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산복에는
주머니가 여러 개 달려있다
일주일분의 고민과
일주일분의 집착과
평소 털어내지 못한 절망의 부스러기들이
조금씩 쌓여 주머니가 불룩해질 때쯤
나는 주저 없이 산으로 간다
비 그친 산에는 세탁된 햇살 조각들이
퍼즐처럼 널려있고
투명한 새소리는 물방울을 뚫고 날아들었다
은사시나무 잎사귀를 뒤집던 바람과
세상의 한 귀퉁이를 잡아보려는
저 가느다란 덩굴손에
나는 어느새 주鍛玖?모두 털려버렸다
바위 위에 좌판 차린
등 굽은 노파가 말아주는 국수처럼
붉은 노을이 주르륵 흘러내릴 때
무거운 시간들을 벗어버린
등산객의 뒷모습이 보인다
빈 것이 아름다워지는 저녁
나는 주머니가 몽땅 털려 행복하다
모든 것을 받아준 산은
어둠만 꿀꺽 꿀꺽 삼키고
계곡물은 콸콸콸 소리를 높여
참았던 속내를 허옇게 게워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