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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상 숲은 마음의 고향
  • 입상자명 : 고유진
  • 입상회차 : 12회
  • 소속 : 청소년부
  • 장르 : 청소년부 글쓰기

바람 한 점 없는 무더위가 연일 계속되고 있었다. 푹푹 찌는 열대야로 한없이 무력해지는 여름날, 우리 가족은 모처럼 휴가를 떠나기로 했다. 매일 반복되는 답답한 일상에서 벗어나 오랜만의 해방감으로 모두가 날개를 단 듯 부풀어 있었다. 아스팔트 도로를 벗어나 산기슭을 지나 다리를 건너고 정겨운 시골길을 달리다 보니 내가 날마다 보던 세상과는 전혀 다른 새로운 세상이 펼쳐져 있었다. 창 밖에서 불어오는 시원한 바람과 풀내음의 쿨워터향들이 나를 사로잡는다. 작은 공간 안에서 느끼던 에어컨과는 달리 맑은 공기의 신선함이 온몸을 자극한다. 초록빛으로 끝없이 펼쳐진 논, 산속 숲에서 나오는 바람의 향기로움은 자연이 대가 없이 주는 선물이다. 한참 달리다 보니 목적지인 전남 장성군 휴양림에 닿았다. 일직선으로 곧게 뻗은 측백나무들이 하늘을 찌를 듯하다. 한그루 한그루의 나무들이 어우러져 뿜어내는 생긋한 냄새를 맡으며 천천히 오솔길을 타고 걸으니 양옆으로 길게 늘어선 나무들이 손을 내밀어 반겨주는 듯했다. 길가에 피어있는 작은 들꽃들도 눈길을 사로잡았다. 흰 꽃, 노란 꽃, 보랏빛의 아기자기한 꽃들이 저마다 봐 달라는 듯 똘망똘망 눈을 뜨고 있었다. 누가 일부러 손대지 않아도 저희끼리 어울려 조화를 이루는 풀과 꽃들이 그저 신기했다. "야! 이 꽃 좀 봐라. 진짜 예쁘지?" 감탄사를 연발 터뜨리는 어머니와 언니는 어느덧 동심으로 돌아간 듯했다. 나는 엄마의 귓가에 보랏빛 제비꽃 하나를 꽂아 드렸다. 수줍음을 머금고 활짝 웃으시는 어머니의 얼굴이 소녀처럼 환했다. 한참 동안을 맑은 공기 속에 몸을 맡기며 걷다 보니 금세 시장기가 들었다. 우리는 물이 흐르는 작은 골짜기를 찾아 평평한 곳에 돗자리를 깔았다. 차가운 물에 수박 한 덩이를 담그고 점심을 준비했다. 좀 전에 마을 입구에서 시골 아주머니들에게 사온 도토리묵의 쌉싸름한 맛이 더욱 내 식욕을 돋구는 듯했다.
"야~ 진짜 맛있다. 여기서 먹으니까 니 엄마 요리 솜씨가 백 배 더 맛있는 것 같다. 그렇지?" 눈을 찡긋 하시는 아버지의 목소리가 다른 때보다 청량하다. 금수성찬이었던 점심을 마친 후 동생들은 숲에 사는 곤충들을 관찰하느라 여기저기 돌아다녔다.
"야, 사마귀다! 엄청 크지?" 어느새 커다란 사마귀 한 마리가 막내의 손에 들려 있었다.
