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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선 외할아버지와 만월산 오르기
  • 입상자명 : 이 승 현 인천 상인천여중 2학년
  • 입상회차 : 9회
  • 소속 : 청소년부
  • 장르 : 청소년부 글쓰기

겨우내 잠들어 있던 새순이 기지개를 켜고 돋아나던 지난 봄, 동생과 나는 몸이 불편하신 외할아버지의 손을 잡아드리며 일주일에 한 번씩 집 근처에 있는 만월산에 오른 적이 있었다.
처음 외할아버지의 손을 잡고 만월산을 오를 때 나는 마지못해 용돈을 더 주겠다는 엄마의 부탁에 어쩔 수 없이 맘에도 없는 산을 올라가야 했었다.
평소 당뇨병을 앓으셨던 외할아버지께서 병세가 악화되어서 병원에 입원을 하셨는데, 설상가상으로 외할아버지의 병간호를 하셨던 외할머니께서 동네 미장원에 머리를 자르러 가셨다가 미끄러져 넘어지시는 바람에 무릎뼈가 부러지는 사고를 당하셔서 뜻하지 않게 수술을 받게 되셨다. 외할머니의 사고로 외할아버지가 퇴원을 하게 되었고 당분간 우리 집에 계시게 되었다.
우리 집에 계시는 동안 외할아버지가 큰 무리 없이 운동을 하실 수 있는 곳이 어디 있을까, 가족 모두가 생각을 하게 되었고, 그러다가 집 근처에서 가까운 나무가 많고 공기도 맑고, 경사가 완만한 만월산을 선택하게 된 것이었다.
평일에는 엄마가 외할아버지를 모시고 만월산까지 하루에 한 번씩 산책을 다녀오셨고, 토요일에는 아빠가 외할아버지와 함께 산을 오르시고, 일요일에는 나와 동생이 외할아버지의 손을 잡고 만월산을 오르게 되었다.
처음 산을 오르던 날, 동생과 나는 투덜투덜 짜증을 냈었다. 몸이 불편하신 외할아버지와 함께 만월산까지 가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니었고, 이제 막 새순이 돋아난 나무 사이를 걷는 것도 그렇고…. 아무튼 막막한 일이 한두 가지가 아닐 거란 생각이 먼저 앞서서 자꾸만 짜증이 몰려왔다. 게다가 오래간만에 산을 오르면서 다리도 아프고 산등성이를 오르다보니 얼굴이 금세 붉게 열이 차오르며 숨이 가빠졌다. 할아버지는 내 손을 잡고 조심스럽게 산을 오르셨다. 나는 빨리 산을 올라갔다 내려오고 싶은데 외할아버지는 산에서 나는 흙냄새와 나무냄새를 맡으시며 천천히 아주 느리게 걸음을 옮겨 놓으셨다. 나뭇잎 사이로 이따금씩 시원한 바람이 스쳐 지나며 ‘헉헉!’ 숨 차는 소리를 내는 동생과 나, 그리고 조용히 산을 오르시는 할아버지의 이마에 맺혀 있는 땀방울을 닦아주었다.
“할아버지, 빨리 빨리 올라갔다 내려오면 안 돼요?”
산을 오르는 동안 내가 짜증을 내며 재촉을 하면, 할아버지는 투덜거리는 손녀가 미우실 법도 한데 화 한 번 안 내시고 오히려 빙그레 웃어주시며,
“저만큼만 가서 되돌아 내려가자.” 하셨다.
“할아버지, 이제 다 왔으니 다시 내려가면 되죠?”
나의 재촉에 외할아버지는 그저 고개만 끄덕끄덕하셨다.
어느새 나와 동생은 외할아버지의 손을 잡고 만월산을 내려와 집으로 향했다. 집에 도착하자마자 고자질쟁이 동생이 외할아버지에 대한 나의 불친절한 행동을 엄마에게 다 일러바쳤다. 나는 엄마, 아빠의 심한 꾸지람에 서러워 눈물을 뚝뚝 떨어뜨리며 울었다. 옆에서 지켜보시던 외할아버지는 엄마, 아빠께 야단을 맞은 내게 미안해하시며 속상해하셨다.
