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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상 산?
  • 입상자명 : 장 경 동 경기 고양예술고 2학년
  • 입상회차 : 10회
  • 소속 : 청소년부
  • 장르 : 청소년부 글쓰기

앞으로 1km 남았다. 나는 숨이 차서 헉헉거렸다. 내가 표지판을 붙잡고 숨을 고를 동안 아빠는 멀리서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아빠는 손짓으로 나의 걸음을 재촉했다.
나는 산에 오르는 것이 제일 불만이었다. 습기 가득한 냄새와 나를 보면 달려드는 벌레들과는 마주치기 싫었다. 벌이라면 다른 벌도 많지 않은가. 회초리로 종아리를 때리거나, 반성문을 쓰게 하거나 학교로 치면 교내봉사나 훈계, 뭐 이런 것들 말이다. 하지만 아빠는 항상 산을 오르는 것으로 내게 벌을 주었다.
아빠는 산악동호회 회원이었다.
남자는 힘이다. 아빠는 입버릇처럼 말하곤 했다. 아빠는 자신의 입버릇처럼 항상 힘이 넘쳤다. 나는 아빠의 힘이 넘치는 발걸음에 맞춰 걸었다. 정상에 올라서야 나는 겨우 숨을 돌릴 수 있었다. 불어오는 바람이 머리칼을 간질였다. 그래도 오르는 게 힘들긴 했어도 정상에 서면 상쾌했다. 이번에는 집에 늦게 들어온 것 때문에 산에 오른 것이었다. 나의 통금시간은 밤 10시였다.
아빠는 어렸을 적 ‘학교 짱’이었다. 내가 밥을 먹을 때도, 티브이를 보고 있을 때도 아빠는 자신의 어렸을 적 이야기를 이야기해 주었다. 공부보단 싸움을 더 열심히 했고, 학교보단 뒷골목을 더 들락거렸고, 연필보다 담배를 더 많이 쥐었다고 했다. 아빠는 고등학교를 졸업하자마자 덜컥 결혼을 했고, 고등학생 때 아이를 낳았던 엄마는 행방이 묘연해졌다.
그리고 아빠는 이곳저곳 일을 구하며 혼자서 힘들게 나를 키웠다고 했다. 그래서 아빠는 내가 자신처럼 되지 않길 바랐다. 난 쉽게 이해되지 않는 소리였지만 집에 늦게 들어오는 건 아빠의 입장에선 당연히 벌을 받아야 할 일이었다.
나는 숨을 크게 들이쉬었다. 다시 내려갈 일만 생각하면 한숨부터 나왔다. 아빠는 다시 “남자는 힘이다”를 외치며 앉아 있는 나를 일으켜 세웠다. 우리는 순식간에 산을 내려왔다. 수많은 벌레들이 내게 달라붙었다. 나는 속으로 다시는 산에 오르지 않으리라 다짐했다. 아빠를 따라서 많은 산을 올라보았지만 오를 때마다 힘들었고 짜증났다.
아빠와 내가 제일 많이 오른 곳은 우리 집 뒤편에 자리 잡은 동남산이었다. 특히 동남산에서 깔딱고개를 넘어갈 때는 숨이 깔딱 넘어갈 정도였다. 벌레들도 그 고개에서 제일 많이 달라붙었다.
그 외에도 가지산, 지리산, 멀리는 설악산에도 올랐다. 유명한 산들은 아빠 동호회와 함께 간 것이었다. 처음 동호회에 아빠와 내가 함께 나갔을 때 사람들은 내게 조카냐고 물었다. 내가 아들이라고 하자 모두 깜짝 놀라며 나와 아빠를 번갈아가며 보았다. 아빠는 쑥스러웠는지 머리를 긁적였다. 나는 그저 떨떠름하게 서 있었다. 그때는 떨어진 성적 때문에 산에 오르게 된 것이었다.
그리고 평온할 줄만 알았다. 떨어진 성적도 다시 올랐고, 집에도 꼬박꼬박 잘 들어왔다. 담배는 손도 대지 않았고 더욱이 싸움은 내 체질이 아니었다. 문제는 다른 곳에 있었다.
나는 여자 친구를 집까지 데려다주는 길에 아빠와 마주쳤다. 나는 그 자리에서 아빠에게 끌려 집으로 들어왔다. 아빠는 단호했다. 헤어지라고 했다. 아빠는 여자 친구에게까지 전화를 해서 친구로 남아달라는 부탁을 했다.
며칠 뒤, 내 여자 친구는 미안하다며 친구로 남자고 했다. 나는 그녀 앞에서 어색하게 웃었다. 그리고 분노를 삭이며 집으로 들어왔다. 너무나도 화창한 날이었다.
아빠는 내가 들어오자마자 벌로 산에 올라야 한다고 말했다. 아빠의 목소리가 얄밉게 들렸다. 순간 화가 치밀었지만, 나는 단호하
게 말했다. 산에 가지 않을 거예요. 앞으로도 계속! 그리고 문을 쾅 닫고 방으로 들어왔다. 밖에선 여전히 티브이 소리가 들려왔다. 나보다 더 불량한 학창시절을 보낸 아빠가 내게 이러는 게 이해가 되지 않았다. 나는 아빠와 다르다고 생각했다.
나는 여자 친구에게 전화를 하고 싶었지만 휴대폰만 만지작거렸다. 나는 여자 친구에게 전화 대신 문자를 보냈다. 아빠 때문에 미안하다는 내용이었다. 곧바로 여자 친구에게서 전화가 왔다.
“이 철부지야! 네 아버지께서 그때 뭐라고 하셨는지 아니? 크고 나서 후회하는 아들 만들고 싶지 않다고, 지금은 공부 열심히 시켜서 누구에게도 기죽지 않는 떳떳한 아들로 만들고 싶다고 하셨어.”
이제야 알 것 같았다. 나는 전화를 끊고 내 방을 나왔다. 집을 둘러봐도 아빠는 없었다. 나는 문득 산을 떠올렸다. 나는 동남산으로 걸음을 옮겼다.
날이 화창했다. 나는 열심히 산을 올랐다. 답답하고 짜증나게만 느껴졌던 습기 가득한 냄새도, 달려드는 벌레도 아무렇지 않았다. 그것들 뒤로 새순이 돋는 냄새가 느껴졌고, 두 날개를 펄럭이며 요요하게 날아가는 나비도 보였기 때문이었다.
깔딱고개도 더 이상 숨이 차지 않았다. 나무들 사이로 햇빛이 빽빽하게 들어섰다.
그 앞으로 정상에 떳떳하게 올라 있는 아빠의 모습이 희미하게 보였다.
나는 고개를 들고 더욱 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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