"엄마, 저기 좀 봐. 청솔모다!" 놀란 언니의 목소리와 함께 긴 꼬리의 청솔모 한 마리가 나무 사이로 날아간다. 경이로움과 즐거움에 저마다 신이 난 우리 가족은 그동안의 도시 생활에 찌든 피로를 말끔히 씻어내고 있었다. 나는 돗자리에 누워 숨을 크게 들이켰다. 눈을 감으니 백여 마리가 넘을 듯한 매미떼들이 합창을 한다. 눈을 떠 저기 저 멀리 높은 나무 가지 끝을 바라보았다. 나무 위에 둥지를 튼 새들이 새끼에게 먹이를 갖다 주느라 분주하다. 그 모습을 지켜보다가 어느새 깊은 잠에 빠졌다. 얼마만큼 시간이 지났을까. 귓가에 아스라히 들리는 새 소리에 눈을 떴다. 울창한 나뭇잎을 비집고 들어오는 가느다란 햇빛이 눈을 부셨다. 어머니와 아버지, 언니까지 깊이 잠들어 있었다. 주무시는 부모님의 얼굴이 어느 때보다도 평화롭게 보이는 순간 나는 가슴이 싸아 하니 아려왔다. 민생 치안을 위해 낮과 밤을 가리지 않고 근무하시는 경찰관이신 아버지. 공부방을 운영하며 날마다 아이들에게 시달리시는 어머니. 대학 입시라는 무거운 짐에 지쳐가는 언니. 모두가 감당하기 힘든 무게의 짐을 풀어놓고 마음껏 휴식을 취하고 있었다. 한참을 그렇게 주무시던 어머니께서는 가느다랗게 실눈을 뜨셨다.
"어? 유진이 안 잤니?"
"아니요. 실컷 잤어요."

어머니는 일어나셔서 내 곁으로 다가와 가만히 어깨를 어루만지셨다. 요즘 어머니와 나는 크게 감정 싸움을 한 뒤라 마음이 편하지 않았다. 얼마 전 1학기 성적표가 오던 날 어머니는 오르지 않는 내 성적을 크게 나무라셨다. 나는 거칠게 말대꾸를 했고 그런 나를 못마땅하게 여기신 어머니는 호되게 꾸중을 하셨다. 나는 견디지 못해 문이 부서져라 쾅 닫고 방으로 들어가 나오지 않았다. 그렇게 마음의 문도 굳게 잠가버렸다. 그렇게 서먹해진 어머니와 나의 마음이 서서히 풀려 간 것은 숲이 주는 넉넉함 때문이었을까.
"유진아. 엄마는 네가 열심히 하고 있다는 걸 알아. 그리고 피곤한 것도 이해해. 그러면서도 엄마는 우리 딸이 더 잘해줬으면 하는 건 엄마 욕심일까?"
나는 순간 눈물이 핑 돌았다.
"아니야, 엄마. 제가 잘못했어요."
어머니는 나를 꼬옥 안아주셨다. 우리 모녀를 지켜 보는 듯 매미 소리와 새소리가 아름다운 오케스트라로 숲에 가득 찼다. 그 동안 우리들은 서로를 돌아보고 이해하고 배려할 수 있는 마음을 가질 여유가 없었다. 그러니 모처럼 자연 속에서 나눌 수 있었던 마음의 소통으로 나는 한결 가볍고 행복했다.
1박 2일간의 짧은 시간이었지만 숲에서 보낸 하루는 정말 의미 있고 보람 있는 날이었다. 짧은 시간의 긴 여운이 가슴을 채웠다. 숲이 주는 포근함과 너그러움이 나를 정화시키는 듯 했다. 온갖 풀벌레와 어린 들꽃들을 키워내고 다람쥐와 청솔모가 자유롭게 놀 수 있는 곳, 숲 속으로 들어가면 나도 하나의 자연이 되어 동화되는 걸 느낄 수 있었다. 골짜기마다 흐르는 물 소리와 고르게 퍼져가는 햇볕, 그 안에서 자라는 크고 작은 생명체들이 오순도순 살아가는 풍경.
숲은 고향이었다. 지친 몸과 영혼을 어루만져주는 넉넉한 마음을 가진 숲. 생활 속에서 부딪히는 수많은 갈등과 상처를 포근히 감싸주는 곳. 언제 어느 때 돌아가도 변함없는 자리에서 큰 품을 열어주는 곳. 숲은 마음의 고향이다. 차에 오르면서 나는 고개를 돌려 멀어져가는 측백나무 숲을 바라보았다. 아쉬웠다. 아쉬움을 뒤로 한 채 나무들은 환하게 웃으면서 꼭 다시 오라고 손짓한다. 나는 말했다. 안녕. 잘 지내. 다시 돌아가는 그날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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