“아버진, 나이 어린 손녀에게 뭐가 미안해요? 산에 오르는 것이 아버지 건강에 얼마나 많은 도움이 되는지 잘 아시면서. 이제부터는 저랑 산에 가요. 나쁜 계집애, 일주일에 한 번 산에 가는 게 뭐가 힘들다고…. 할아버지 모시고 산에 오르다보면 너에게 운동도 되고 좋은 공기도 마시고 일석이조인데 그거 잠깐하기가 뭐가 그리 힘들다고.”
엄마는 나의 행동에 많이 속상해하시기도 하고 서운해하시며 야단을 치셨다. 잔뜩 부은 얼굴로 숙제를 하고 있는데 외할아버지께서 내 방에 들어오셨다. “승현아, 할아버지가 미안하구나. 할아버지는 너희엄마, 아빠랑 산에 오르는 것도 좋지만 착한 손녀들이 할아버지랑 손잡고 산에 올라가 주는 게 정말 좋았단다. 할아버지가 너희엄마랑 매일 산에 오르며 느낀 건데 병원에 있을 때보다 몸도 한결 가벼워지고 생각도 맑아지는 걸 느꼈단다. 우리 승현이도 할아버지랑 산에 오르다보면 지금보다 더 건강해지고 흙냄새, 나무냄새 한 번씩 맡아보며 하늘도 한 번씩 보면 참 좋지 않겠니?”
나는 외할아버지의 말씀에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처음 산에 외할아버지와 함께 오르며 투덜거렸던 나의 행동들이 부끄러워졌다. 이 날 이후, 나는 우리 가족이 정한 약속대로 외할아버지와 일주일에 한 번씩 만월산을 오르게 되었고, 산을 오를 때마다 외할아버지께 빨리 산을 오르자며 재촉하지 않았다. 나도 외할아버지처럼 산에 오르는 즐거움을 찾으려고 노력을 하였다. 어느새 나무냄새와 흙냄새가 상쾌하게 느껴졌으며, 봄기운이 익어갈수록 나무의 새순이 짙은 초록으로 물들어가는 것이 새롭게 느껴지기까지 하였다. 처음에는 이 곳 저 곳에서 지저귀는 새소리가 시끄럽다고 생각했지만, 이제는 산에 오르는 횟수가 늘어날수록 산 속에 사는 새들의 지저귐 소리와 풀벌레 소리들이 더 정겹게 귓가를 맴돌기 시작하였다. 외할아버지도 어느새 많이 건강해지셔서 산을 오르는 걸음속도가 처음보다 많이 빨라지셨다. 그리고 매일 오르는 산길이 많이 익숙해지셔서 그런지 나뭇잎이 울창해진 산길을 잘 오르셨다.
5월이 되자, 외할아버지께서 다시 외할아버지댁으로 돌아가시게 되었다.
외할아버지는 우리 집에 처음 오셨을 때보다 한결 건강해진 모습이셨고 이제는 만월산을 혼자서도 잘 다녀오시게 되었다.
할아버지 덕분에 학교와 집밖에 모르던 나도 만월산을 오르며 나무냄새와 흙냄새가 무척이나 향긋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산 속의 숲이 주는 여유로운 마음이 외할아버지의 건강에 많은 도움이 되었고 또 맑고 깨끗한 자연 속의 공기가 짜증나는 나의 마음을 순하게 만들어 주어서 외할아버지께 착한 손녀가 되어드릴 수 있었다는 것에 마음이 뿌듯해졌다. 내가 살고 있는 고장에 있는 산, 가까이 있으면서도 멀게만 느껴졌던 만월산을 오르며 울창한 나무가 주는 기운이 우리 인간에게 값비싼 보석들보다 몇 천 배나 소중하다는 것을 알게 된 좋은 경험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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