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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상 오디가 무르익을 무렵
  • 입상자명 : 이서
  • 입상회차 : 13회
  • 소속 : 일반부
  • 장르 : 일반부 시·수필
오디가 무르익을 무렵, 나는 누에씨의 눈빛을 가진 아이들이 오고 있다는 걸 안다 그늘 밑의 저수지 빛이 새파랗게 바뀌는 동안 뽕잎이 모으고 있던 부채 바람이 흰 빛으로 날리고 아이들이 피어 있는 난간의 가지마다 갈증 포개고 앉은 검은 입술만이 계속 오물거리고 오늘도 입술 사이에 들과 날의 숨소리가 묻어 빛나지만 뽕잎 꽁무니에 붙어 있는 누에의 운명은 알 길이 없다 그러나 오디가 익어 있는 높이로 떠 있는 아이들은 운명을 네 번이나 벗어내고 꽃 피는 잠실을 펼쳐낸다 그때 아이들의 몸이 검푸르게 투명해지고 급기야 어둡고 침침한 곳에서 누에들이 몸을 비트는 소리 깊다 날개를 가두고 공중을 생각하는지, 오줌을 찔끔찔끔 누기도 했다 아이들은 희고 캄캄한 침묵 속에서 아름다운 봉분이 되었다 푸르게 걸어온 길이 끊어진 곳마다 고치들이 우아하게 피었다 아이들의 하늘은 가장 가까운 뽕나무 가지 끝에 걸려 있다고 나는 믿었다 오늘도 비탈진 야산을 넘어온 아이들의 웃음들은 뽕나무 그늘 속에서 주린 배를 오디로 달랬고 저녁이 올 때까지, 땅 밑으로 내려올 생각을 하지 않았다 오디가 무르익을 무렵, 나방이 된 아이들은 끈적끈적한 흰빛을 휘날리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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