보이지 않았습니다.
그냥 두면 죽을 것만 같아 차마 발을 떼지 못하는데 어른들은 어차피 죽을 운명이니 그냥 두고 가자고 재촉하십니다. 그러자 제 사촌 여동생이 불쌍해서 안 된다며 눈물까지 터트립니다. 하는 수 없이 저는 아빠 전화기를 빌려서 몇 군데 연락을 해 보았습니다.
먼저, 동물보호협회를 찾았습니다. 114에 문의해서 간신히 전화번호는 받았는데, 암만 신호가 가도 그곳은 전화를 받지 않습니다. 아마 거기도 휴일에는 쉬는 모양입니다. 동물들은 휴일에도 이렇게 보호를 기다리는데, 서운한 마음이 들었습니다. 두 번째로는 근처 도시(청주)에 있는 동물원으로 전화를 했습니다. 역시 114를 통해 전화를 걸었고 교환이 받은 다음 여러 사람에게 전화가 돌고 돈 다음에 새를 담당하는 어떤 분이 나왔습니다. 하지만 그 아저씨 답은 간단했습니다.
“지금 책임자가 쉬는 날이라 나도 어떻게 할 수가 없다. 또 우리는 지금 올빼미 새끼가 필요 없어.”
이쯤 되니 사촌 여동생이 올빼미 새끼를 집에 데리고 가서 키우겠다고 보챕니다. 하지만 아파트에서 동물을 키우는 것은 사람도 힘들지만, 동물에게는 사형선고나 다름없다고 아빠가 간곡히 달랬습니다. 아빠는 실제 어릴 때 시골에서 살면서 새매나 올빼미 같은 새끼들을 잡아다 키워본 적이 있는데, 제대로 크기 전에 죽어 버렸다고 합니다.
사람에게 삶의 방식이 있듯, 동물은 그 나름 숲에서의 생활방식이 있으니 그걸 방해하면 아무리 사랑을 주고 보살펴도 그저 독이 될 뿐이라는 사실을 아빤 이미 알고 계셨습니다.
하는 수 없이 한 번 더 전화를 해 보기로 했습니다. 우리가 자주 가보았고 믿음이 가는 경기도 용인의 에버랜드입니다. 그곳 사람들은 항상 친절하고 상냥하니까 우리 얘기를 가볍게 흘려듣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그곳도 한참 전화가 돌고 돌아서 마침내 담당자가 나왔습니다. 친절한 목소리의 그 담당자는 제 설명을 듣고 잠시 생각한 다음 이렇게 답했습니다.
“고객님, 동물을 아끼고 에버랜드를 사랑하는 마음으로 전화를 주셔서 대단히 감사합니다. 지금 말씀하신 올빼미 새끼는 아주 어린 녀석인 것 같습니다. 그 정도면 저희가 데리고 와서 잘 보살펴도 살아날 확률이 매우 낮습니다. 그리고 아쉽지만 올빼미 새끼는 저희 동물원의 희귀동물이 아니라서 그 먼 곳까지 저희가 그 녀석을 데리러 가기 어렵습니다. 혹시 고객님이 데리고 오신다면 저희가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다만, 말씀하신 상황으로 볼 때 그 녀석은 그 상태로 사람 손에서 하룻밤을 보내고 나면 탈진해서 죽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그러니 지금 곧바로 저희에게 데리고 오셔야 될 것 같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동물들은 나름의 세상과 운명이 있습니다. 그 올빼미 새끼는 그 나무 밑이 자기의 세계입니다. 아마도 그 새끼의 어미가 근처 어딘가에 있을 겁니다. 만약에 없다면 그건 새끼가 어떤 이유로 둥지에서 멀리 왔거나 어미에 의해 둥지 밖으로 밀려났다고 볼 수 있습니다. 어찌되었든 그 새끼의 운명은 그 나무 아래에서 결정되는 것이 맞는 것 같습니다. 고객님의 자연과 동물을 사랑하는 마음은 참 고맙지만, 사람이 해결할 수 없는 일들도 있습니다.”
어쨌든 답이 나왔습니다. 성묘는 끝났지만 가족들끼리 저녁식사 약속이 있어 밤늦게 서울로 돌아갈 텐데 어떻게 에버랜드에 가서 올빼미 새끼를 맡기겠습니까? 안타깝지만 우리는 그 여린 올빼미 새끼를 다시 원래 있던 나무 밑 그 자리에 가만히 내려놓았습니다. 그리고 걱정되는 마음에 돌과 나뭇가지를 모아 조그만 집을 지어 주었습니다.
그리고 돌아서 큰집으로 가는 길에 조카애는 연신 눈물을 훌쩍였고 괜히 나까지 마음이 무거웠습니다. 곧 숲에 어둠이 깔리고 나면 컴컴한 나무 밑에서 올빼미 새끼는 얼마나 외롭고 무서울까, 아무것도 먹지 못한 채 밤을 보낼 수 있을까? 그 어미는 정말 근처에 있을까? 등등 많은 생각이 머릿속을 오가는 동안 깜빡 잠이 들었습니다.
지난봄에는 시험 때문에 산소에 찾아가지 못하고 이번 추석 성묘를 위해 다시 조상님 묘에 갔을 때 내 시선은 자꾸 그 큰 나무 밑을 살폈습니다. 이미 1년이나 지난 일이니 무슨 흔적이 남아 있을 리 없는데도 자꾸 마음이 그쪽으로 갔습니다. 아무 변화가 없었습니다. 여전히 밤나무는 풍성한 밤들을 땅에 베풀었고 어른들은 열심히 벌초했습니다. 숲 속은 아무 일 없는 듯 고요합니다.
가녀린 바람결에 숲의 속삭임이 들리는 듯합니다. 그 올빼미 새끼는 어미가 데려갔다고 합니다. 그래서 건강하게 잘 자랐고 지금 이 숲 어딘가에 자기 둥지를 틀고 예쁘게 산다는 얘기를 들려주네요. 그러니 숲은 걱정하지 말고 사람들이나 잘하라고, 숲은 사람이 방해하지 않는 한 영원토록 평화로운 삶을 이어갈 거라고 제 등을 토닥이는 바람이 속삭이는 것만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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