홈으로
  • 프린트하기
금상 길 위에 놓인 징검다리 - 지리산둘레길 중태안내소
  • 입상자명 : 이진숙
  • 입상회차 : 13회
  • 소속 : 일반부
  • 장르 : 일반부 시·수필
“저희들 신고하러 왔습니다!” 등에 색색의 배낭을 메고 양손에 스틱을 든 남녀 한 무리가 중태안내소 안으로 우르르 들어오며 장난스럽게 큰 소리로 외친다. “어머! 여기가 실명제 안내소라는 걸 알고 계시네요?” “그럼요. 그냥 지나치면 큰일 난다고 인터넷에 소문이 났는걸요!” 산청군 시천면 중태마을에 지리산둘레길안내소가 있다. 일곱 평 남짓 될까, 컨테이너 건물로 지어진 중태안내소는 이제 이 마을의 명소가 돼 버렸다. 중태마을 어르신들도 중태안내소를 그냥 지나치지 않는다. 논에 물 보러 가다가 빼꼼 들여다보고, 덕산장에 다녀오다가도 불쑥 들어와 한마디씩 나누고 간다. 마을에 어떤 일이 생겼고, 누구네 집에는 손님이 다녀가고……, 온 동네 사정이 속주머니 까뒤집히듯 드러나고야 만다. 중태마을은 산청군 사리와 하동군 위태 구간 사이에 위치하고 있다. 진주에서 중산리를 향해 달리다가 슬그머니 옆길로 빠지면 좁은 논길이 나오고, 휘돌아진 논길을 따라 4,5킬로미터 더 들어가면 도시 사람들에게 생소한 중태마을을 만난다. 한자로 가운데 중, 탯자리 태를 써서 어미의 자궁에 아이가 들어앉은 마을 형세를 그대로 옮겼다고도 한다. 중태마을은 지리산 자락에 위치한 많고 많은 마을들 중 하나고, 이 마을사람들은 곶감과 산나물, 약초를 채취해서 어머니의 산 지리산에 기대 살아간다. 이태 전, 고요하기만 한 중태마을에 지리산둘레길이 연결되었다. 그리고 마을 정자나무 앞에 떡하니 둘레길안내소가 생겨났다. 안내소는 고요하던 이 마을에 이방인 같은 존재로 조심스레 문을 열었다. 으레 그러하듯 마을사람들은 이방인을 몹시 경계하면서도 한편 궁금해 했다. 중태안내소는 농작물 보호와 이용객의 안전을 위해 지리산둘레길 최초 실명제 부스로 운영됐다. 중태마을을 지나는 사람들은 누구라도 반드시 방명록을 작성하도록 한 것이다. 이름과 연락처, 그리고 주소가 공개되다 보니 개인정보 보호차원에서 이를 꺼려하거나 실명제 부스 운영 취지를 오해한 일부 이용객들도 있다. 하지만 대부분 흔쾌히 방명록을 작성하고 따뜻한 한마디를 남기고 간다. “수동댁 때매 풀들이 못산다 한다. 풀들도 쪼매 살자!” 뫼동댁이 감자를 삶아 함지박에 담아 나온다. 수동댁은 한낮 땡볕도 아랑곳 않고 저 아래 콩밭 고랑에 엎드려 있다. 울산댁이 감자를 먹자고 암만 불러대도 수동댁은 꿈쩍을 안 하다. 흥 많고 노래 잘하는 꿀벌할아버지는 벌써부터 평상 가장자리에 걸터앉아 유행가 한 가락 뽑기 시작한다. 여름날 중태안내소와 마주한 느티나무 아래서 흔히 보는 풍경이다. 봄에는 산나물 채취하느라 바쁘고 가을부터 겨우내 곶감을 따서 깎고 말리느라 바쁘다 보니 유일하게 여유 부리는 시간이 여름 한철이다. 백여 년 가까운 느티나무 아래 평상에서 마을 어르신들은 더위를 식히고 앉았다가 점심때가 되면 커다란 양푼에 나물과 밥을 비벼 숟가락을 부딪혀 가며 맛나게 식사를 한다. 