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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상 산을 오를 때 가득했던 미움과 분노가
  • 입상자명 : 이인서
  • 입상회차 : 12회
  • 소속 : 청소년부
  • 장르 : 청소년부 글쓰기

“할 일이 태산인데 일요일이라고 잠만 자냐?”
카랑카랑한 엄마의 목소리가 잠결에 들려왔다. 나는 일요일마다 엄마와 전쟁을 치른다. 조금만 더 자겠다고 침대 위에서 이불을 끌어안지만 결국 엄마의 힘에 눌려 거실로 쫓겨난다.
“아이고, 담배냄새야! 담배냄새에 찌들어서 어디 살겠어요!”
엄마의 쩌렁쩌렁한 목소리에 베란다의 창문이 요란하게 열렸다. 이윽고 나와 마찬가지로 아빠도 거실로 쫓겨 들어오며 내 옆에 쪼그리고 앉았다. 마치 전쟁 통에 피난민 같았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엄마는 청소기를 들고 나타나 우리를 향해 돌진하기 시작했다. 엄마는 잔인하게 우리를 빨아들이려는 것 같았다. 아빠는 바지주머니에서 자동차 키를 발견하곤 보물을 찾은 듯 기뻐했다.
잠시 후 아빠와 나를 태운 자동차는 아파트 단지를 빠져 나와 어디론가 달리기 시작했다. 한참을 달리던 자동차가 이름 모를 산 앞에 멈춰 섰다. 나는 ‘겨우 20~30분을 달린 것 같은데 차가 고장이 났나?’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차에서 내린 아빠는 아무 일도 아니라는 듯 나에게 손가락만 까딱거리며 내리라는 신호를 보냈다. 아빠는 이곳이 바로 안성에 있는 ‘고성산’이라 말했다.
사실 가까운 거리에 있는 산이었지만 한 번도 방문한 적이 없었다. 아빠는 말없이 산을 오르기 시작했고 나는 조금 망설이다가 아빠를 따라 올라갔다. 산을 내려오는 사람들은 등산에는 어울리지 않는 우리들의 옷차림을 비웃기라도 하듯 위아래로 흩어보았다. 좀 창피한 생각이 들어 고개를 들지도 못하고 괜히 손끝에 닿는 나뭇가지만 톡톡 꺾었다. 그리고 아빠는 주머니에서 담배를 꺼내 불을 붙였다. 그러지 산을 내려오던 어떤 할아버지로부터 호된 꾸중을 들었다.
“산에 왔으면 등산을 해야지. 건강에도 좋지 않고 산불을 낼 위험이 있는 담배는 왜 피워.”
아빠는 당황스럽고 창피해 어쩔 줄 몰라 몸을 비비꼬다가 살며시 담배를 숲에 던졌다. 그러자 할아버지는 급히 달려가서 담뱃불을 발로 껐다.
“아들과 함께 등산을 온 것 같은데 담배꽁초를 아무데나 버리면 쓰나? 저 쪽처럼 산불이라도 나면 어쩌려고······. 쯧쯧쯧······.”
할아버지는 아빠를 보면서 혀를 차며 가던 길을 향해 걸어갔다. 할아버지가 떠난 후에 아빠와 나는 한참 동안 땅만 바라보다가 주변이 조용해지자 할아버지가 말한 산을 힐끔 보았다. 검게 그을린 산엔 타다 남은 나무들이 앙상하게 서 있었다. 풀한 포기 꽃 한 송이도 없었다. 순간 나는 텔레비전에서 방영되었던 아마존의 눈물이 떠올랐다. 지구의 심장이라는 아마존 숲이 무분별한 벌목으로 인해 병들어 가는 모습이었다. 순간 산이 우리들을 바라보며 원망하는 것 같았다. 미안한 마음에 죄인이 된 느낌이 들었다.
우리는 또다시 말없이 산을 올랐다. 얼마를 걷고 나자 다리가 아파오기 시작했다. 아빠도 힘들어 하는 것 같았다. 몇 번이고 중간에 포기하고 싶었다. 아빠에게 손을 내밀어 도움을 요청하고 싶었지만 쓸데없는 자존심에 꾹 참았다. 하지만 아빠는 어떻게 내 마음을 알았는지 걸음을 멈춰 서서 기다려 주었다. 그리고 손을 내밀어 날 잡아주었다. 발걸음이 한결 가벼워졌다. 그리고 마침내 우리는 정상에 도달했다. 숨을 고른 후 바위에 나란히 앉아 아름다운 안성과 평택의 전경을 바라보았다. 반대편으로는 들판이 끝없이 펼쳐지고 그 너머 먼발치로 바다가 보였는데 한줄기 시원한 바람이 바다 냄새를 실어 온 듯했다.
숲에서는 새들과 풀벌레들이 콧노래를 부르며 우리를 반기고 있었다. 한 폭의 아름다운 풍경화를 보는 것 같았다. 그동안 사춘기라고 엄마와 아빠에게 반항만하고 아무것도 아닌 일에도 짜증만 냈던 일들이 미안했다. 방문을 잠그고 내 곁엔 아무도 없다며 혼자 외로워하던 순간들이 바람결에 확 날아가 버렸다. 아빠는 내 마음을 읽고 있는 듯 계속 미소를 지었다. 진정한 가족이란 말하지 않아도 서로의 고민을 안다고 했는데······. 바로 그 순간이 우리에게도 온 것 같았다.
“흡~ 휴~ 흡흡~ 휴휴~”
아빠와 나는 번갈아 가며 신선하고 산뜻한 공기를 마음껏 들이마셨다. 저쪽 어디에선가 누군가 우리를 흉내 내는 소리가 들려왔다. 바로 메아리였다. 마치 내 친구가 저쪽에서 대답하는 것 같았다. 나는 비로소 산이 주는 즐거움이 무엇인지 알게 되었다. 산은 동식물들에게 안식처를 제공하고 사람들에게는 더위를 식히는 시원한 보금자리가 되어 주었다. 참으로 신기했다. 산을 오를 때 가득했던 미움과 분노가 산을 내려오면서 눈 녹듯이 사라졌다. 힘들었던 발걸음도 한결 가벼워지고 몸도 마음도 풀잎처럼 싱그러워졌다. 아빠는 산을 내려오면서 다시는 담배를 피우지 않겠다고 약속했다. 나도 산을 오르며 무심코 꺾었던 나뭇가지에게 미안한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아빠와 나는 다음번에 올 때는 엄마와 여동생과 함께 등산을 하기로 약속을 했다. 또한 산불이 난 곳에 뿌려줄 꽃씨와 어린 묘목도 준비하기로 했다. 그러면 산에게도 좀 덜 미안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때마침 시원한 바람은 나뭇가지를 힘껏 당겨 신나게 바이올린을 켜고 있었다. 마치 숲 속 연주회라도 하려는 듯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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