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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상 숲으로의 망명(亡命)
  • 입상자명 : 임종훈
  • 입상회차 : 13회
  • 소속 : 일반부
  • 장르 : 일반부 시·수필
얼마 전 집 인근의 도서관에서 책을 고르던 중 우연히 숲에 관해 적어놓은 책을 발견했다. 일본인이 저자인 이 책을 처음에는 대충 훑어보고 말려다가 나중에는 자리에 앉아 정독을 하게 되었다. 1960년대 암(癌)에 걸려 시한부 인생을 선고받았던 저자가 자포자기 상태로 살다가 삶을 정리한다는 생각으로 숲 속에 들었는데 그곳에서 생활하며 기적적으로 건강을 회복한 것은 물론이고 세간에서는 보이지 않던 삶의 많은 것들을 숲에서 보게 되었다는, 이를테면 숲을 통해 깨달은 삶의 성찰(省察)을 기록한 책이었다. 그런 성찰을 토대로 저자는 1990년대부터 일본 홋카이도의 숲에 ‘숲 속 어린이 마을’을 만들어 아이들에게 숲의 신비함과 생명을 전하며 팔십 중반에 이른 지금까지 건강하게 살고 있다고 한다. 특히, 책을 읽으며 저자의 말에 깊이 공감했던 것은 인류가 새로운 시대를 맞이하기 위해선 ‘숲’ 사상을 추구해야 한다고 강조한 부분이었다. 자연에 존재하는 모든 생명에는 신성함이 깃들어 있어 사람만이 아니라 모든 생명이 평등하여 쓸모없고 하찮은 생명은 하나도 없음을 알아야 한다는 것이다. 숲은 단순히 나무가 많은 곳이 아니라 나무와 물과 흙 사이에서 뭇 생명들이 스스로 빛을 발하며 자라는 곳이 숲이며 인간에게 내일이 있다고 한다면 그것은 숲과 인간이 서로 아끼고 보듬는 새로운 사랑의 관계를 맺는 것밖에 다른 길이 없다는 것을 숲이 가르쳐 주었다고 역설하고 있다. 책을 읽고 난 후 이전부터 그런 생각을 하고는 있었지만 오직 ‘빠름’만을 추구하는 현대인들에게 숲은, 그 안에 든 모두에게 호흡을 가다듬고 삶을 뒤돌아보는 여유와 넉넉한 포용의 자세를 갖게 함으로써 새로운 삶의 길을 제시하는 참으로 고마운 곳이라는 것을 다시금 깨닫게 되었다. 숲은 고요해 보이지만 수많은 생명들이 조화를 이루며 살아가고 있는 터전으로 그들의 푸른 공화국(共和國)이다. 그 어떤 정체(政體)나 이념(理念) 따위 필요치 않고 다만, 그곳에 속하고자 하는 모든 것들을 조건 없이 받아들여 포용하는 나라이다. 그리하여 인간은 그곳에 들어 깊은 날숨과 들숨으로 그곳에 충만한 생기(生氣)를 폐부 가득 받아들이기만 하면 되는 것이다. 광합성(光合成)이 때로는 식물만이 아니라 인간에게도 필요하던 것은 복잡하기 이를 데 없는 일상들에 쫓겨 무작정 내달리다 생긴 삶의 지독한 관성(慣性)을 잠깐만이라도 멈추거나 내려놓고 들끓는 내부를 고요히 안정시켜야 하는데 숲에 들어 누구나 느낄 수 있는 안식(安息)과 평온(平穩)이 숲이 인간에게 베푸는 빛나는 광합성이다. 십 년 후를 생각하면 자식을 교육시키고 이십 년 후를 생각하면 나무를 심어라,라고 하는 말이 있다. 교육(敎育)이든 조림(造林)이든 모두가 당대가 아닌 미래를 위한 투자라는 말일 것이다. ‘내일 지구의 종말이 올지라도 오늘 한 그루의 사과나무를 심겠다.’라고 말한 스피노자의 격언 또한, 그와 일맥상통한 말이 될 것인데 숲이 인간에게 주는 혜택을 온전히 누리기 위해서는 그만큼 숲을 아끼고 가꾸는 인간의 관심과 노력이 반드시 필요하다. 숲이 인간에게 베푼 행복만큼 우리는 숲에게 빚을 진 것이니 모름지기 그를 갚기 위해서는 당대의 숲을 잘 보존하는 일뿐만 아니라 후대를 위해서 숲을 더 울울하게 가꾸는 노력을 지속적으로 해 나가야 하는 것이다. 상상하기조차 싫지만 숲이 없는 불모의 지구는 그 어떤 것도 생존할 수 없는 황무지(荒蕪地)에 지나지 않을 것이다. 최초로 지구를 벗어나 우주에서 지구를 내려다본 가가린(Gagarin. Y. A.)이 지구를 너무도 아름다운 ‘푸른 별’이라고 했던 것은 인간이 이룩한 거대한 문명 때문이 아니라 태곳적부터 모든 생명들을 품고 키워왔던 모체(母體)로서의 푸른 숲이 있어서이다. 그에 비해 지구에서 비교적 가까운 거리에 위치한 행성인 금성이나 화성이 너무도 황량하던 것은 숲이 없어서일 것이며 그리 인해 그 무엇도 살 수 없는 한낱 불임(不姙)의 행성에 지나지 않는 것이니 숲은 뭇 생명들의 모태(母胎)이며 또한, 그들을 낳아 온전하게 삶을 영위케 하는 근원임이 너무도 자명하다. 최근 미국에서 자주 발생하고 있는 대형 산불로 수많은 나무들이 불타고 푸른 숲이 있단 자리가 검은 재만 남은 황량하기 이를 데 없는 곳이 되었다는 기사나 지구의 허파라고 부르는 열대림들이 눈앞의 이익이나 필요에 의해 함부로 베어져 숲이 점점 줄어들고 있다는 소식을 접할 때마다 마음이 답답하다 못해 섬뜩하기까지 했다. 