찐 감자, 옥수수, 부침개가 나오는 날도 많다. 하루하루 끼니를 잇기 고단했고 전쟁의 상처로 얼룩진 지난 시절이 녹음기처럼 되풀이되기도 했다. 불과 50, 60여 년이 흐른 것뿐인데, 몇 백 년 세월이 지난 것처럼 아득하게 들렸다. 중태마을을 지나는 둘레길 이용객들은 안내소에 들르기 위해 정자나무 평상에 배낭을 내려놓고 땀을 식히며 쉬다가 간다. 그러면서 자연스레 마을 어르신들과 인사하고 얘기를 나눈다. 단 몇 분 사이 이들은 오래 알고 지낸 듯 스스럼없는 사이가 되어 시간 가는 줄 몰랐다. 야무진 살림꾼들은 마을 어르신들이 채취해서 말린 산나물과 곶감을 사가거나 전화번호를 적어가서 택배로 신청하기도 했다. 이용객이 점점 늘어나자 몇몇 집은 안 쓰는 빈 방을 민박으로 활용해서 적으나마 수익을 올렸다. 몇 푼 받는 돈보다는 사람을 만나고 정을 나누는 일이 더 즐거워 보였다. 길을 걷는 이들이 하나같이 즐겁고 행복해 보이는 건 아니다. 몸이 안 좋거나 실직을 하거니, 치유하기 힘든 마음의 상처를 받은 이들도 지리산둘레길을 찾아온다. 사람에게서는 위로 받지 못한 것을 자연에서 찾으려 그들은 길을 걷고 또 걸었다. “묻지 마 폭행을 저지르는 심정을 알 것 같았어요. 만약 이 길을 걷지 않았다면 어쩌면 저도 그런 끔찍한 행동으로 분을 풀었을지 모릅니다.” 지난해 늦여름 40대 중후반쯤 돼 보이는 한 남자가 방명록에 남긴 사연이다. 배낭 주머니에 빈 막걸리병 하나 끼우고서 묵묵히 길을 재촉하던 남자의 뒷모습을 잊을 수가 없다. 훗날 노년을 보내며 남은 삶을 맘 편히 마무리할 곳을 알아보려 다니는 이들도 있다. 치열한 경쟁구도 속에서 숨 가쁘게 살아왔지만 결국 너나 할 것 없이 자연으로 돌아가야 하는 이치를 그들을 보며 알 수 있었다. 지리산자락에 흩어진 마을과 마을을 잇는 길이 지리산둘레길이라면 중태안내소는 그 길 위에 놓인 징검다리다. 그리하여 길을 걷는 이들에게 휴식을 주고 길에 대한 정보를 나눠 주며 계속해서 걸어갈 힘을 실어준다. 그뿐인가, 마을 어르신들에게 사랑방 역할도 톡톡히 하고 있다. 갑자기 텔레비전이나 전화기가 고장 나면 곧장 안내소부터 찾아오신다. 글을 모르는 분은 우편물을 들고 찾아오고 귀가 어두운 분은 마을방송을 할 때마다 와서 다시 듣고 가신다. 그렇다고 도움만 바라고 찾아오시는 건 아니다. 철철이 나는 오이나 가지, 호박 등 갖가지 야채와 밤이며 감 등 과일을 봉지에 담아다 주기도 하고, 제사나 생신날에는 쟁반에 한 상 차려서 들고 들어오신다. 중태안내소는 중태마을에 감사하고 중태마을은 또 중태안내소가 고맙다. 길과 길, 마을과 마을 사이에 놓인 소중한 징검다리는 오늘도 느티나무 그늘 아래서 마을 뒤편 대숲 사이로 지나는 바람과 산새소리를 두 귀 쫑긋 세우고 듣고 있다.
만족도조사
열람하신 정보에 대해 만족하셨습니까?
만족도조사선택

COPYRIGHTⒸ 산림청 SINCE1967.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