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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상 난로
  • 입상자명 : 김 기 석 강원 양구고 1학년
  • 입상회차 : 10회
  • 소속 : 청소년부
  • 장르 : 청소년부 글쓰기

저 멀리 매미 우는 소리가 귓가를 울렸다. 시원했다. 살며시 이는 바람과 함께 후끈한 열기를 밀어내려는 듯, 끊임없이 이어지는 소리. 상쾌한 소리에 기대어 텅 빈 집 안을 둘러보았다. 휴일 오전의 익숙한 풍경이었다.
벽면에 세워진 기타, 옷가지가 잔뜩 걸려 있는 나무 옷걸이, 털털거리며 쉬지 않고 돌아가는 선풍기.
하릴없이 집 안 이곳저곳을 기웃거리던 내 시야에, 작년 겨울 아버지가 들여 놓으신 난로 한 대가 눈에 띄었다. 살포시 먼지가 낀, 언뜻 보면 집 안의 풍경과 어울리지 않는 고풍스러운 난로.
문득, 찬바람이 유달리 기승을 부리던 작년 겨울이 떠올랐다.
눈이 막 그친 직후였을 것이다. 아버지가 배기구의 설치를 마치자 그제야 제 모습을 드러낸 난로는, 집 안 구석에 자리를 잡은 채 당장에 집 안을 데울 준비가 되어 있는 것 같았다. 치솟던 난방비 걱정에 아버지께선 난로를 들이는 데서부터 지금까지 여간 애를 쓰셨던 것이 아닌데, 이제 장작만 구하면 되는 거였다.
특별히 한 일도 없이 호기심 속에 덩달아 신이 나버린 난, 아버지와 함께 차에 올라 산으로 향했다.
얼마나 들어갔을까, 주변은 온통 울창한 숲으로 둘러싸여 있었다.
이쯤에서 나무를 베어 가시려고 하는 건가 하고 생각할 즈음, 아버지가 차를 세우셨다. 아버지와 나는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차에서 내렸다.
온통 하얗게 물들어버린 산, 마치 이슬을 머금은 듯 가지가지 맺힌 투명한 눈꽃들은 숲새를 비집는 햇살에 부딪쳐 눈이 부시기까지 했다. 상록수가 많은 곳이라 그런지, 한겨울임에도 산과 함께 조화를 이룬 모습은 절경이라고 표현하기에 모자람이 없었다.
손을 뻗어 나무를 쓸어보니, 물기를 머금은 목피가 느껴졌다. 여기 서 있는 나무 중에 하나를 베어가야 하는 건가, 하고 생각하니 마음 한편이 불편해져왔다.
“서벅, 서벅”
아버지는 어느 틈엔지 쌓인 눈을 헤치고 숲으로 들어가고 계셨다. 왠지 하는 마음에 멀거니 서 있던 난, 황급히 뒤를 쫓았다.
허벅지까지 쌓인 눈 속을 몇 걸음 걷자니 가지 위에 쌓였던 눈들이 쏟아져 내렸다. 순식간에 머리며 옷이 젖어버렸지만, 그다지 기분 나쁘지 않은 생경한 경험이었다. 금세 놓쳐버린 아버지를 눈으로 쫓다 보니, 저만치 아버지께서 눈을 헤치고 계셨다. 그런데 어찌된 영문인지 아버지의 발밑에선 거짓말처럼 나무들이 나오고 있었다. 커다란 나무에서부터 손목만한 나무에 이르기까지, 아버지는 차에 실을 만한 크기로 연신 나무를 다듬고 계셨다.
나도 얼른 허리를 숙여 눈을 헤쳐 보았다. 손을 내젖기가 무섭게 죽은 나뭇가지가지들이 걸려들었다. 그때의 심정을 뭐라고 표현해야 할까? 괜한 오해에 부끄럽기도 했지만, 마음은 더없이 흐뭇해지고 말았다.
시선만 돌려도 지천이 장작이었는데, 나 편하자고 오랜 세월을 견뎌왔을 나무를 함부로 생각했던 내 자신이 너무나 부끄러웠다. 주위를 둘러보았다. 사방에 둘러싸인 나무가, 하얀 눈을 이고 고고히 서 있었다. 허리를 숙여 발치에 놓인 나무들을 하나, 둘 더없이 기쁜 마음으로 주워냈다.
하얀 입김을 불어내며 부산이 움직이는 내 손은, 어느새 더없이 붉게 달아올라 있었다.
땀방울이 등을 타고 흘러내렸다. 사상 최고의 더위라는 걸 실감하게 되는 정오였지만, 난로를 바라보는 내 마음은 여전히 흐뭇했다.
얼마 전 더위를 피해 계곡을 찾으면서 지난겨울 나무를 구하던 바로 그 장소를 지나게 되었는데, 다른 숲과는 확연히 차이가 지는 잘 정돈된 숲의 모습을 보게 되었다.
이후에도 아버지의 손길을 여러 번 거쳤을 숲의 모습은 분명 다른 풍경이었다. 간벌과 비바람으로 인해 쓰러지고, 썩어진 나무들이 즐비한 여타의 숲과는 확실히 대조적인 모습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괜스레 뿌듯했던 기억을 지울 수가 없었는데. 자연을 보호한다거나 숲을 가꾼다는 것이 단순히 한쪽이 일방적으로 주고받는 것이 아님을 이제는 어렴풋이 알 것도 같다.
한여름 생뚱맞은 난로였지만, 오늘은 왠지 더 정이 가는 모습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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