인간의 부주의나 탐욕이 그 모태나 근원으로서의 숲을 망각하는 어리석음을 범해 종국에는 생존 자체를 위협하리라는 불길한 예감이 들었기 때문이다. 내 살고 있는 곳에서의 일이 아니라고 여겨 방관하거나 무관심한 것은 숲의 속성을 전혀 알지 못하는 너무도 어리석은 생각이다. 비록 세계 각국이 인위적으로 선을 그어 국경을 삼기는 하지만 지구가 둘이 아니고 하나이듯 숲은 어디에 있든 지구의 숲이며 모든 생명들의 숲이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숲을 훼손하는 것은 단순히 몇 그루의 나무를 베어내는 것이 아니라 생명의 근원을 심각하게 훼손하는 것이며 미래를 기약할 수 없게 만드는 것이다. 올봄 즈음에 장성에 위치한 축령산의 편백나무 숲을 찾아갔다. 숲을 다녀온 여러 지인들로부터 꼭 가볼 만한 곳이라는 말을 여러 차례 들었지만 제법 멀리 떨어진 곳이라 차일피일 미루다가 찾아간 것이었다. 그로부터 시간이 많이 지났음에도 그때 숲을 거닐며 얻은 치유(治癒)의 기운이 여전한 것만 같은 것은 키 큰 편백나무며 삼나무가 마치 거인처럼 일정한 간격으로 시립해 있는 숲길을 그저 말없이 걷는 것만으로도 무척이나 황홀하고 행복했었기 때문이다. 건강 숲길, 산소 숲길, 하늘 숲길, 그리고 숲내음 숲길 등으로 망명되어진 길을 바람과 함께 걷다가 나무의 진한 향(香)이 느껴질 때마다 걸음을 멈추고 서서 가슴 깊이 그를 들여 마시면 온몸 구석구석에서 푸른 새 잎이 돋아나는 것만 같아 흡사 나도 숲에 속한 한 그루 나무라는 착각마저 들었다. 숲은 축복(祝福)은 그처럼 세사(世事)에 지친 심신을 제 안에 품어 맑고 푸르게 물들임으로써 새 목숨으로 거듭 태어나게 하는 것이라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아울러 그곳에서 더욱 놀라웠던 것은 숲이 한 독림가(篤林家)의 눈물겨운 노력으로 조성되었다는 사실이었다. ‘미래를 위해 보존해야 할 아름다운 숲’에 선정되기도 했다는 숲은 1950년대 중반부터 이십여 년을 나무를 심고 가꾼 한 사람의 땀과 눈물의 결실이라는 것에 무한한 존경심이 들었고 특히나 가뭄이 극심했던 때에 나무가 말라죽는 것을 막기 위해 이십여 리를 물지게를 지고 산을 오르내리며 물을 주어 살렸다는 그 열정에는 경외심마저 일었다. 나무를 심고 가꾸는 일이 속성으로 이루어질 일도 아니고 당장 돈이 되는 일이 아님에도 그처럼 오랜 세월을 인내하며 한 그루, 두 그루 나무를 심고 가꾸어 명품 숲을 조성한 것은 나무를 사랑하는 마음 때문이기도 했겠지만 숲이 얼마나 소중한 자산인지를 미리부터 안 혜안(慧眼)이 없었다면 엄두조차 내기 어려웠을 것이다. 오래전에 작고하셔서 노고에 직접 감사를 드릴 수는 없는 일이지만 자신의 이름을 붙인 한 그루 나무로 숲의 일부가 된 그분의 숭고한 뜻을 되살리는 길은 숲을 잘 보존하는 것은 말할 것도 없고 그를 더 잘 가꾸어 후대에 온전하게 물려주는 일임을 절감하게 되었다. 사람에 의해 만들어진 숲이 오랜 시간이 흐른 지금에서는 그 안에 든 많은 생명들을 살리는 숲이 되었으니 나무를 심고 가꾸는 일은 그 자체로 당장의 이익을 쫓기에 급급한 현 세태에 크나큰 시사점을 주는 것은 물론이고 아직 태어나지도 않은 후대에게 전할 소중한 유산이 될 것이라는 사실에 마음 깊은 곳에서부터 뿌듯한 느낌이 일었다. 축복의 세례처럼 쏟아지는 청량(淸凉)한 공기를 한껏 숨 쉬며 내 지금 걷고 있는 발자국 위에 또 다른 발자국들이 더해지는 것을 상상하는 것은 고맙게도 숲이 거기에 있기 때문이다. 어느 숲이든 그 안에 들기만 하면 머릿속이 박하처럼 맑아지고 저잣거리에서의 모난 마음과 생각들이 저도 모르게 닳아 바닷가 몽돌처럼 동글동글해진다. 그것은 그 무엇도 배척하지 않고 받아들이는 숲의 무한한 포용과 정화(淨化)의 신통력이 탁한 마음의 눈을 씻어 삶을 보다 긍정적으로 보게 만드는 것이니 숲은, 그 어떤 불치의 병도 능히 다스려 낫게 하는 명의(名醫)이자 경배를 드려 마땅한 치유(治癒)의 성소(聖所)이다. 지도를 펼치자 초록의 숲들이 일제히 눈앞에 울울하게 펼쳐진다. 그 어떤 혁명에의 기대도, 성공과 실패 같은 세속의 셈법도 푸른 공화국인 숲에서는 한낱 구차한 것에 지나지 않는다. 오직 마음을 열고 언제든 그곳, 숲에 가면 숲은, 우리 모두의 깊고 푸른 망명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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